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
언젠가 어떤 교수님의 강의(Ted 강의가 아니었나 싶다)를 흘려듣고 있었다. 젊을 때 국제기구에서 잠깐 일했었다는 교수님은, 국제기구는 뭔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과연,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 보였다. 국제기구 직원이란 쉽게 말해 국제공무원이며, 세계적으로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 다양한 국가와 시스템이 엮여 있고 사장도 대장도 없으니, '조정'이 하는 일의 큰 부분이 되는 것이다.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거나, 자연을 연구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처럼 좀 더 창조적인 작업이 있는가 하면, 체계를 만들고 사람들과 협의하는 일, 돈과 물질의 흐름을 바꾸는 일처럼 좀 덜 창조적인 작업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그 모습을 바꿀 뿐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찐개찐일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상상력은 별로 강력하지 않아서, 눈과 손으로 변화를 느낄 수 없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실제로 하루하루 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만질 수 있는 변화와는 아주 멀고, 영향을 미친다기에는 아주 작은 일이다. 사업계획을 세우고, 평가를 해서 그 결과를 거르고 걸러 전달한다. 사람을 뽑고,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 일들이 모여 기후변화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감감하다.
그래서, 본부 책상머리에서 하는 일보다는 해외사무소에서 하는 일이 언제나 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대서양해류를 타고 니모를 찾으러 가던 니모의 아빠를 생각한다.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황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다. 작은 크라운 피시인 니모의 아빠가, 니모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했을 때, 거북이들의 지혜를 빌어 북대서양해류에 올라탄다. 혼자서는 갈 수 없었을 길을, 주위의 사람과 환경의 힘을 빌어 가게 된다. 높은 곳에서 바람을 타고 나르는 커다란 새들도 동경해 왔다.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좋은 공기의 흐름을 만나면 고요히 활공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북대서양해류 같은, 활공을 허락하는 대기의 흐름 같은, 그런 일이 기를 바란다. 흘러야 할 것을 흐르게 해서, 그 끝에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