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9. 최근 본 영상물(드라마, 영화 등)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by Jee

최근에 영화 '전우치'를 또 보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았는데, 우연히 돌린 채널에 전우치가 잡혔습니다. 어쩌면 몇 번을 봐도 재미가 반감되지를 않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의도치 않게 한눈팔지 않고 완주하고 말았어요.

배우들의 멋짐과 훌륭한 연기력 때문일까요. 전우치 강동원은 눈이 부시게 잘 생겼고, 화담 김윤석은 어쩜 그렇게 멋있고, 초랭이 유해진은 어쩜 그렇게 재간둥이이며, 과부(알고 보니 대신선 표훈대덕) 임수정은 강인한 들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전우치가 '자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할 때 저도 왠지 궁디가 둥실둥실 신이 나고, 화담이 '더 살아봐도 아무것도 없단다' 할 때는 그 카리스마에 눌려 신속하게 반박할 수 없더군요.

조선시대에서 온 인물들이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에 놀라는 장면들도 볼만합니다. '그럼 백성은 누가 먹여 살리나?'하고 전우치가 묻기도 하고, 여인의 마음을 얻으려면 턱주가리에 보석을 들이밀어야 된다고도 하여 쓴웃음이 납니다. 도술을 부리고,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동양적인데, 풍악을 울리며 춤을 출 때는 발리우드 같기도 하고요.

다만 요괴들이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요괴는 왜 저렇게 핍박을 받고 있을까.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도망치려고 애쓸 뿐이거든요. 물론 도망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부수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고요. 요괴는 요괴로 태어나는가, 사람이었다가 요괴가 되는가도 의문이었습니다. 화담은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요괴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사였는데, 만파식적 피리를 찾기 위해 애쓰던 도중, 상처에서 녹색 피가 떨어져 문득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괴도 인간인 줄 알고 무탈하게 살다가 갈 수도 있는데 오히려 만파식적에 가까이 다가가 요괴성(?)이 깨어나버린 건 아닐까 싶더군요.

초랭이도 엇나가면 요괴가 되고, 전우치도 좋은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화담처럼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맴돌았어요. 요괴가 되지 말자. 엉뚱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요괴도 사람이 되는 좋은 그 세상에 대한 영화는 없을까, 요괴와 사람이 다 같이 잘 사는 그런 세상은 없을까... 아무튼 요괴는 되지 말자. 다짐합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좋은 영화처럼 좋은 글도 캐릭터성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가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이유는 다른 등장인물 없이, 오롯이 혼자의 캐릭터성 만으로 글을 꽉 채워야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슬아, 남궁인이 같이 쓴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읽었는데, 20대의 오만한 젊은 작가도, 40대의 어리석게 우직한 응급실 의사도, 그 사람의 특별함이 단단하게 드러나 공명하며 읽었습니다. 나랑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도, 공감할 수 있었어요. 특별한 일이 없이 사는 나에게도, 그 속에 있는 (있는 것이 분명한) 나만의 캐릭터성을 찾기를 절실히 원합니다. 특별하지만 다른 사람이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러려면 우선 많이 길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연필로 줄을 긋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떤 형상이 드러날 것이라 기대하면서요.



나의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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