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만난 사랑의 흔적
아테네를 떠나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저 멀리 코린토스(Korinthos)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부르는 ‘고린도’(Corinth)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가슴 한켠이 두근거린다. 그 이름이 주는 깊은 울림 때문일까, 아니면 성경에서 읽었던 바울의 편지가 생각나서 그런 걸까.
고린도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고린도 운하(Corinth Canal)가 먼저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흐르는 한 줄기 물길은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이어준다. 높이 때문인가, 그 앞에 서니 이상하게도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 길지 않아 보이는 이 운하는 6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폭은 24미터 남짓, 깊이는 8미터 정도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유대인 노예들을 동원해 파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오랜 세월이 지나 완공된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19세기말이었다.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로 불리지만, 사실 고린도 운하는 실패한 운하라고 한다. 어귀가 너무 좁고 깊이도 얕아 큰 상선들은 지나갈 꿈도 못 꾼다. 그래서 오늘날 이 좁은 물길을 오가는 건 관광용 소형 유람선뿐이었다.
이 작은 물길을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까. 곡괭이와 삽이 만들어낸 울림이 오랜 세월 계곡 사이를 메아리쳤겠지. 그 소리 속에서 모두 저마다의 꿈을 꾸었으리라. 운하 위에 서 있자니 인간이 가진 집념과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인생도 이 운하 같을 때가 있다. 처음엔 멋진 꿈과 청사진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완성의 순간에 마주하는 건 처음 기대와 전혀 다른 풍경일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다.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실패했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치열했던 흔적과 끝내 다 닿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 내 마음을 더 깊이 울리고 있었다.
운하가 좁아 예상치 못한 물살에 부딪히고, 시간이 흐르자 더 커진 배와 늘어난 화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 고린도 운하처럼 나 또한 삶의 무게에 부서지고 넘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물류 길은 멈추었는데, 그 자리에 또 다른 활기가 피어났다. 컨테이너선의 뱃고동 소리 대신 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건 번지점프를 즐기는 함성과 사람들의 환호 소리였다. 원래의 기대와 전혀 다른 쓰임을 받고 있는 코린도 운하는, 우리의 실패 또한 언제든 새로운 의미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실패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삶은 언제나 다시 쓰여질 이야기니까.
운하를 뒤로하고 고린도 고대도시(Ancient Corinth)로 향하는 길에는 소박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 슈퍼마켓, 약국이 어우러져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해발 575미터에 솟은 아크로고린도(Acrocorinth) 언덕을 올려다본 순간, 이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단박에 와닿았다.
고린도에는 겐그레아와 레기움, 두 개의 항구가 있었다. 그 덕에 동서 무역의 중심지가 됐고, 인구 30만의 고대 지중해 최고의 상업 도시가 되었다. 부와 권력의 규모로만 따지면 아테네도 고린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돈과 문화가 넘쳐 난만큼, 타락의 그림자 역시 짙게 드리웠다.
아크로고린도 산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신전에는 천 명이 넘는 젊은 여사제들이 있었고, 이들은 종교라는 이름 아래 매춘을 행했다. 사랑의 여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관능과 방탕이 신성한 일로 여겨졌다. 무역과 상업, 그리고 매춘으로 벌어들인 돈은 다시 사치와 탐욕을 위해 소비되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는 헬라어로 ‘방탕함’, ‘사치’, ‘문란함’을 뜻한다.
유적지 입구를 지나자마자, 아폴론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한때는 무려 서른여덟 개나 되는 거대한 기둥들이 이 신전을 떠받치고 있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통째로 깎아낸 대리석 기둥이 주는 위압감은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는 일곱 개만 남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대리석 기둥들. 사람이 만든 건축물은 이렇게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바로 그 위에 펼쳐진 하늘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푸르고 높기만 했다.
화려함의 끝과 타락의 극치가 뒤섞여 있던 도시, 그 모든 영광도 부끄러움도 지금은 돌무더기로만 남아 있었다.
유적지 한 귀퉁이엔 베마(Bema)라 불리는 재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높이 5미터, 폭 15미터의 돌 단상으로, 이곳에서 총독이 연설을 하거나 재판을 열었다. 높은 곳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권위를 한껏 뽐냈던 자리다.
갈리오가 고린도와 아가야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복음 전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가 율법을 어겼다며 이 재판정에 세웠다. 바울은 이곳에 서서 심문을 받았다. 갈리오는 그 일이 로마법과 상관없다는 걸 알고 바울을 풀어줬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부부도 로마에서 고린도로 와있었다. 그들은 장막을 만들며 함께 지냈다. 회당장 그리스보와 가족들을 비롯해 고린도 사람들이 하나 둘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떤 유대인은 바울을 고발하고, 어떤 고린도 사람은 삶이 변화됐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이렇게 반응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결국 말 자체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린도는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즐길 거리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 바울이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다. 이 돌단 아래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봤다. 마음이 먹먹해왔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질문을 했던 걸까. 네모난 돌 위엔 고린도후서 4장 17절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우리가 잠시 겪는 가벼운 고난은,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남기고 간 건 ‘사랑’이었다. 고린도전서 13장, 그 유명한 사랑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이 구절은 지금도 고린도 사도바울 기념교회 입구 오른쪽 대리석 판에 헬라어로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나는 그 대리석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노래로 부르기도 하고, 책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익숙한 구절인데, 이 날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그리고 진하게 마음에 파고든 건 처음이었다.
바울은 왜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토록 ‘사랑’을 강조해야만 했을까.
고린도는 아프로디테를 수호신으로 모시던 도시였다. 이름은 ‘사랑의 여신’이지만, 신화 속 아프로디테의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러울 정도다. 남편이 있으면서도 수많은 신들과 관계를 맺고, 그걸 사랑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런 신을 모시는 고린도 사람들의 삶이 어땠을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울이 편지에서 "너희 가운데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하니, 이런 일은 이방인 중에도 없는 것이라"고 꾸짖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그걸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일들이 미화되고 또 포장되는지 모른다. 요즘 들어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 것 같다. 텔레비전 드라마만 봐도 불륜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배신은 운명이라는 말로 합리화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런 일들은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로 여겨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무슨 일이든 용서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마 바울이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남긴 것도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 아닐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넘쳐나는 거짓 사랑들 속에서, 바울은 진짜 사랑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었을 거다.
고린도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찾아 이 먼 곳까지 왔을까. 돌마다 새겨진 오랜 역사와 천 년을 버텨온 유적의 아름다움도, 사실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에서 누군가 품었을 슬픔과 사랑, 그리고 사랑을 전하려던 간절한 마음, 그 흔적을 좇아온 건지도 모른다.
바울은 이 도시에 어떤 사랑을 심고 싶었을까. 아프로디테 신이 보여준 욕망과 허영으로 가득 찬 사랑이 아니라,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 진실된 사랑, 그런 사랑을 말하고 싶었을 거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고린도였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 있었는지 모른다.
고린도에 필요했던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세워주는 마음, 내 기쁨에만 몰두하지 않고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걸어주는 마음. 이런 사랑만이 갈라진 마음과 무너진 관계를 다시 이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 인생도 찬란하게 빛나지 않을까.
이제는 시간의 빛도 바래고 황금빛 번영도 사라진 고린도. 하지만 바울이 남긴 사랑의 메시지는 이곳에 남아 있었다. 물질과 자기만족이 가장 중요해진 요즘 세상에도, 이곳을 찾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도,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분명히 알게 됐다. 내 인생에도 그런 사랑만이 영원한 의미로 남으리라는 것도.
코린토스는 아테네에서 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아테네 KTEL 버스 터미널에서 정기적으로 버스가 있다. 시내는 비교적 평탄하고 작아서 주요 관광지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숙박은 시내와 해변 근처에 많이 몰려 있고, 고급 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 아파트형 숙소까지 다양하다. 특히 근처 루트라키 지역은 바다 전망과 스파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들이 많다.
관광 명소로는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폴로 신전과 고대 시장, 그리고 경기장 등을 둘러볼 수 있어서 고대 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아크로코린토스 요새는 펠로폰네소스에서 가장 큰 요새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다. 전망도 좋아서 코린토스 해안과 주변 지역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코린토스 운하도 빼놓을 수 없다. 좁고 짧지만 인상적인 이 운하는 번지점프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루트라키 해변에서는 아름다운 백사장과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근처에 스파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아크로코린토스에서 산책이나 트레킹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고대 유적과 더불어 주변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 땅을 밟던 순간을 상상해 본다. 레카이온 대로를 따라 걷던 그의 발걸음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었을까. 분명 자신만의 계획과 꿈을 품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글라우디오 황제의 추방 명령 한 마디에 로마에서의 모든 삶을 뒤로하고, 고린도까지 떠밀려온 사람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직장을 따라 이사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만약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만약 바울이 아테네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다면? 이 세 사람이 고린도에서 만날 일이 있었을까. 사람의 계획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만나야 할 사람들은 결국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 게 인생의 신비로운 이치 같다.
고린도 박물관에서 '히브리인들의 회당'이라고 새겨진 돌조각을 보면서 그 시절을 그려 봤다.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들도 어디선가 떠밀려온 사람들이었을까.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회당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궈갔을 사람들...
바울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장막을 만들며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지냈다. 새벽마다 천을 재단하고 바늘로 꿰매면서, 그렇게 일상을 나누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위대한 사도와 그의 든든한 동역자로만 기억되지만, 그들 역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이면 피곤에 지쳐 잠자리로 향하는 일상을 보냈을 거다. 그 보이지 않는 일상의 반복이, 그 속에서 나눈 우정과 신뢰가,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는 업적의 밑거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고린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에라스도라는 이름의 남자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끝자락에 "시 재무관인 에라스도가 안부를 전한다"는 짧은 인사가 담겨 있다. 고린도 시의 재정을 책임지는 요직에 있던 사람이었다.
흥미롭게도 고고학자들이 고린도 유적을 발굴하면서 아고라에서 야외극장으로 이어지는 돌길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ERASTVS. PRO. AED. S. P. STRAVIT'
'에라스도라는 재정 책임자가 자비를 들여 이 길을 포장했다'는 내용이다. 도시의 돌길 포장을 자기 개인 돈을 들여서 했다면, 재력도 영향력도 상당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시대의 물결에 떠밀려 고린도에 흘러든 사람들이었다면, 에라스도는 이미 그곳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이었다. 게다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바울과 만났을까. 왜 장막 만드는 평범한 유대인과 친구가 되었을까. 권력도 있고 돈도 있는 사람이 굳이 바울 같은 사람과 가까이 지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 그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 자신의 안부를 함께 전해달라 부탁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 주는 일도, 에라스도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일도,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 그 놀라운 역사 뒤에는 장막을 함께 만들며 바울을 돌본 부부의 헌신이 있었고,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바울을 후원한 관리의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데스티니(Destiny).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만남처럼, 바울과 에라스도의 만남처럼, 우리 삶에도 그렇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만남들이 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내딛는 발걸음조차도, 나중에 돌아보면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 퍼즐 조각처럼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 말이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듯해도,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이야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결국 우리 모두 어디선가 떠밀려온 사람들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