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건강
매주, 매월 일기를 쓰는데, 주제가 정해져 있다. 꿈, 감정, 일/성장/건강/관계/쉼 놀이에 대해서 성찰한다. 할 때마다 느끼는데, 일과 성장에 대해서는 과하게 집중하고, 건강은 중간정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관계나 쉼 놀이는 저~~~ 멀리 뒷전에 놓이기 일쑤다.
올 초에는 글쓰기와 새로운 업무에 매진하느라 운동에 소홀했다. 변명하자면, 너무 춥기도 했다. 기모 쫄 바지를 입고 치마를 덮어 입고, 긴 스웨터에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모자를 둘렀다. 두꺼운 목도리로 바람이 못 들어오게 막고 눈말 빼꼼 내밀었다. 장갑을 꼈다. 각설이가 따로 없다. 뒤뚱뒤뚱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때 몇 번 회사 헬스장에 갔었는데, 그것마저 점점 뜸해졌다.
날씨가 좀 풀리고 나서, 이대로는 안된다, 살려면 움직여야 한다! 싶었다. 점점 몸이 바닥으로 깔아지는 걸 일으켜, 새벽 산책에 나섰다.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 아파트와 아파트를 이어놓은 녹지아래를 돌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풀렸다.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내 몸에도 아지랑이처럼 에너지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 산책이 2-3달쯤 이어졌을까, 여름이 다가오면서 아침에도 문득문득 비가 내리곤 했다. 꽃들은 서둘러 피어났고, 화려하게 떨어졌고, 그렇게 봄이 지나갔다.
여름이 되니 새벽마저 후덥지근해졌다. 5월부터 열대야가 찾아왔으니 본격적인 여름은 예전에 알던 한국의 여름보다는 동남아의 여름에 가까웠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더운 여름이니 수영을 하면 됐었겠지만, 찌는 듯한 날씨를 바라보고 있으면 밖으로 나갈 전투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뜨거운 증기에 익은 시금치처럼, 한 여름이 지났다. 적어도 사무실은 시원했다. 집에는 서재방에 에어컨이 없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재택근무를 하곤 했다. 바다나 계곡에 가기도 하고, 수영장에도 몇 번 갔지만, 봄에 쌓아놓은 체력을 빼먹는 시간일 뿐이었다.
바쁜 여름과 가을 초입이 지나고 겨우 가장 바쁜 업무가 일단락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수영을 하니 내 몸에 대한 감각과 에너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수영장 바닥을 바라보면서 수영을 하는 순간에 '정말 행복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주 수영을 1-2달쯤 하다 보니, 일주일에 2-3번으로 횟수가 늘고 점점 중독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한다는 뿌듯함도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하는데, 실제 삶에서 건강은 죽기 직전까지 짜내고 정말 간당간당할 때 돌보곤 한다. 마치 인생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액세서리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위한 행동을 할 때 뿌듯해지는 것이다. 좀처럼 안 하던 기특한 짓을 했다는 마음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고층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밀풰유 같이 겹겹이 쌓인 성냥갑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몸이 납작해지고, 마음이 납작해지고, 답답해진다. 일터와 성냥갑을 사이를 오가며, 나를 위한 시간,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할 시간과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건강을 잃어버린다.
2024년, 내가 내 건강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돌아보니 왠지 의기소침해지지만, 내년엔 '정말 행복하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