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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블루스

2024.11월

by Jee

떠돌이 유전자 때문인지, 이사 온 지 2년도 안되어서 또 슬그머니 이사가 가고 싶어졌다. 새로운 직장이 익숙하지자, 집에서 사무실이 보일 정도로 지척에 위치한 아파트도 지겨워졌다. 개도국에서 마당이 있는 주택이나 베란다가 널따란 아파트에 살던 버릇이 들어, 아파트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교통이 편리한 단독주택을 구하는 것이 목표였다. 서쪽으로는 섬을 포함하여, 30분~1시간 거리의 주택을 보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금방 깨닫게 된 것은, 교통이 편리하고 마당이 널찍한 단독주택은 대개 회장님 집이라는 것이다. 높다란 담으로 둘러싸여서 한눈에도 회장님 집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집주인들은 사업을 하는 회장님/사장님들이었다. 회장님 집답게 전세도 월세도 비쌌다. 그리고 대출들을 가득가득 끼고 있었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규제가 심해지니 회장님도 별 수 없지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33층짜리인데, 한 층에 4 가구가 산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이사업체가 블락해서 쓰고 있으면 엘리베이터를 잡는데만 5-10분이 걸렸다. 그럴 때 장점도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그 동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퇴근하는 사람들, 재활용 쓰레기를 양손에 든 아빠나 엄마, 자전거나 킥보드를 탄 아이들, 유치원 등원하는 아이-어른 커플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길고 좁은 빌딩에 함께 살고 있었구나, 아파트라는 게 문을 닫고 들어가면 우리 가족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3D 투시도로 보면 엄청 많은 사람들이 지척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포개져서 살고 있다니.


우여곡절 끝에 20분 거리에 있는 타운하우스 1층에 전세계약을 했다. 테라스가 넓고, 통창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집 앞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너머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다. 물이 빠지면 두껍고 고운 진회색 뻘이 드러났고, 물이 들어오면 해산물을 실은 배가 어시장으로 들어왔다. 아파트와 전원주택 사이, 타협안이다.


바비큐를 하거나 불멍을 하자, 여름에는 간이 수영장을 만들자, 베란다에는 만화존과 운동존(농구골대, 당구대)을 놓자… 아냐 당구대를 놓으려면 거실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해, 그럼 나는 티브이를 어디서 보란 말이야? 아 몰라… 그런데 테라스에는 히노끼탕을 놓고 싶은데… 위층에서 다 보일걸? … 뭘로 막으면 되지… 온수 끌어온다고 집안에 호스를 늘어놓지만 않으면 오케이…


내년 봄에 이사를 가게 되면 꿈꾸던 일들을 과연 하게 될까? 베란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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