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긴장이 풀린 날
오늘은 같은 호텔에 묵기 때문에 아침에 짐이 가벼웠다.
이제 점점 온도가 올라가서 낮에 걷기가 꽤 더운 느낌이 든다.
오늘은 어제 도착지점인 뽀르토마린부터 빨라싸 데 레이 (Palas de Rei)까지 25.5km를 걷는 일정이다.
이제 시차적응도 거의 되어가고 한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 가니 몸을 사리게 된다. 우리 일정에는 중간중간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서 힘든 경우 차로 이동이 가능했다. 오늘 나는 5킬로 정도 찻길만 걷는 지루한 길은 버스로 이동하는 걸 선택했다. 이제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즐기면서 걷고 싶었다. 아침공기는 상쾌한데 낮에는 태양이 뜨거웠다. 오늘도 걷기를 시작했다.
매일 걷는 길들이 모두 느낌이 다르고 걷는도중 순례자여권에 세요를 찍으러 Bar나 성당에 들리는 재미가 솔솔 하다. 오늘은 재미있는 세요를 찍어주는 성당을 지나는 길에 만났다. 성당은 아주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쉬울만한 작은 규모였다. 이곳에는 래지오라는 맹인신부님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순례자들은 이 레지오신부님에게 쎄요도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나도 도장이 특이하다고 해서 줄을 서서 인사를 하고 쎄요도장을 받았는데 도장 찍는 부분을 내가 직접 신부님 손을 잡아서 옮겨주어야 했기 때문에 나처럼 신부님이 맹인인걸 모르고 온 순례자들은 엉뚱한 곳에 쎄요도장이 찍혀서 당황하기도 했다. 맹인 신부님은 아주 쾌활하시고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여기도 도네이션으로 운영이 되는 곳이어서 1유로를 내고 재미있는 세요를 받았다.
순례길의 여정은 철의 십자가를 다녀온 이후부터 너무나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걷는 것도 익숙해지고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나의 까미노 너무나 행복한 길이다.
걷다가 마을마다 독특하고 예쁜 Bar들이 있어서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들어가 본다. 커피나 와인을 시켜도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 착즙 된 오렌지주스도 2~3000원 미만이면 마실 수 있다. 나중에 스페인 여행을 온다면 예쁜 마을에서 2~3일 찍 머무르면서 천천히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은 렌틸콩수프가 맛있다는 Bar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렌틸콩으로 수프를 만들어도 정말 맛이 좋았다.
한국 가서 꼭 만들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뭘 시켜도 싸고 양이 정말 너무 많다.
남기는 게 너무 아까워서 최대한 먹었는데 결국 저녁식사 후에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다.
오늘의 종착지인 시청건물 앞까지 왔다. 시간은 오후 5시 서울에서는 이 시간 커피를 마시는 게 엄두가 나지 않지만 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이때쯤 커피를 마시면 숙소로 가는 길에 피로감이 좀 덜 왔다. 이 종착지점에서 프린트로 내 이름을 찍어서 만들어주는 곳이 있어서 티셔츠쇼핑을 했다. 내일은 새 티셔츠를 입어야겠다. 순례일정은 매우 단조롭다. 아침에 모여서 출발하면 각자의 걸음으로 최종목적지로 정해진시간까지 모인다. 모든 일행이 도착하면 다 같이 버스로 호텔로 이동해서 저녁 먹고 쉬는 일정이다. 오늘은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날 갈비사진은 없지만 푸짐한 저녁을 먹고 나는 배탈이 나서 정말 새벽 내내 고생을 했다. 내일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