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언제나 어딜 가든 나를 이끌어주던 그였어.
그리고 어리바리한 내가 모로코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던 그였어.
하지만 그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나는 이미 100퍼센트 적응 완료.
현지인처럼 골목을 누비는 정도가 되어 있었어.
그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지.
마라케시에서 가본 곳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곳에 그를 데려갔어.
그가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여준 것처럼 나도 그에게 그가 몰랐던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리고 내가 먹어본 현지 음식점 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곳에도 그를 데려갔어.
현지 음식을 잘 먹는 나와는 달리 그는 영 먹지를 못했어.
평소에도 가리는 게 많은 그는 아프리카 특유의 향신료 냄새를 싫어했어.
그는 살이 빠지고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지.
그와 조금 특별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11시간이나 걸리는 버스에 탑승했어.
자고 일어나니 차는 절벽 끝을 달리고 있었고,
자고 일어나니 아무것도 없는 먼지 속을 달리고 있었고,
자고 일어나니 메르주가에 도착해 있었어.
이른 아침 출발한 버스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어.
자도 자도 피곤한 날, 그런 날이었어.
찌는듯한 열대야에 팬티 하나만 입고 자도 짜증이 나는 밤이었지.
더위를 식히려 찾은 옥상은 별이 쏟아질 듯했어.
와아- 하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는 말했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사막에 가면 진짜로 별이 쏟아질걸?
더위가 가실 즈음, 오후 느지막이 사막으로 향했어.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낙타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가야 했어.
꼬리뼈가 아파올 무렵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일몰을 감상했어.
빨간 모래 너머로 빨간 태양이 지는 모습.
그 벅찬 순간에 나는 그와 함께였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져있었어.
저녁을 먹고 베이스캠프를 등지고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어.
무수히 많은 별을 보기 위해서였어.
달을 불빛 삼아 온전한 어둠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우주를 만났어.
하늘에 띠 두르듯 걸려있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은 보석처럼 빛이 났어.
어디선가 핑- 하고 소리가 나면 별이 떨어지고 있었지.
떨어지는 별을 보며 그에게 말했어.
붉은 사하라 위에서 까만 하늘 아래서 별 사냥을 한 날.
이 날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 되는 날이었어.
남들보단 조금 많이 특별한 데이트였지.
일주일.
그가 나와 함께 모로코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는 포르투갈로 돌아가야 했고 모로코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페즈에서 타야 했어.
우리는 사막에서의 추억을 안고 페즈로 가는 새벽 택시를 탔어.
동이 터오는 아침이 되어서야 페즈에 도착했어.
골목에는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주워 동키의 어깨에 멘 자루에 넣고 있었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너무 귀여웠어.
숙소에 얼리 체크인을 하고 조식을 먹고 있자 낯익은 사람이 헐레벌떡 현관으로 들어섰어.
세비야를 같이 여행했던 ‘완’이었어.
페즈를 여행 중이던 완이가 그와 내가 페즈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거였어.
사실 완이에게 모로코로 여행 오길 추천한 건 그와 나였어.
그가 떠나면 홀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심심했거든.
안심이 되었어.
이른 아침 비행기로 그가 늦은 새벽 공항으로 떠났어.
남겨진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지만 견뎌내야 할 일이었기에 애써 씩씩한 척했어.
그가 포르투로 떠나고 나는 완이와 새파란 도시 ‘쉐프샤우엔’ 으로 떠났어.
잠시 여행을 함께 할 트래블메이트가 생겨서 무척이나 든든했어.
엄청 작고 높은 지대에 위치한 쉐프샤우엔은 관광객도, 여행객도 많은 도시였어.
이곳은 여행을 한다기보다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
바삐 다니는 여행보다 느릿느릿 그 도시를 여유롭게 만끽하는 여행이 더 좋았기 때문이야.
저녁이 될 즈음엔 장을 봤어.
장 봐온 걸로 요리를 해서 맛있는 한식을 만들어 먹었어.
닭볶음탕, 비빔밥, 감자채 볶음, 라면 등.
아! 닭볶음탕을 해먹은 날에는 재밌는 경험 해 봤어.
닭털을 내 손으로 뜯어 사지를 절단해 요리를 한 거야.
내가 여기서 생활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과 모습이 많이 닮아 있었어.
다음 목적지로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어.
원래대로라면 모로코에서 가까운 튀니지로 가려했었거든.
가까우니 비행기도 싸겠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사이가 안 좋은 나라라 그런가.
가까운 주제에 엄청 비싸더라고.
지도를 보면서 여기저기 아무 데나 항공권을 찾아봤어.
6만 5천 원. 영국 런던.
하.. 별 수 있나. 가야지.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3일 뒤 완이에게 인사를 건네었어.
“길 위에서 다시 만나자! 언제든 너랑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Que le vaya bien!(잘 지내!)”
갈 때는 완이와 함께 였지만 페즈에 돌아올 때는 혼자였어.
그래도 한 나라의 여행이 끝나서인지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어.
도착한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삼엄한 출국심사를 거쳐 비행기에 올랐어.
정확히 24일 만에 모로코를 떠나게 됐어.
짧은 비행을 거쳐 환승을 하려고 비행기에서 내렸어.
그새 또 입에 익은 건지 “쌀람~” 하고 눈이 마주치는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건네었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어.
[ Immigration(입국심사)]
응? 놀란 눈으로 잠이 덜 깼나 싶어서 지도를 켜보니 이미 난 영국이었어.
분명 1회 경유였던 것 같은데..
묵직한 배낭을 메고 시끌시끌한 도시로 발을 내디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