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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me)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김종철)

by Jee

저자는 녹색평론 창간인이다. 그는 근대문명을 근대국민국가의 뼈대위에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혁명과 주주자본주의가 합쳐진 것으로 보는듯하다. 근대문명의 문제점은 지속가능하지 않고(화석연료 의존), 풍요를 보장하지도 않으며(실질적인 빈곤과 불안을 느낌), 개인의 자율성과 협동을 저해한다(주주자본주의 시스템-기계의 부품으로 전락).

- 근대문명은 석유와 외부(식민지)를 기반으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통해 성장했다. 석유라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석유가격의 상승으로 종전과 같은 급격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 농촌공동체의 파괴, 도시화/산업화로 공동체나 환경과 같은 공동자산이 파괴되었고, 개인은 오로지 돈에 의지해 살아감으로써 실질적인 빈곤과 불안을 느낀다. 개인의 자율성, 개성, 공동체 내에서의 유기적 연결을 제거하고 국가나 기관(학교, 병원, 회사 등)의 통제 아래 개인을 둔다. 과거에는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해결하던 문제들을 특정한 권위 있는 사람과 기관에 의지해야 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이 권위는 국가나 자본가가 만든 시스템이 부여한다. 학교밖에서는 배울 수 없고,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픈데 돈이 없으면 죽게 되고, 돈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 책을 보니 그제야 왜 이 사회가 그토록 전문성에 목을 매는지, 전문성에 집착할수록 더욱 무능해지는(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상실하는) 역설, 그것이 왜 노예의 도덕인지 이해가 되었다.

- 근대문명에서 개인은 주주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예속되어 자율성이 제한된다. 민주주의는 자치(autonomy)에 대한 열망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근대문명은 민주주의 성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개 기업주나 공무원이 일반민중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수준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재확산이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든 개인을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게 한다.

- 근대문명의 치부를 잘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가 광우병이다. 광우병은 풀을 되씹는 동물(반추동물)에게 육골분(동물의 뼈와 고기를 갈아서 만든 사료)을 먹이면서 나타난 병이다. 1980년대 말 이미 영국에 나타났고, 미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에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2008년에 벌어졌다. 2008년 이후로는 소뿐 아니라 다른 동물의 육골분을 사료로 사용하는 것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초식동물에게 (동족) 육식을 시키는 잔인함, 전 세계 곡물의 1/3이 축산업의 사료로 이용되는 현실(미국의 사료용 곡물만 해도 10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전 세계 기아/극심한 식량불안정 인구가 10억 명이다)이 근대문명의 야만성을 잘 드러내 준다.


저자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아나키스트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좌든 우든 근대문명에 기반을 두고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극우)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고 국가는 이와 영합하여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억압한다.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물 민영화 사례에서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개인이 자유가 아닌 기업의 자유라는 것, 이에 영합하거나 저지할 능력이 없는 국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사례에서는 대기업(수출) 위주의 세금, 환율 정책의 비용을 일반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 공산국 가는 생산과 생활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복지국가(좌파)는 제도화된 상호부조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과 협동의 역동성을 방해한다.


저자가 꿈꾸는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자유협동주의(ft. 기본소득, 소농, 협동조합, 노동자주주, 시민의회), 사상적으로는 생태주의 모델이다.

- 세계대전 이후 협동조합과 민중교육을 통해 나라를 재건한 덴마크를 자주 거론하며(국민체조도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살림을 만든 장일순 선생의 업적을 기린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헌법을 만들고, 야수니 유전을 개발하지 않는 대가로 보상을 요구하는 등 자연보호에 대한 높은 의식을 보여주는 에콰도르를 높이 평가한다. 야수니 유전은 국제사회의 지원부족으로 2016년부터 시추를 하고 있었지만, 2023년 국민투표로 다시 개발을 중단하기로 했다니 대단한다.


저자의 글이나 강연을 모아놓은 것이라 반복되는 내용도 있고, 때로는 표현이 과격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10-20여 년 전의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어(광우병, FTA 등)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근대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radical 함, 소농, 생태적 농경 등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2020년에 작고하셨는데, 그때쯤 하여 녹색평론이 창간된 대구지역 MBC가 회고방송을 몇 개 만들었는데, 조회수가 몇백 회에 그치고 있어서 또한 놀랐다.


다 읽고 나서 "흐음...."하고 긴 한숨을 쉬며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그에 기반한 협동의 중요성을 철학적, 개인적 수양의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는 점만으로도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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