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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소동

by Jee

천사는 길고 화려한 홀을 지나 예배당으로 나아갔다. 홀은 백화점과 예배당을 잇는 전이공간이었다. 벽면패널의 사치품 광고가 샹들리에에 반사되어 혼을 빼놓았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천사를 보고 마귀들이 홀 곳곳에서 천사를 저지했다. 숫자는 많았지만 밀치는 손길에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예배당 문을 지키고 선 마귀를 보고 천사는 흠칫 멈춰 섰다. 천사를 보고 싱긋 웃음 짓는 걸 보니 꽤나 강한 것 같았다. 칼로 문을 잡은 오른팔을 베고 팔이 돋아나는 틈을 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은 콜로세움처럼 거대하고 오페라 극장처럼 번쩍이는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3층까지 꽉 들어찬 신도들은 연단에 선 목사의 말에 귀 기울이며 환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천사는 마음이 급해졌다. "안돼, 더 진행되기 전에 막아야 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를 꽉 채워 앉은 사람들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목사는 점점 고양되는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믿습니다"를 외치며 장내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천사는 다급한 마음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비행술을 쓰지 않은지 오래라 팔다리를 볼썽사납게 휘둘러 천장으로 올라갔다. "저게 뭐야!" 신도들의 시선은 일제히 연단에서 천장으로 향했다. 모두들 핸드폰을 꺼내 천사가 허우적거리는 명장면을 찍기 시작했다. "잡아라!" "저 쪽이야" 경호원 복장을 한 마귀들은 앞다투어 외쳤다. 아슬아슬하게 무선 마이크를 낚아채서 천장 근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떠오른 천사는 외쳤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는 이제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없습니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없습니다. 없어요!" 천사는 최대한 경건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는 과일장수처럼 들린다며 속으로 언짢아했다. "촬영 못하게 해!" 목사는 천사의 말이 퍼져나가는 걸 막으려 악을 썼다. "촬영하지 마세요!" 경호원들이 근처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카메라가 촬영 중이었다. 천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없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어요!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목사는 서둘러 예배를 해산시켰다. "오늘 예배는 작은 사고로 인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말씀을 묵상해 주세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찐득한 물처럼 예배당을 비우는 사람들을 보며 천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일도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겠지. 아무리 말하고 소동을 일으켜도 다들 기억조차 못할 테고. 그날 저녁 뉴스에는 천사의 생각대로 짧은 뉴스가 나갔다. "오늘 오후 서울 XX교회의 예배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천사가 난입해 예배가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상자는 없으며, 해당 천사는 소란 후 도주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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