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사고실험, 네 번째
바닷가 도시에서 태어나서인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지내던 여름방학의 기억 때문인지, 항상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해외근무지를 고를 때도 금방 바다에 갈 수 있는 나라들을 골랐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해변에 닿을 수 있을 것. 이번에도 직장을 옮기고 바닷가 도시로 이사하면서, 역시 바다랑 나는 뭔가 있어, 했죠. 웬만한 도시들은 바닷가에 있거나 강가에 있긴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겁니다.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건 제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니까요.
해변이라는 것이 원래 살기 좋은 곳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집이 빨리 낡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고도 하더군요. 30여 년 만에 10cm가 올랐답니다. 바다가 높아진 건 모래사장이 줄어들고 있는 걸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해수면이 '1'만큼 오르면 모래사장은 '4'만큼 후퇴했고, 시청에서 매년 여름 모래를 갖다 부었습니다. 그래도 모래사장은 점점 좁아졌습니다. 바닷물이 불어나는 속도가 30년 전과 비교해 2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1년에 1cm 정도였어요. 그 정도면 뭐 큰 일 있겠냐고, 다들 그랬습니다.
해안가 전망 좋은 아파트들이 급매물로 나오곤 했습니다. 탁 펼쳐진 바다, 부드러운 구름과 수평선, 고급진 내장과 인테리어.... 이렇게 좋은 물건이 이렇게 싸게 나올 수가 없다고, 100년 동안 1cm씩 해수면이 높아져도 방파제를 넘지 못할 거고, 그 사이에 이 아파트를 팔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가게 될 거라고, 부동산에서는 열을 올렸습니다.
지난 며칠 강력한 태풍이 도시를 쓸고 지나갔습니다. 시야를 하얗게 가릴 만큼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아파트 외벽에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화단의 목책이나 팻말들이 뽑혀 날아다녔습니다. 차량 몇 개가 떠밀려가고, 지하 주차장은 순식간에 물에 잠겼습니다. 정전이 나고 몇 초동안 온통 깜깜해지기도 했습니다. 곧 비상 전력이 들어오긴 했지만요.
'한 두 번도 아니고' 해수면 상승보다 태풍 때문에 더는 해안가에 못살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여름 태풍이야 연례행사지만, 요즘은 2배, 3배 더 강하고 더 자주 태풍이 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아파트를 내놓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작년, 조금 낮은 곳에 지어진 아파트 침수 피해보상으로 타격을 받은 보험사가 파산한 후에는 아예 문의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도시의 해발고도가 몇 미터인지 전혀 찾아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유심히 살피곤 합니다. 더위가 덜한 500-800미터 고지의 도시에 살면 좋겠네, 요즘 방송에 종종 나오는 고지대 주택들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하지만 고지대 주택 가격은 이미 너무 비싸고 젠이 가진 돈은 모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묶여 있습니다. 거기에 직장이 있지도 않고요.
"어떡하지..."
창밖을 바라보니 자주 침수되는 지하주차장의 전기설비를 아예 분리철거하느라 분주하네요. 더 늦기 전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이 듭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