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될 사람의 발자국

층간 소음에 행복(?)한 요즘

by 정제이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위층에서 내는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엘리베이터 벽에 붙여둔

층간 소음 피하는 에티켓 포스터를 볼 때도,

뉴스에서 층간 소음으로 다투던 주민이

칼부림을 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남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 생각했다.

속 좁은 이웃들끼리 싸우는 거겠지 했다.

그 일이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직접 겪어보니 이게 꽤 심각하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들리는 쿵쿵쿵

그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 건

두어 달 전부터다.


2주 전에는 결국 경비실을 통해 조용히 해달라 부탁을 했다.

저녁 9시 이후에는 자제 좀 해달라고.

그날은 조용했다. 그날 저녁만...

얼굴도 모르는 위층 사람들

온몸의 에너지가 발 끝에 몰려있는 걸까.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니라는

포스터 그림이 떠오르면서

문 앞에 슬리퍼를 사둘까도 생각했다.

지난 3일간의 연휴 때도

인터폰을 누르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왔더랬다.

문득 윗집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는데,

연휴 마지막인 어제 저녁이었다.

산책 겸 밖에 나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뒤따라 들어오는 무리가 있었다.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

위층 발자국 소리다!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발걸음 패턴이 귀에 익었다.

허참.

발소리를 듣자 반사적으로

휙!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누구냐 넌. 얼굴 좀 보자.

발소리로 먼저 익숙해진

윗집 사람들은

이제 막 이십 대가 됐을까.

약간 오동통한(=한 몸무게 나갈) 중키의 '남자 청년들'이었다.

해맑은 얼굴로 쿵쿵쿵 위층으로 올라가는 청년들.

'아, 너네들이구나.'


하루 종일 집 여기저기를 쿵쿵쿵 걸어 다니고

무얼 하는지 쾅쾅쾅 두들기고

가끔은 쏟아질듯한 록음악까지 듣는 애들이

너네들이었구나.

늘 조용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사는구나.

얼굴을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소음은 불편하다.

아파트에 살아서 편리한 점이 참 많은데

요즘은 에너지가 많은 이웃 때문에 불편한 점이 생기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사를 갈 수도, 윗집이 당장 이사를 갈리도 없고.

어쩐다?

그래. 어차피 내가 이웃을 선택할 순 없으니,

차라리 내 맘을 바꾸자.

걔들이 쿵쿵쿵 돌아다닐 때마다

어제 본 그 해맑은 얼굴들 떠올리며

"이 크~게 될 놈들아. 축복한다."

라고 외치기로.

오늘 저녁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쿵쿵쿵 돌아다니고

줄넘기로 추정되는 소음이 추가로 들린다.

고개를 들고 외쳐본다.

"이 크~~~게 될 놈들. 축복한다!"

내 소리가 들렸나?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조용해졌다.

이거 효과가 있는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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