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하늘 가까운 공중수도원의 초대

영혼의 산을 오르다

by Shin란트로

신이 무심코 떨어뜨린 돌덩어리들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350킬로미터쯤 달려 칼람바카에 도착했다.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평원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거대한 사암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메테오라(Meteora)'라는 이름 자체가 ‘매달린 바위’, ‘공중에 떠 있는’,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이라니,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다 싶었다.

그리스 남쪽에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메테오라 초입의 모습

수천, 수만 년 전에 이곳은 바다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닷속 퇴적물들이 쌓이고, 침식과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지금처럼 특이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자연의 조각 솜씨에 감탄하고 있을 때, 수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험준한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지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올랐을까? 그 옛날에는 밧줄과 도르래에 그물 바구니를 매달아 겨우 오르내렸다는데... 안전장치 하나 없이 목숨을 내걸고, 누군가는 저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왜 하필 이 험한 절벽이었을까

바위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동굴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9세기부터 발견되었다. 그런데, 14세기에 들어서 비잔틴 제국이 쇠락하고 튀르크족이 몰려오자, 사람들은 혼란을 피해 더 높고 더 험한 바위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때부터 이곳에 본격적으로 수도원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세상의 소음을 등지고 신과 가까워지고 싶었다면, 꼭 이런 아찔한 절벽을 택해야만 했을까? 그냥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은 천천히

메테오라 수도원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유료였다. 외향적인 남편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얘기하길 좋아한다. 화장실을 지키는 아저씨와 얘기하면서 어떤 순서로 방문할지 계획을 다 세워놓았다.

입구에서 아저씨가 친절하게^^ 코인으로 바꿔준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Holy Monastery of Agios Nikolaos Anapafsas)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 가장 낮은 고도에 있는 수도원으로 16세기에 세워졌다. 1527년 크레타 출신 테오파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유명하고, 바위와 하나로 어우러진 건물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세월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Holy Monastery of Agios Nikolaos Anapafsas)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Holy Monastery of Agios Nikolaos Anapafsas)


계단을 오를수록 세상은 작아지고

한때는 이곳에 24곳이나 되는 수도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6곳만 남아 있었다. 메테오라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 복합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그중에서도 그레이트 메테오론 수도원(Holy Monastery of Great Meteoron)이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입구에서 613미터 높이의 바위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호기롭게 숨을 가다듬고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수도원에 도착해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게다가 오르느라 너무 숨이 차서!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머릿속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14세기에 성 아타나시오스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분명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입구에는 여성 방문객들을 위해 스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르고, 그리스에서는 정교회의 예를 지키는 법. 나 역시 마음에 드는 천을 골라 허리에 질끈 두르고 수도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에는 세 개의 예배당과 박물관이 있었고, 다양한 성화와 성물들이 정성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여성 방문객은 입구에서 치마대용으로 천을 두르고 입장해야 한다.


수도원 안에는 프레스코화와 비잔틴 예술품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지키려 했던 건 신앙만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와 문화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었다. 귀한 유물과 문서들은 이 바위 위에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남았다.

또 농기구를 보관해 놓은 창고, 목공 작업을 하는 공방, 와인 저장고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활기찬 공동체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20250517_113227.jpg 와인 저장고
20250517_113215.jpg 공방의 도구들


밧줄 사다리의 흔적을 따라

바를람 수도원(Holy Monastery of Varlaam)은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은 성 바실리우스 대왕과 신학자 성 그레고리우스, 크리소스토무스 성 요한 세 명을 기리는 예배당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세 명의 성직자(Three Hierarchs)' 또는 '세 명의 대교부'로 불리는데, 초기 기독교에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던 성인들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헌신 덕분이란 걸 깨닫는다. 195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밧줄과 도르래에 매달려 오르내리려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 높은 곳에 붙들어 놓았을까.

바를람 수도원(Holy Monastery of Varlaam)
바를람 수도원(Holy Monastery of Varlaam)
바를람 수도원을 배경으로

부드럽고 강한 그녀들의 일상

16세기에 세워진 루사누 수도원(Holy Monastery of Rousanou)은 여성 수도원이다. 아찔한 바위 위에 자리한 이곳에서 수녀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수도원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와인과 벌꿀을 보며, 분주하지만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이 그려졌다. 세상과 단절되었지만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루사누 수도원(Holy Monastery of Rousanou)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수도원(Holy Monastery of St. Stephen) 역시 여성 수도원이다. 이곳은 접근이 쉽다 보니 많은 여행자가 찾아온다. 수도원 안에는 아름다운 예배당과 정원이 있어, 잠시 들러 쉬어가기에도 제격이다. 작은 정원에 앉아 쉬는데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아마도 수백 년 전부터 이 바위를 스쳐 간 바람이겠지. 그 바람에는 수많은 기도와 고요한 침묵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수도원(Holy Monastery of St. Stephen)


제임스 본드도 오르기 힘들었다

아기아 트리아다 수도원(Monastery of Holy Trinity)은 영화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여러 수도원 중에서도 가장 험한 바위 위에 있어 오르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대신 정상에서의 풍경은 단연 압도적이다. 이곳에 서면 메테오라의 기묘한 바위 무리와 드넓은 평원, 저 멀리 펼쳐진 산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아기아 트리아다 수도원(Monastery of Holy Trinity)
주변의 파노라마 뷰가 장관이다.

100년 전통, 영혼을 채우는 그리스 가정식

수도원을 내려와 미리 찾아둔 메테오라 게르손 패밀리 레스토랑(Meteora Gkertsou Family Restaurant)으로 향했다. 1925년부터 백 년 가까이 된 그리스 전통 식당으로, 칼람바카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한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산악 지대 특유의 분위기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리스 가정식을 여기서 맛볼 수 있었다. 신선한 현지 재료와 오래된 가족 레시피로 만든 양갈비와 야채 스튜가 바위산을 오르내리며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포근하고 넉넉한 인심과, 오랜 세월 더해진 산지의 깊은 풍미가 이런 거구나 싶어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메테오라 게르손 패밀리 레스토랑(Meteora Gkertsou Family Restaurant)

모래 위에서 끓인 커피 한 잔

식사를 하고 나니 근처 카페들이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커피점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식 커피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즈베(cezve)라는 작은 커피 포트에 커피 가루와 물을 함께 넣고 끓인다. 신기한 건 호볼리라는 금속 냄비에 모래를 가득 담고 그것을 달궈서, 그 위에 제즈베를 올려놓고 커피를 우린다는 거다. 모래 위에서 끓이는 커피라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 모금 마셔본 그리스식 커피는 예상과 달랐다. 진하고 텁텁했다. 우리나라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솔직히 첫 모금엔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두 번째 모금을 넘기다 보니 이상하게 정이 붙었다. 처음엔 낯설고 거칠었던 맛이,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고유한 문화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다. 여행도 이 커피와 비슷하다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걸 낯선 채로 받아들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모래 위에서 끓인 진한 그리스 커피를 마시며, 익숙하지 않은 매력에 잠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너머, 오랜 시간 바위산이 지켜온 침묵 속에서, 이 도시는 내게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실용 여행 정보

아테네에서 칼람바카까지는 차로 약 3시간 반 걸린다. 라리사역에서 기차를 타면 4~5시간 정도 소요되고,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칼람바카나 카스트라키에서는 수도원까지 매일 세 번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메테오라 투어 버스를 이용하면 여섯 곳의 수도원을 한 번에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데, 당일 마지막 기차 시간에 맞춰 역까지 데려다 주니 편리하다.

숙소로는 Divani Meteora Hotel은 4성급이라 전망과 조식이 만족스럽고, Doupiani House Hotel은 3성급이지만 바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가족 여행이라면 한적한 위치에 있는 Hotel Kastraki도 추천할 만하다.

메테오라의 6대 수도원은 각각 개장 시간과 휴무일이 달라, 미리 확인하고 방문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고 금요일에 쉬며, 루사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장하고 수요일이 휴무다. 그레이트 메테오론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 바를람 수도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며, 금요일에 쉬고, 아기아 트리아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고 목요일에 쉬며, 아기오스 스테파노스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오픈, 월요일에 쉰다. 내가 갔을 때는 수도원마다 입장료가 5유로였고, 복장 규정이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입구에서 여성은 스커트 대용의 천을 둘러야 입장 가능하고, 남성은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

수도원마다 계단이 많으니 운동화와 물은 필수다. 시간이 부족해 수도원을 모두 다 둘러볼 수 없다면, 그레이트 메테오론 수도원을 우선적으로 방문한 뒤, 체력과 시간에 따라 나머지를 선택하면 좋다. 그레이트 메테오론 수도원 안에는 깨끗한 화장실도 있어 여행자에게 편리하다. 또, Psaropetra 전망대에서는 수도원 전체를 파노라마 뷰로 감상할 수 있고, Meteora view sunset은 석양 명소로도 유명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당신의 산은 어디인가


공중 수도원이 내게 묻다

메테오라를 떠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바위 위 수도원들은 멀어지며 점점 작아지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더 크고 선명해져만 갔다. 저 수도사들은 대체 무엇을 갈망하며 그 높은 곳까지 올랐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곳까지 와서, 무얼 보고 가는 걸까.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금세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 교통이 불편하다, 생활이 힘들다, 사람이 적어 외롭다... 이런저런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메테오라의 수도사들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일부러 가장 불편한 곳, 가장 험준한 절벽 위, 가장 고립된 자리를 선택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편안함이 아니었다. 절대자와의 만남, 그거야말로 그들이 찾고 찾던 바였다.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또렷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그 척박함을 받아들였던 거다.


불편함 너머에 있는 것

나 역시 그동안 더 편하고 더 안전한 것만 좇아왔던 거 같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편함 그 반대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불편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고독을 견디며, 내게 진짜 소중한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메테오라의 바위기둥들은 수천 년을 한자리에 우뚝 서 있고, 수도사들은 그 위에서 수백 년간 묵묵히 기도해 왔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 고된 바위 위에 수도원을 짓고 또 보수했다. 기도와 찬송을 이어갔고, 직접 성화를 그렸다.

하나의 수도원을 완성하는 데 20년, 때로는 30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수도사들은 자신이 짓던 수도원이 완성되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험한 절벽을 오르고 적막한 고요 속에서 고독을 견디며,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건 절대적인 가치와 자신의 믿음이었으리라.


자연과 수도원이 준 삶의 대답

경외감이 밀려왔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것뿐 아니라 신앙에 대한, 그리고 인간 의지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무심코 잊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이곳에서 다시 떠올리게 됐다.

우리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삶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는 감각 같은 것들 말이다.


메테오라의 웅장한 바위산들은 그저 눈을 사로잡는 풍경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에게 '자신만의 산'을 오르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산은 누군가에게는 신앙일 수도, 예술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자신의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때로는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오르려는 마음,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늘 수도원에서 땅의 일상으로 가져온 힘

하늘 가까운 이곳, 공중에 매달린 수도원들은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답해 줬다. 영원불변의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현재까지의 해답은 되어주었다.

그 깨달음은 산을 내려온 뒤에도 내 일상에 잔잔한 힘으로 남아 있다. 때로는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으로, 때로는 고독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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