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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by Jee

손으로 콧구멍을 꼭 막아주세요. 제가 귓구멍을 막아드릴 거예요. 입에 문 빨대만으로 숨을 쉬어보시는 거예요. 하나... 둘... 셋... 주먹만큼 두껍게 들어오던 공기가 가느다란 빨대를 통해서만 몸속으로 들어왔다. 넷... 다섯... 내뱉지 못한 공기만큼 들이마시는 힘이 약해졌다. 공기는 빨대보다 더 가느다랗게 쪼그라들었다. 여섯... 일곱... 배에 힘을 꽉 주고 가슴을 쥐어짜는데도 공기는 더 들어오지 않았다. 낡은 창틀을 스치는 바람처럼 새된 소리를 내며 은희는 숨을 내뱉었다. 음, 십 초도 못 참으시면 안 되는데, 평소 때 연습은 하고 계세요? 수중호흡 코치는 나무라듯 물었다. 다시 한번 해볼게요. 네... 은희는 겨우 대답했다. 하실 수 있겠냐고도 묻지 않는구나. 코를 막고, 귀를 막고, 다시 하나... 둘.... 셋....


언제부터였을까, 물속에서 숨 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일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지상의 공기는 현기증이 날 만큼 뜨겁고 먼지로 가득했다. 나무와 풀이 사라져 사막화된 땅으로부터 흙먼지가 솟구쳤고, 미세플라스틱은 구름에서 비로, 땅으로, 다시 공기 중으로 부유했다. 대지를 관리하는 것을 포기하는 나라들이 많아지면서, 쓰레기 더미와 폐기물에서 나온 유독한 화학물질이 더해졌다.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선선하고 깨끗한 공기로 가득 채워진 저택들이 앞다투어 산꼭대기를 점령했지만 살만한 땅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시대에 맑은 공기로 편히 숨을 쉰다는 것은 특권이자 돈이었다.

사람들이 처음에 물속에 담근 것은 대규모 데이터 센터였다. 엄청난 열을 뿜어내는 해저 데이터 센터 옆에 데이터 처리시설이 들어섰고, 수직 터널이 지상과 해저시설 간 사람과 기계를 실어 날랐다. 수중압력을 조절하는 법을 개발하고 나서부터, 그리고 뜨겁고 해일피해에 취약한 지상에 거주하는 것을 점점 기피하게 되면서, 해저 주거시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태양광 집적 패널을 부착한 해저 돔 농장은 야채나 감자, 콩 같은 먹거리들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저도시에 산소를 공급했다. 해저 바닥에서는 김이나 다시마를 길렀는데, 먹는 용도보다는 해저도시의 인간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용존산소량이 낮아져 생긴 물고기 떼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해저도시는 점점 커져 갔고,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은 해저로 이주했다.


은희는 텅 빈 도시의 값싼 아파트로 돌아왔다. 해 질 녘 공기는 더 무거워져 있었다. 하늘은 어둠 대신 오렌지빛 먼지와 갈색빛 스모그로 뒤덮였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로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은희는 아파트 앞에 잠시 섰다. 더러운 공기를 최대한 마시지 않고 숨만 고르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한숨을 들이마셨다. 목구멍이 마치 꽉 막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아…."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들이마신 공기 속에 매캐한 황냄새가 섞여 있었다. 코와 입으로 동시에 공기가 들어왔지만 그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마치 아까 수중호흡 훈련에서 빨대로 숨을 쉬던 때처럼, 가슴이 쥐어짜였다. 몇 초도 채 안 되어 은희는 다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공기 중 먼지가 폐에 달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아파트였다.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한 계단 한 계단이 고통스러웠다. 뜨겁고 무거운 공기에 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 은희는 이마를 짚으며 잠시 벽에 기대 섰다. 저층 계단 입구에 쌓여 있는 먼지들이 바람결에 떠올랐다. 은희는 힘겹게 아파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공기는 그나마 조금 덜 탁했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한 컵 마셨지만 갈증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밖의 공기 상태가 너무 나빠 창문은 하루 종일 닫아 두었지만, 오래된 틈새로 스며든 오염된 공기가 집 안 곳곳에 배어 있었다. 은희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다. 가슴이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오르내렸다. 어디선가 멀리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쓰러진 사람이 또 나온 것이겠지. 도시에선 이제 이런 일이 흔해져 버렸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명확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해저 생활이 적응하기 어렵고 고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지상의 공기와 더위 속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마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머릿속에는 그저 탁한 공기와 내일의 훈련만이 어른거렸다.


다시 해볼게요. 은희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간신히 대답했다. 말끝이 거칠게 갈라졌다. 목 안에 남아 있던 공기를 내뱉는 순간, 훈련 코치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물로 호흡하는 훈련이에요. 코하고 귀를 막고, 입에 문 호흡기를 통해 천천히 들이마시세요. 공기가 아닌 물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은희는 손으로 코를 꽉 막았다. 귀를 막는 순간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입에 문 호흡기를 통해 물이 천천히 들어왔다. 폐가 물로 가득 차는 느낌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공기가 아닌 물이 산소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옥죄기 시작했다. 과거 공황 발작의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숨 쉬는 방법을 온전히 잊어버렸다. 내 몸이 불안정하게 내 영혼을, 아니 내 영혼이 내 몸을 탈주하려 하고 있었다.

처음 발작이 찾아왔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밤을 새우던 중 갑자기 숨이 막히고, 가슴이 쥐어짜이는 고통이 밀려왔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숨이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고,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매일 두려움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발작이 날까 조마조마했고, 공기조차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때는 맑은 공기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괜찮습니다. 누구나 처음엔 어려워요. 하지만 이번엔 참아 보세요. 호흡기가 물속에서 산소를 뽑아내서 공금 해준다는 걸 믿어요. 코치의 말이 멀리서 들려왔다. 은희는 이를 악물고 호흡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물이 천천히 폐 속으로 들어왔지만 이번엔 조금 참아냈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 뛰었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속의 산소가 몸에 닿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있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어… 은희는 마침내 천천히 호흡을 이어갔다. 첫 수중호흡의 성공이었다. 가슴이 묵직했지만 더 이상 질식할 것 같은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잘했어요! 드디어 성공했네요! 코치가 격려하며 미소 지었지만, 은희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물 밖으로 나와 천천히 호흡기를 빼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폐 속에 남아 있던 물의 무게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듯했지만, 가슴 한가운데 얹혀 있는 돌덩이 같은 압박감은 여전히 그녀를 짓눌렀다. 축하해. 성공했네. 밖에서 기다리던 훈련생 동료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응… 근데 여전히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동료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다들 그래. 물속에서 완전히 편하게 숨 쉬는 사람은 없어. 그냥 참고 사는 거지.


은희는 기진맥진해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비가 올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황톳빛 지평선은 어제보다 더 어둡고 낮게 내려앉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려 했지만, 이내 컥컥거렸다. 물을 통해 받아들이던 무겁고 시원한 공기와 가볍고 매캐한 지상의 공기 모두가 어색했다. 호흡은 그녀가 공황장애로 고통받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과거의 기억이 스쳐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시골 할머니 집 마당의 나무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순간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코끝에 걸리는 천리향의 꽃향기. 공기가 입술을 지나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공기는 너무도 맑고 가벼웠다. 은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파트 소파에 몸을 던졌다. 수중훈련에 성공했지만, 이 무거운 느낌이 지상에서도, 물속에서도 똑같다는 사실이 그녀를 내리눌렀다. 숨이 쉬어지는 곳은 없었다. 공황장애로 숨이 막히거나, 스모그 속에서 괴로워하거나, 물속에서 무겁게 산소를 들이마시거나, 근본적으로는 모두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모든 곳에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거잖아… 밖에서는 구급차 사이렌이 희미하게 울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쓰러진 사람이 또 나왔을 것이다. 저 소리를 피해 물속으로 도망가려고 하지만, 물속에서조차 편히 숨 쉴 수 없다는 사실은 은희에게 삶의 무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소파에 깊숙이 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익숙해지겠지… 그러나 그 속삭임마저도 희미하게 흩어졌다. 어둠은 그녀의 의식을 천천히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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