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길, 부르고스 성당, 약국방문
오늘은 라 리오하(La Rioja) 주에 있는 나헤라부터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ongo de la Calzada)까지 23km를 걷는 날이다.
버스로 지역을 이동해서 매일 다른 느낌의 길을 걷게 된다.
오늘 만난 길은 구시가지느낌의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아플까 봐 잔뜩 챙겨 온 약들을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고 있어서 약기운에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몸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발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일이 번거롭지만, 매일 아침마다 무슨 의식을 치르듯이 정성껏 발관리를 하고 출발준비를 한다.
구도시느낌의 거리를 지나서 오늘도 끝없이 펼쳐진 밀밭길을 걷는다.
여기가 메세타길이라고 했던가?
원래는 메세타길이 200킬로가량 이어진다고 하는데 한여름이면 그늘이 전혀 없어서 순례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메세타길을 이틀정도만 걸었다.
메세타길을 걸으면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면 보이는 게 온통 끝없이 펼쳐진 밀밭뿐이다.
흙길을 걷다 보면 마치 내가 밀밭에 묻혀버릴 것만 같다.
자연과 내가 온전히 만나는 길 나는 이 길에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눈물이 터져버렸는데 나는 눈물을 참고 싶지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내가 지금 산티아고순례길에 있다는 것과 날짜와 시차를 모두 신경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꿈속 같았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고 혼자 걷는 동안은 꿈을 꾸는 것처럼 많은 생각들이 들어왔다.
그 속에서 들리는 나의 목소리
"여기까지 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니?"
이건 분명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음성이었다.
너무나 강렬하게 와닿아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살아오느라 힘들었지? 여기까지 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니?
지금 너는 산티아고순례길을 걷고 있어.
나를 위로하는 무수히 많은 음성들이 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그냥 아무 이유가 없었고 푸른 밀밭 속에서 흙과 내가 하나가 된 것처럼 평화로웠다.
이 길을 걷는 내내 아이팟으로 재즈음악을 들었는데 서울에 돌아가서도 이 음악을 들으며 지금 이 느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람해 보았다.
오늘이 돼서야 순례길에서 나 자신을 만난 것 같다. 힘이 들었다.
독방을 썼어야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강하게 쓰시는 전직 영어선생님과 같은 방을 쓰게 되니 조금씩 불편함이 들다가 마침내 독방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다.
순례길에서 나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될까?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걷기가 딱 좋았다. 한참을 걸어서 점심을 먹게 될 골프장옆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현대적인 바에 내가 좋아하는 타파스가 종류별로 너무 다양하고 맛도 좋았다. 정말 럭셔리한 순례길이다.
우리는 AC Hotel by Marriott Burgos라는 곳에 묵게 되었는데 부르고스 성당과 5분 정도 거리여서 호텔에 짐만 풀고 부르고스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몸도 피곤하고 지쳐서 성당내부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나오는 출구를 찾아 서둘러 나와서 나는 근처 약국에서 감기약과 세안젤 등을 구입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이후의 시간은 피곤해서 그냥 호텔에서 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