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_페이지 공백기

걸어서 명동 여행

by 정제이

몰개성으로는 살 수 없는 시대.

명동 한복판에 빈 공간을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내주어 이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가봐야지.


요즘 젊은이들은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지.

요즘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새롭게 꾸민 YMCA 연합회관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십몇 년 전, 보세 옷 사러 드나들던 명동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든 걸 겸사겸사 해서 다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된 명동은 한산하다.

게다가 을지로입구역에 내려 걷는 이곳은 내가 알던 명동이 아니다. 여행으로 다녀온 도쿄 같다.

그래. 오늘은 낯선 나라에 온 여행자처럼 다녀보자.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축물 명동성당이 보이는 곳.

그 맞은편에 자리한 전시공간은 이제 막 새 옷으로 갈아입은 YMCA 건물이다.

이런 건물이 있었던가? 희미한 기억엔 낡은 건물들이 고만고만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통유리창의 근사한 현대식 건물이 번듯하게 서 있다.


아직 청소 중인 층들을 둘러보니 기본 골조는 그대로 두고 벽에 흰색 칠을 하고 벽들을 제거해서 공간에 개방감을 준듯하다. 거기에 통유리창들을 배치하니,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고 낮은 층고의 단점도 상쇄된다. (아~이 공간 진심 부럽다.)


전시작품들도 하얀 공간에 배치하니 도드라져 보인다. 과한 것은 덜어내고 물건이 가진 특성만 오롯이 빛나도록 전시한 작품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나중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저런 오브제들로 배치해 보고 싶단 상상도 해본다.


평범한 일자 전등을 세로로 세우고 나무로 감싸주니 근사한 조명이 된다.

옥상 비상계단처럼 보이는 철제 프레임에 Y자 철제를 달아주니 옷걸이가 되고, 의자를 앉는 기능을 빼고 소품으로 바라보니 작고 특색 있는 작품이 됐다.

요즘 작가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는 시간.


보통은 “머리 부딪히니 조심하세요.”가 새겨졌을 튀어나온 모서리에 “HAVE A GOOD PAGE!”라고 적힌 걸 보자 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걸 센스라고 하지. 오늘도 새로운 미학과 센스 한 모금 얻어 마시고 왔다.


명동은 이젠 서울이기도 하면서 도쿄, 상하이, 심지어 페루 리마 같기도 했다.

걸어서 세계여행을 짧게 마치고 온 기분. 새롭다.: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