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도시

서양 문명의 모든 시작점에서

by Shin란트로

신들도 교통체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산토리니(JTR) 공항에서 아테네 공항(ATH)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아 곧장 호텔로 향했다.


'아, 드디어 신화 속 그 도시에 왔구나!'


내 머릿속은 벌써 올림포스가 펼쳐지고,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금발의 신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현실은 달랐다. 사방에서 경적 소리가 울려대고, 차들은 마치 누가 먼저 도착하나 경쟁이라도 하듯 엉켜 있었다. 신들의 도시라더니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내일이면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 오른다. 세계사 책에서, 여행 다큐에서, 수없이 봤던 그곳에 직접 간다니, 설렘을 넘어 묘한 떨림마저 느껴졌다. 오래 기다렸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전날 밤 같았다.


신과 인간, 예술과 정치가 공존하는 도시, 그리고 서양 문명의 모든 출발점, 아테네.

내일 만나자!


새벽부터 줄 서는 아크로폴리스

다음 날 아침, 시차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아직도 캄캄한 새벽에 눈이 번쩍 떠졌다. 전날 저녁 늦게 도착하는 스케줄이라 다음 날 아크로폴리스 방문은 오후 3시 표를 예매해 뒀었다. 그런데 일찍 잠이 깨져서, 그냥 움직이기로 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오픈런을 한 탓에 주변은 한산했다. 입장 시간을 바꿔줄 수 있는지 창구에 문의했더니 예약 사이트만 손으로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그래, 여행도 인생도 원래 계획대로만 되는 게 어디 있나.'


예매했던 티켓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현장에서 표를 다시 샀다. 30유로, 한국 돈으로 4만 원이 넘는데 그나마도 2배를 내고 입장하게 됐다.


'2,500년 된 유적을 보는 값 치고는 싸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사우스 슬로프(South Slope of the Acropolis of Athens) 입구로 갔기에 시작은 여유로웠다. 입장하기 위해 한두 시간씩 기다렸다는 여행담과는 달리, 아침 8시에 도착하니 표를 사고 들어가는 데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류 최초의 극장에서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뒤에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인다.

사우스 슬로프에서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디오니소스 극장(Theatre of Dionysus Eleuthereus)이다. 인류 최초의 야외극장으로, 연극과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곳이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이 이곳에서 초연됐다고 한다. 원래 목조로 지어졌다가 로마 시대에 석조로 확장됐다. 만 칠천 명이 앉을 수 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체육관 규모 아닌가. 기원전 6세기에 이런 걸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이곳에서 공연을 보던 아테네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들도 연극 한 편 보면서 한바탕 울고 웃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 혹시 그때도 지금 우리처럼 팝콘 같은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구경했을까? '저 배우 연기 정말 끝내주네!' 하며 옆 사람과 소곤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의 그리움이 영원한 무대가 되고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자리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Odeon of Herodes Atticus)은 로마 시대인 서기 161년에 지어졌다. 아테네의 귀족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아내 레기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4,680개나 되는 대리석 좌석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는데, 그 자리마다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이 수백, 수천 년을 넘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요즘 세상에는 아무리 세계적인 부자라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이런 어마어마한 기념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헤로데스 음악당을 보거나, 저 멀리 인도 타지마할을 떠올려 보면, 옛날 사람들의 사랑은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나 싶다. 한 남자의 그리움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문화유산으로 남을 정도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괜히 옆지기를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이 극장의 음향 설계는 현대의 공연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다양한 공연들이 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극장 뒤의 아테네 풍경은 이미 완벽한 무대 배경이 되고, 헤로데스의 아내를 향한 사랑 이야기는 메아리가 되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거인의 다리를 지나


프로필라이아(Propylaea)는 기원전 437년 무렵,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전쟁이 끝난 뒤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재건하면서 세운 대문이다. 전차도 거뜬히 지날 만큼 폭이 넓고, 외관도 압도적으로 웅장하다. 이 거대한 기둥 아래로 지나다 보면 순간 주눅이 든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이 한 걸음씩 천천히 문을 통과해야 했다. 거인의 다리처럼 우뚝 솟아오른 기둥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어루만지며 걸었다. 건축에 문외한이라도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직 아크로폴리스는 뜰도 밟기 전인데,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이 벅차오르면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가인박명, 아름다움의 슬픈 운명

드디어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앞에 섰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그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마치 꿈을 꾸는 듯 현실감마저 가물거렸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진 이 신전은 정말이지 완벽함의 극치였다. 아니, 완벽했을 거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지금도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솟아 있는 크레인과 비계가 함께 시야에 들어왔지만, 파르테논의 웅장함만큼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16킬로미터나 떨어진 펜텔리콘 산에서 대리석을 실어 날라 이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다니, 그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막대한 비용과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 한편이 묵직해진다.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순금과 상아로 빚어낸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전쟁과 약탈 속에 사라져 버린 수많은 유물들을 생각하면, 아릿한 슬픔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신전 안팎에는 아테네의 영광과 신화를 담은 조각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고, 벽면은 화려한 프리즈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신전 전체의 곡선과 비례였다. 신전의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계산하고 설계했다고 한다. 예술적 완벽함을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노력에 절로 감탄하게 됐다.

이 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전쟁으로 소실되고, 발굴 과정에서도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아픔을 겪은 파르테논. 이 보석 같은 유산을 보면서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구하다.”
아름다움은 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은 그 운명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궁극의 가치, 이를테면 진선미나 자유, 민주주의 같은 소중한 것들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원래는 하늘을 향해 당당히 서있던 대리석 기둥들이 이제는 땅바닥 이곳저곳에 부서진 채 뒹굴고 있었다. 처음의 아름다움은 부서지고 퇴색했지만,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돌 하나하나가 위대한 유산이 되는 이유라 생각됐다.


침묵의 무게, 여인들의 강인함

아크로폴리스 북쪽을 따라 걷다 보면,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이라는 신전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곳은 도시를 지키는 아테나 신,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리고 전설 속 왕 에레크테우스까지 함께 모시는 복합 신전이다. 북쪽 주랑에는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찍었다는 바위와 전설도 전해진다.

포세이돈을 이긴 아테나 여신의 올리브 나무


떠받들어야 할 신이 많아서였을까. 신전 남쪽 주랑에는 ‘카리아티드’라 불리는 여인상들이 무거운 지붕을 묵묵히 떠받치고 있다. 에레크테이온의 상징이자, 그리스 예술사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여섯 명의 여인이 말없이 신전을 받치고 서 있는 모습. 불평하는 기색 하나 없이 지붕을 짊어진 그들의 표정에는 어떤 단단함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건 복제품이고, 원래의 여인상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복제품일지라도 여인상들이 주는 울림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여성의 강인함, 나는 그 안에서 그리스 여인 특유의 생활력과 의연함을 읽을 수 있었다.


승리의 여신, 상처를 품다

프로필라이아 오른쪽 절벽 위에는 아테나 니케 신전(Temple of Athena Nike)이 우뚝 서 있다. 요즘에는 '나이키'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승리의 여신, 니케가 바로 이 신전의 주인이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웠지만, 신전 자체는 여러 번 무너지고 또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승리를 기리는 신전이 오히려 패배의 흔적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17세기에는 오스만 튀르크 군사들이 요새를 짓기 위해 신전의 돌을 하나씩 떼어갔다고 한다. 19세기에 그리스가 독립한 뒤에야 비로소 예전 모습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신전의 조각들은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제자리로 돌아오길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오래전 아테네 사람들이 손 모아 바랐을 승리와 평화가 저릿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이 바라는 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영광보다는 소박한 일상과 평온, 그리고 따스함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치라는 걸, 승리의 신전에서 깨닫는다.


바울의 목소리, 시대를 넘어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us Hill)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민둥산처럼 드러난 바위 언덕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us Hill)이다. 고대 아테네 시절, 이곳에선 원로 의회가 모여 살인이나 신성모독처럼 중대한 죄를 심판하곤 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길에 아테네를 찾았을 때, 바로 이 언덕에 올라 ‘알지 못하는 신’에 관해 설교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17장에 적혀 있는데, 생각할수록 감동이 밀려왔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숱한 신들을 모셨지만, 혹시나 놓친 신이 있을까 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까지 세웠다고 한다. 바울의 설교를 듣던 사람 중에 디오니시오스라는 판사가 있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고, 훗날 아테네의 첫 주교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양쪽모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을 바꿨고, 그 변화는 역사의 흐름까지 바꾸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고대와 현대, 그리스와 미국,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조용히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바울이 내게도 말을 건네오는 것만 같았다.


플라카와 모나스티라키, 아테네의 따뜻한 활기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플라카(Plaka)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을 따라 놓인 돌길,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파란 그리스 국기까지, 낯선 이국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관광지답게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대형 상점이 아니라 그런지 우리네 시장골목 같이 친근했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사이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아크로폴리스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사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하드리아누스 개선문(Arch of Hadrian) 앞에 도착했다. 서기 131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해 세운 문이다. 한 사람의 발걸음을 위해 이렇게 거대한 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 시절, 황제의 절대적인 권력과 로마 제국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됐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문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는 경계로 남아 있다. 요즘에는 이 문 사이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게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주변 사람들을 살펴봤다. 더위와 복잡함에 지친 그들에게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의 역사적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 광장은 만남의 광장답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은 수도원’이란 뜻의 이곳은 광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자리한 판타나사 교회(Church of the Pantanass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경건한 수도원의 기운과 분주한 사람들의 일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이곳만의 독특한 활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테네라는 도시의 오랜 변천사가 이 한 곳에 다 녹아 있는 듯했다. 수공예품과 갖가지 기념품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걸음이 느려지고, 현지 상인들과 흥정하는 시간마저도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 광장


아테네, 미식으로 기억되다

그리스 음식은 그 국기만큼이나 깔끔하고 산뜻했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서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사바스(Savvas)라는 식당은 렌터카 직원에게 ‘로컬들이 자주 가는 맛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추천해 준 곳이었다. 플라카에 숨은 보석 같은 식당이었다. 포장 주문하는 부스도 같이 있었는데 3~5유로 가격에 푸짐해서 그런지 주문하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식당에 앉아서 식사해도 15유로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부드럽게 구워진 고기와 신선한 자치키 소스가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선한 올리브와 페타 치즈로 만든 샐러드는 그리스 여행 내내 먹게 됐는데, 아테네의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렸다. 디저트로 피스타치오 젤라토 한 스쿱까지 곁들이면, 완벽한 마무리!


타베르나는 현지 사람들이 찾는 동네 식당을 말한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관광지보다 10~15% 정도 저렴하게 그리스 일상의 맛을 만날 수 있다. 여행 중 한 번쯤은 그리스 맥주, 미토스를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스에서의 식사는 매번 작은 축제 같았고, 그리스 사람들의 넉넉한 정서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사바스 식당에서 먹은 기로스와 샐러드
사바스 식당 이층에서. 뒤로 아크로폴리스가 멀리 보인다.

유한하기에, 그래서 더 아름다운

파르테논의 무너진 기둥들을 보면서 온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거 같다. 페리클레스가 꿈꿨던 찬란한 이상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오히려 세월이 남긴 상처와 흠집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묵직한 울림이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의 아름다움 역시 그 유한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살아간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공들인 꿈이 무너질 때도 있다.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연약함과 마주칠 때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대상이 신이든, 사랑이든, 예술이든, 진리든 간에 말이다.


파르테논의 돌기둥이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도 아마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을 꿈꾸며 쌓아 올린 것이기에. 그 간절함이 세월을 견딘 돌무더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아테네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과 만났다. 과거의 누군가와 대화하고, 지금의 나와 대화하고, 삶의 의미와 마주하는 시간.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유한하기에 더 소중하고, 연약하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아테네에서 만난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신들의 도시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은 하루였다.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 가사처럼 “흰 장미가 필 때까지” 아테네여, 안녕.


실용 여행 정보

아테네 국제공항(ATH)에서 아크로폴리스까지는 차로 45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메트로 M3 블루라인을 이용하면 Acropoli 역까지 40분 정도 소요된다. 만약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아크로폴리스 근처 Anapafseos 10 Garage 같은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주차 요금은 한 시간에 5유로, 하루 종일 세우면 10~15유로 정도이고, 중심지로 가까워질수록 점점 요금이 올라다.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은 미리 hhticket.gr 등 온라인에서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현장에서 바로 사려면 1~2시간 줄을 설 수도 있다. 피크 타임에는 표 사는데 1~2시간, 입장하는데 1~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크로폴리스만 입장할 수 있는 단일 티켓과, 여러 유적지가 포함된 콤보 티켓이 있다. 시간 여유가 되면 콤보 티켓을 추천한다. 5일 동안 아크로폴리스뿐 아니라 고대 아고라,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등 총 7곳의 유적지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가성비가 좋다.


특정한 날에는 무료입장도 가능하다. 3월 6일 멜리나 메르쿠리 추모일, 3월 25일 그리스 독립기념일, 정교회 부활절 일요일, 10월 28일, 유럽 유산의 날(9월 마지막 주말), 그리고 1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에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여행 일정이 이와 겹친다면 한번 확인해 보자.


아크로폴리스는 아침 8시에서 10시, 또는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해질 무렵에 방문하는 게 가장 좋다. 이 시간대는 관광객이 비교적 적고, 햇빛도 한결 부드럽다. 반대로 여름 한낮, 특히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는 뜨거운 햇살에 대리석 바닥마저 달아오르니 피하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리석이 유난히 미끄럽다. 운동화가 필수이고, 샌들은 정말 위험하다. 실제로 넘어지는 사람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여름이라면 물과 가벼운 모자도 꼭 준비해 가기를!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알지 못하는 신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만들어놓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집안 곳곳에 정성스럽게 정화수 한 그릇씩 떠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빌곤 하셨다. 조상님께도, 성주님께도, 이름 모를 신령들께도 빌고 또 빌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할머니가 무지해 보이고, 미신을 믿는 게 창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이제는 그 행동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는지 알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의지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아테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신을 다 모시면서도 "혹시 우리가 모르는 신이 또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그 마음이 왠지 모르게 짠하게 다가왔다.


통찰력, 경계를 넘다

사도 바울이 그 제단을 보고 설교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남다른 통찰력에 감탄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람들, 우상 숭배나 하고... 무식하기 그지없네” 하며 손가락질부터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문구에서 그들의 깊은 갈망을 읽었고, 그 틈을 빌려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로 다가가는 길을 발견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신을,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시작인가. 그는 싸우려 들지 않았고, 비난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마음과 믿음에서부터 출발했다.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 아이가 관심 갖는 단어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마음속 깊은 갈증을 읽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렸다. 겉으로는 철학을 논하고 지혜를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목마름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이 그들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잘 먹고 잘 사는 듯 보여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할 때가 많다. 뭔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점집에도 가보고, 절에도 가고, 교회도 찾아간다. 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바울은 바로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같은 눈높이에서

바울의 대화법을 보면서 한편으로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자주 상대를 가르치려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상대를 설득하려고만 했던 건 아니었나.


바울은 달랐다.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듯, 아테네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가갔다.


내가 아는 J가 떠올랐다. 누구든 J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었다. 사소한 이야기도 J와 함께 있으면 어느새 속내를 털어놓게 됐다. 비결이 뭘까 싶어서 가만히 살펴보니, J는 상대의 이야기를 서둘러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참 힘들었겠다.” “아이고, 그래서 얼마나 속상했겠어.” 먼저 공감부터 해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진심을 드러내게 되는 것 같았다.


바울도 아마 그랬을 거다. “여러분, 신앙심이 참 대단하세요” 먼저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서 "그런데 혹시 이런 신에 대해 들어봤나요?"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건넸다.


나이 들어 배우는 것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논리가 아니라 따뜻한 공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릴 때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바빴다. "이건 맞고 저건 틀려" 하면서 흑백논리로 세상을 나누려 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세상에는 회색 지대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상대방도 그 회색 지대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다.


바울은 그걸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테네 사람들의 회색 지대를 인정하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정말 열심히 신을 섬기고 계시네요. 그런데 좀 더 분명한 분을 소개드리고 싶어요"


내가 꿈꾸는 대화

나도 바울을 닮고 싶다. 누군가와 마주할 때 성급하게 내 말부터 꺼내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아픔이나 기쁨을 있었기에 지금의 생각에 이르렀는지...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나, 아이가 엉뚱한 질문을 던질 때, 이웃과 소소한 일상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아,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드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였네" 상대의 자리에 서서 충분히 이해하는 게 먼저고, 내 생각이나 의견을 건네는 건 나중이어야겠다. "혹시 이런 생각은 어때?" 조언이라기보다 하나의 제안으로, 강요가 아닌 선택지 중 하나로 건네는 그런 대화.

내 입술의 말들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진짜 대화로 채워지길 꿈꾼다.


각자의 '알지 못하는 신'을 찾아서

바울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 앞에서 했던 말들을 되새겨본다. 그건 단지 설득의 기술이 아니었다. 영리한 전도 전략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빈 공간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빈자리가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높은 곳에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갈증을 먼저 헤아려주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알지 못하는 신'에게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내지만, 그 본질적인 불안과 두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는 지금, 나의 '알지 못하는 신'은 무얼까 생각해 본다. 거칠고 숨 가빴던 인생의 전반전을 치르면서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그 수많은 '알지 못하는 신'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했다. 검은 보자기 아래 가려진 커다란 덩치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이었음을 기어이 알아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