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월
2024년의 마지막 한 달, 비상계엄, 제주항공 사고가 평온했던 일상을 흔들어놓았다. 비상계엄은 처음에는 농담인가 실감이 안 났고, 그다음 날에는 황당해서 잠이 안 왔고, 탄핵안이 통과될 때까지 유튜브의 노예가 되었다. 탄핵안이 통과되고 나서도 여전히 정치판은 엉망진창이지만, 이제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12.29일 제주항공 사고 소식을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다. 이렇게 사상자를 많이 낸 사고는 처음이었다. 거의 모두 순식간에 죽어버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들로 꽉 찬 2024년 12월이었다.
정치뉴스를 보고 있으니 느릿느릿, 될 듯 안 될 듯, 시국은 꾸물꾸물 흘러갔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그렇게도 인재가 없나, 왜 자꾸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 같은 용병을 사다가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을 반복하는 걸까? 연관 영상으로 뜨는 6 공화국 영상을 보다가 (윤석열과 전두환이 참 비슷했다), 급기야 MBC에서 1980년에 제작한 정치드라마 "1 공화국"을 보기 시작했다.
"1 공화국"은 해방직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과 정치인들의 행보를 다룬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에 북한으로 진군한 러시아 군이 38선 이북을, 미군이 38선 이남을 차지하고, 한국인들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라 쓰고 자본주의라 읽는다), 숨죽인 친일파 등이 각자의 목표(대개는 건국, 그리고 생존)를 위해 발버둥 친다. 이승만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경향이 있는데, 암튼 다 보고 판단할 일이다. 더불어 한홍구가 쓴 "대한민국사"를 읽으면서 삼각측량을 할 요량이다.
오래된 드라마라 딕션이 뭉개져서 알아듣기가 힘들고, 중간중간 빨리 감기를 하며 이상한 디스코 음악이 삽입되는 등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요약본을 찾아봐도 없고, 역사를 좀 더 느리게 경험하고 싶어서 한 회 한 회 참을성을 가지고 보고 있다. 하루에 한 회나 반회를 보는데, 그날그날 남편에게 얘기해 준다. 여운형이 암살당했어, 라든지, 이승만이 미국 갔다 오더니 남한단독선거를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좌우합작을 하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시키네, 라든지, 한민당이 이승만한테 집을 줬다가 노선이 달라지니까 집 빼라고 하네, 김일성이 가짜라는 의혹이 있었어? 라든가.
1945~48년을 지나고 있으니 80년 전의 일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었겠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어리석음은 쉬이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80년 전의 일들을 드라마로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복잡하고 고단한 시대를 살아갔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연민이 생긴다. 친일파 숙청 후 건국이냐, 건국 후 친일파 숙청이냐, 좌우합작이냐, 좌우 따로냐,.... 이런 거대한 선택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과거를 좀 더 느리고 차분하게 경험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느리게 흘러가는 역사,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쌓여서 역사가 되니까 말이다. 일단은, 1 공화국 12년(1945.8.15~1960.4.27)을 40시간의 드라마로 축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