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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_첫 집 연대기

나가기-고치기-채우기, 허술하면서도 완고한 한 에디터의 독립기

by 정제이

몇 년 전부터 '언젠간 가봐야지.' 생각만 했던 서점을 드디어 방문했다.

건대입구 역 근처에 있는 인덱스 서점이다.


이곳에서 책 구경만 한 시간 반 정도 한 끝에 데려온 책이 있다.

[첫 집 연대기]

입구 벽면에 배치된 책들 중 하나였는데

이사 준비하는 내 처지 때문인지 제목과 주황색 표지가 왠지 맘에 들었다.


내용은 에스콰이어 에디터의

생애 첫 독립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도움이 될 정보가 있겠지 싶은 기대감과 잠깐 본 글맛이 깔끔했다.


목차는 간단하다.

나가기-고치기-채우기

나름대로 부연설명을 덧붙여보자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가기'

월세로 구한 2층 단독주택 '고치기'

취향 담은 물건으로 '채우기'


목차에서부터 책을 쓴 이유가 명확해 보인다.

집을 구하고 수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집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었을게다.

그것을 말하고 싶은 거겠지.


에세이는 힘을 빼고 쓴 글이라 보통 쉽게 읽힌다.

그래도 이 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다.

매달 여러 꼭지, 다른 소재의 글을 쓴 에디터 다운 내공이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는 글과 소제목들도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내친김에 인스타도 찾아봤다.

저자의 책 두 권을 읽고 악플을 남긴 이를 품어주는(?) 글마저 재치 있다.

(그나저나 책을 두 권이나 읽어준 건 어떤 의미에선 찐 팬인 거다.)


책 표지 하단에 소개된 글이 인상적이다.

"집에 서툰, 어쩌면 삶에 서툰 에디터의 허술하면서도 완고한 독립 라이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하는 단독주택 2층 집을 구한 저자.

인테리어 순서도 모른 채 진행하느라

업자들에게 혼나고 집주인에게 혼나고.

그래도 럭셔리 잡지 에디터로 명품들을 많이 봐온 터라

허세라면 허세일 수 있는 이태리 타일로 화장실 바닥을 깔지만

책상은 동네 중고가게에서 4만 원짜리를 구입해 쓴다.

[트렌드 코리아 2021] '자본주의 키즈' 편 사례로 실으면 좋을 것 같은 소재.


도시 살이가 좋지만 집 가까이에 자연이 있길 바라고

이케아 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는 한이 있어도

오래 쓰고 자신의 취향이 확고하게 드러난 제품만 집에 들여오자는

그만의 철학이 마냥 철없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타일 하나를 구하기 위해 타일의 모든 역사와 소재를 검색해 보고

그중에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취하는 방법들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작가의 삶의 방식이

"그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서울이 더 입체적일 수 있지."

동감하게 된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너무 무겁지 않게 재밌게 읽어주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처럼

시작부터 재밌게 읽었다.

다가올 나의 미래도, 재밌는 인테리어 연대기로 살릴 소재가 많았으면 싶다. :D

서점에서 준 책갈피. 이 책을 만난 추억을 기억하기에 좋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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