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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Apr 25. 2019

짧은 소풍

리스본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고 고기 볶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어.

그가 만들어준 두 번째 식사였지.


살짝 탄듯한 양념이 일품이었다.


“음! 역시 맛있어:) 그대는 요리를 참 잘해. 못하는 게 뭐야?”

“많이 먹어:) 짐은 다 쌌어?”


이 날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

차를 렌트해서 포르투갈 남부로, 그리고 그 근교로 말이야.

마침 그의 학교가 중간고사가 끝난 뒤 휴강이었어.

총 5박 6일을 계획하고 커다란 배낭이 아닌 작은 보조 가방에 짐을 꾸렸어.

없는 짐이지만 그걸 쪼개어 다시 짐을 꾸리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어.

잠시 소풍을 가는 기분이랄까?

포르투 며칠만 안녕!




우리는 북쪽 도시 포르투를 떠나 남쪽 도시 리스본으로 향했어.

예쁜 항구라는 뜻을 가진 리스본.

태양빛이 너무나도 뜨겁고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강 위로 빛이 부서져 눈이 부셨어.

4월, 짧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어도 더운 날씨였지.

땀이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혀도 그와 맞잡은 손은 놓지 않았어.


그는 날 찍을 때 100장 찍으면 1장 건진다고 한다. 이유는 내가 가만히 안 있어서라고..


이번의 짧은 여행에는 동행이 있었어.

그의 와인파티에 놀러 왔었던 여행자 이태원.

이태원에 사는 친구라 붙인 별명이 아니라 이름이 정말 이태원이야.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연락을 해보니 때마침 태원이도 리스본에 있었어.

우리는 태원이와 동행해서 리스본 근교인 신트라, 호카곶, 라고스에 가기로 했어.

커플 사이에 끼워 데려가려니 미안하긴 했지만 혼자보단 여럿이 재밌잖아?


사진 속 우리는 누가봐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커플이었다. (왼쪽부터 신트라 페나성, 신트라성, 카스카이스 해변)


태원이도 사진을 찍는 여행자였어.

사진 찍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 사진이 없거든.

그래서 그가 태원이 사진을 찍어주고 태원이가 우리를 찍어주기로 했어.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우리의 풋풋한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싶었지.

덕분에 커플 사진 한 장 없던 우리가 우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지게 되었어.


신트라의 페나 성에 있는 정원. 요정이 살 것만 같았다. 높디 높은 나무는 나를 소녀로 만들었다.


알록달록 놀이동산 같기도 하고,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숲이 있는 곳.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절대 요새라는 명성이 있는 신트라.


말이 통하지 않아 바보처럼 웃던 이 날, 포르투갈어든 스페인어든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신트라는 포르투갈 남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도시였어.

역사적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소녀가 된 기분이 들었거든.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곶.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시인 카몽이스


로마인들은 호카곶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의 끝이 여기구나 라고 생각했대.

세상의 끝에 서서 바람에 미친년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어.


“자기야, 뛰어!”

“어? 에에엥?”


풀때기가 가득한 곳을 몇번이고 달렸다. 다음부턴 밥을 먹이고 뛰게 했으면 좋겠다.


그는 여자 친구가 생기면 찍고 싶은 영상이 있다고 했어.

여행하는 나라마다, 도시마다 달리는 나의 뒷모습을 찍는 거였어.

트렌드가 좀 지난 것도 같고 창의력이 떨어지는 것도 같았지만 왠지 낭만적인 일이라 열심히 달렸지.


렌트했던 차. 유럽은 보통 다 수동 차인데 포르투갈은 길이 좁고, 언덕이 많아서 운전하기 힘들다.


라고스는 즐길 액티비티도 볼거리도 있는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였어.

여기서 그는 내게 아주 재밌는 걸 하자고 했는데 그건 카약 투어였어.

그와 내가 2인 1조가 되고 태원이는 가이드와 조가 되었어.

내가 앞에 앉고 그가 뒤에 앉았어.

열심히 저어도 저어도 다른 팀보다 잘 안 나가더라고.

“허억허억- 팔 아파.”

“자기야, 여기 봐! 뒤돌아보면서 웃어:)”

그는 뒤에 앉아서 노를 젓다가 고프로로 영상을 찍었다가 노를 저었다가 사진을 찍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어.

하하, 너 이 색히.

어쩐지 카약이 안 나가더라.


리스본의 밤. 대항해 시대를 열어 황금기를 맞았던 때처럼이나 금빛이었다.


라고스에서 태원이와 작별했어.

태원이는 여행을 계속해야 했고, 그와 나는 포르투로 다시 돌아가야 했지.

포르투에 돌아오니 며칠 있었다고 익숙해진 건지 포르투가 반가웠어.


며칠의 짧은 소풍이 끝났지만 소풍 같은 나날은 계속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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