기후변화 사고실험, 세 번째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의 식생활이 바뀐 상황을 가정하여 쓴 글입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어느 목요일,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갔습니다. 예전이라면 매콤하고 기름진 솥뚜껑 삼겹살을 먹었을 그런 날이었어요. 식재료 값이 많이 올라 외식을 못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날은 왠지 애써 번 돈을 맘껏 낭비해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달까요?
언젠가부터 (아마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기후재앙이라 부르기 시작한 그즈음부터) 집에서 밥을 먹거나 밖에서 먹더라도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해에는 세계 어딘가 곡창지대에서 전쟁이 나 밀가루 값이 올랐고, 어느 해에는 남미 팜파스에 지독한 가뭄이 찾아와 소고기 값이 올랐습니다. 그 사이 닭이나 돼지 사이에 전염병이 돌았고, 주기적으로 코로나 같은 전염병도 찾아왔습니다. 식당들은 인플레와 락다운에 못 이겨 하나둘 문을 닫곤 했어요.
전쟁으로 가축 사료 옥수수가 비싸지면 덩달아 고깃값도 올랐습니다. 더워진 동해 바다를 떠난 명태, 고등어, 오징어는 어딘가 차가운 바다를 찾아 헤매고 있겠지요. 잎이 연한 상추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도 북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예전에는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져버렸네요.
아무튼 저는 오늘 뭔가 매운 것을 씹고 싶은 기분입니다. 콩고기를 베이스로 하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콩고기로 만든 고추장 불고기와 빌딩 안에서 수경재배하는 밍밍한 상추, 날리는 동남아 쌀(이제는 한국에서도 이 인디카 쌀이 재배되지만, 아직도 동남아 쌀이라 부르고 있네요)로 만든 볶음밥을 시킵니다.
콩고기에서 느끼던 미묘한 이질감도 이제 거의 없습니다. 매콤한 양념에 스트레스가 날아가네요. 이제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더 이상 마음껏 고기를 먹거나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수 없는 현실에 울화통이 나기도 했었죠. 아직도 곤충 단백질이나 실험실 배양육은 어색합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아직은 꺼려져요.
최근 아파트 단지 안에 공동 텃밭이 생겼습니다. 입주민들이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가끔 만나면 수줍게 인사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맛있게 방울토마토나 상추를 기르는지 의견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흙에서 기른다는 것만으로도, 수경재배한 상추보다는 훨씬 맛있어요. 식재료가 비싸고 귀해지다 보니 오히려 덜먹게 되어 몸이 가벼워진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적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응하는 것이지만요.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소고기 대신 콩고기를 먹고, 먼 나라에서 수입된 음식은 자연스럽게 덜 먹게 된 것이지만, 이런 변화가 결국은 건강과 환경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 예전처럼 매운 솥뚜껑 삼겹살을 먹는 대신, 콩고기 불고기와 수경재배 상추를 먹으며 우리가 잃은 것과 새로 얻은 것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