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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Apr 24. 2019

그를 따라가다

포르투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포르투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스페인 남부로 가기로 한 나의 발걸음은 짓궂은 날씨를 핑계 삼아 나를 포르투 공항에 데려다 놨어.

그가 포르투로 떠나고 약 일주일 만에 나도 포르투에 도착했지.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메고 그를 기다렸어.

그가 공항으로 마중 나왔어.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어.

그는 나를 꼬옥 안아줬지.

우리 사이에 보조가방이 방해를 했어.


우버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어.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앉아있으니 그가 날 위해서 요리를 시작했어.

낭만적인 노래, 낭만적인 상황, 좋아하는 사람

“여행 시작하고 한식이 그립지? 내가 오늘 카레 해줄게!”

“응! 완전 좋아:)”

그가 해준 요리는 카레와 달걀찜. 아삭아삭 설익은 감자가 인상 깊었다.

사실, 바르셀로나에 머문 17일의 10일은 한식 아니면 중식을 먹었었어.

그래서 너무 막 한식이 땡기지는 않았지.

하지만 그가 날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는데  굳이 잘 먹고 다닌 티를 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밥을 먹고 난 뒤 그의 집에 설치된 미니 빔으로 영화 ‘어바웃 타임’을 봤어.

왜 다들 썸타거나 연애 시작할 때 로맨스 영화 많이들 보잖아.

여느 로맨스 영화와는 다른 이 영화 속 한 구절이 마음에 남더라.


We’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우리는 하루하루 시간을 통해 함께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놀라운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할 거라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그가 학교에 가고 나 홀로 집을 나섰어.

동네 마실이라도 다녀올 참이었지.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 저 멀리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어댔어.

언덕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길가엔 베레모를 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거닐었지.

평화로운 동네를 거닐다 길가에서 하교하는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어.


그가 학교에 가거나 촬영을 갈 때를 제외하고 우린 늘 붙어 다녔다.


이날 저녁, 그는 날 위해 “삼겹살 파티”를 열었어.

그리고 포르투에 사는 젊은 친구들을 초대했지.

초대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포르투 주민]의 멤버였어.

[포르투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톡 단톡 방엔 내 또래의 교환학생과 워홀러, 혹은 여행자로 구성되어 있었어.

이 작은 모임은 자주 모여 함께 밥을 먹거나,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함께 놀러 다니곤 했어.

잠시 나의 여행을 멈추고 그 구성원이 되기로 마음먹자 마음이 학교 앞 퐁퐁(지역마다 이름이 다름)에 올라 뛰는 것 같았어.


그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사람들을 기다렸어.

가장 먼저 집에 들어선 건 두 명의 여행자와 한달살이를 하러 온 언니였어.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녀의 첫인상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어.

그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제 집처럼 편하게 소파에 드러누운 모습이 말이야.

마치 내 남자의 구역을 노리는 것 같아 괜히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굴었어.

티는 나지 않게.


내가 털을 세운 그녀의 이름은 미래. 언니와 나는 친자매만큼이나 친해졌다.


시간이 되자 하나 둘 집에 들어온 건 여자, 여자, 여자, 여자였어.

이 남자, 매일 밤마다 와인파티를 했다더니 꽃밭에서 했었구나.

하하하:) 이 색히.


치이이-

익어가는 고기 소리를 음악 삼아 애피타이저로 포트와인을 호록 호록 마셨어.

포르투갈에서는 포트와인이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거나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거든.

사실 저건 내겐 핑계야.

술 is 뭔들인데, 포트와인은 언제든 환영이거든.

게눈 감추듯이 삼겹살을 먹고서 본격적인 술자리를 폈어.


술이 들어가니 마음에 쏙 들지 않는 그녀와도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

어느새 그녀와는 말을 트게 되었고,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지.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그녀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았어.

그렇게 술을 마시고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게 되고 눈물도 흘렸더랬지.

그 밤, 나는 마음 터놓는 언니가 생겼어.

어린 시절 날 쥐어박던 오빠 대신 언니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던 소원이 이 날 이뤄진 거지.



포르투의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하늘색이었다.


독학으로 배운 요리로 매 끼니를 해 먹고,

밤이면 사람들을 초대해 와인파티를 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힐가든으로 소풍을 가고.

여행자가 아닌 주민으로서의 나날들.


나의 포르투 살이가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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