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피, 그리스의 작은 로마

로마 제국 특구 도시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배우다

by Shin란트로

금빛 야망, 왕의 이름을 가진 도시

카발라(Kavala)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 빌립보에 도착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 들판이, 한때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가 탐냈던 땅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Philippi)'라 불렀다. 인근 파가이오 산에서 금이 채굴되기 시작하자 왕립 조폐소가 세워졌고, 이 도시는 점차 번영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더 큰 변화는 로마 시대에 찾아왔다. 기원전 42년, 빌립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승리한 후, 빌립보는 로마의 군사 식민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은퇴한 로마 군인들이 정착하면서 도시에는 로마적 색채가 강해졌다. 에그나티아 가도가 도시 중앙을 관통했고, 동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이 도로를 따라 군대와 상인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을 오갔다.

필리피를 통과하는 에그나티아 가도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가졌는데, 로마 시민권과 함께 법적·경제적 특권을 누렸다. 도시에는 원형극장, 아고라 광장, 바실리카 대성당, 공공 목욕탕, 팔라에스트라 체육관 등 로마식 도시 시설이 완비되었다. 5, 6세기에 비잔틴 양식의 대형 교회들이 세워졌고, 7세기 이후 지진과 슬라브족의 침입으로 쇠퇴하기 전까지 크게 번성했던 도시였다.

또 사도 바울이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한 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네아폴리스, 현재의 카발라 항구를 통해 빌립보에 도착했다.


제국이 남긴 화려한 흔적

빌립보 고고학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Philippi)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이 문화유산과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날이라고 했다. "이런 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갔어야 하나?" "안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무료라면 발 디딜 틈도 없겠지" 우리는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가장 먼저 원형극장(Ancient Theatre of Philippi)이 오른편에 나타났다. 기원전 4세기에 필립 2세가 세운 이 극장은, 빌립보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문화적 혜택과 로마 시민이라는 신분을 꽤나 자랑스럽게 여겼을 테다. 특권이란, 가진 이들에게는 우쭐함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부러움을 주는 것이 아니던가.

원형극장

극장 옆 작은 아치문을 지나자 아고라(Roman Forum of Philippi)라고 불리는 넓은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은 시민들이 모여 장사도 하고, 정보도 나누던 만남의 장소였다. 지금의 시장이나 광장처럼, 사람들은 만남을 통해 삶을 이어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삶의 방식인데, 팬데믹 기간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습해야 했다. 만약 팬데믹 같은 시간이 오래된다면 그 시간은 어떤 유적으로 남겨질까? 넓디넓은 아고라를 보며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고라

그 너머로 보이는 바실리카 교회터(Basilica B of Philippi)는 5세기 비잔틴 시대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폭 45미터에 길이는 130미터에 달하는 대형 건물이었다. 기둥과 벽의 일부만 남았음에도, 그 당시 이 도시의 규모와 위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실리카 교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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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중턱에 자리한 빌립보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Of Philippi)에서 본 유물들도 인상적이었다. 빌립보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로마 시대의 동전과 도자기, 조각상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유물들이 이 도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빌립보 고고학 박물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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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밤, 찬양이 옥문을 열기까지

유적지를 계속 걷다가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터(Prison of Paul the Apostle)를 발견했다. 두꺼운 돌벽과 황량한 돌바닥을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감옥의 차가운 돌벽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라면 감옥에 갇혀서 노래 부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바울과 실라의 용기와 신앙의 힘이 부러웠다.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소망의 기운. 이 돌들 사이에서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작은 개울에서 시작된 유럽 복음의 강물

유적지에서 차로 5분 거리, 작은 개울가에 있는 루디아 기념교회(Saint Lydia Philippisia Sacred Baptistery)를 찾았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회당을 찾지 못하자 강가에서 기도하던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중에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루디아 기념교회 천장
루디아 기념교회 중앙 모습

1974년 그리스 정교회가 세운 돔 양식의 루디아 기념교회 내부에는 루디아와 바울, 실라, 디모데의 성화가 천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교회였다. 내가 방문했을 때가 주일이라 한쪽에서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교회 옆에는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던 개울가가 있어서, 지금도 순례자들이 세례식을 하곤 한다.

루디아 기념교회 옆 세례터

그날도 독일에서 온 순례단이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기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같은 한 순례자도 만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사진 찍기에 바쁘고 정작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그가 말한 사람들 중에는 단순한 관광객도 있을 테다. 하지만 대단한 규모의 교회도 아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교회 옆 개울가인지라 신앙적 관심이 아니라면 굳이 여기를 방문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생각해 보니, 과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내 마음도 씁쓸해졌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같은 한 순례자

간지테스 강가에 앉아 손을 담가보았다. 흘러오던 물줄기가 가볍게 내 손을 핥고는 무심한 듯 제 갈 길을 따라 흘러갔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마음도 몸도 쉬었다. 이 작은 개울이 신앙의 강이 되어 유럽 전역으로 흘러갔다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여인들이 빨래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편의 간지테스 강가
간지테스 강 다른 쪽에는 세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

환상이 현실이 된 항구

성경에서 네압볼리는 네아폴리스 항구인데, 빌립보로 가는 길목이다. 지금은 '카발라'라 불리는 이곳에 바울 도착 기념교회가 있다. 성 니콜라오스 교회(Saint Nickolas Church)라고도 불린다. 바울이 아시아의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유럽에 첫발을 디딘 기념으로 세워졌다. 교회 입구의 모자이크에는 바울이 환상을 보는 장면과 네아폴리스 항구에 도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항구에서 빌립보까지는 8마일 남짓한 거리로, 바울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길 자체가 신앙의 여정이었다. 바울은 환상 속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 낯선 땅으로 건너왔다. 자신의 계획과 달랐을지라도 말이다.


겸손한 시작, 세상을 바꾸고

로마 시민권과 명예, 세상의 자랑으로 가득했던 이 도시에서 바울은 무엇을 전했을까. 빌립보서에 나타난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 그리고 사랑이었다.

신앙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작은 순종과 겸손, 그리고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루디아 세례터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유럽 복음의 첫걸음이 얼마나 겸손하고 조용하게 시작됐는지 알게 됐다. 바울이 환상을 보고 건너온 이 땅에서, 한 여성 상인의 마음이 열리고, 감옥에서 간수 가족이 구원을 받고, 작은 교회가 세워지는 일들이 조용히 일어났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편지에서 처럼 겸손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의 연합을 강조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자랑하던 도시에서 복음은 전혀 다른 가치를 제시했다. 서로 섬기고, 함께 기뻐하고, 고난도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위대한 일이라고 꼭 거창하게 시작되는 건 아니었다. 내 삶의 평범한 자리에서, 누군가를 향한 작은 사랑의 손길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어둠 속 감옥에서 울려 퍼지던 찬양 소리, 땅이 흔들리며 열리던 옥문의 굉음, 잔잔한 강물에 몸을 맡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루디아의 모습까지— 한 사람의 작은 선택에서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실용 여행 정보

카발라에서 빌립보 유적지까지는 16킬로미터로 약 25분 거리다. 테살로니키에서는 차량으로 160킬로미터, 약 2시간이 걸린다. 카발라와 테살로니키 모두 공항과 버스터미널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대중교통으로는 카발라나 테살로니키에서 KTEL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택시나 렌터카 이용이 더 편리하다.

유적지와 함께 박물관도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소요시간은 유적지와 박물관을 합쳐 2-3시간 정도이고, 루디아 세례터와 기념교회는 별도로 방문해야 한다. 유적지는 8시 30분부터 15시 30분까지 개방하며 여름철에는 8시부터 22시까지 연장된다. 국경일에는 휴무다.

숙소는 카발라 시내의 이마렛 호텔이나 루시 호텔 등을 이용하거나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도 가능하다. 빌립보 인근 숙소는 한정적이므로 카발라에서 숙박 후 이동하는 것이 좋다.


빌립보 고고학 유적지의 극장과 아고라, 바실리카, 감옥, 에그나티아 가도를 둘러보고, 바울과 실라 감옥과 루디아 세례터 및 기념교회, 박물관을 꼭 방문해 보자. 네압볼리의 바울 도착 기념교회와 항구 산책로, 카발라 구시가지도 놓칠 수 없는 명소다.
유적지는 넓고 그늘이 적어 오전이나 오후 방문을 추천하며, 루디아 세례터는 조용히 기도나 묵상하기 좋은 장소다. 카발라 항구에 가면 신선한 해산물 요리는 꼭 한 번 맛보기를.

카발라 비치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In His Time, In His Way


회당 대신 강가에서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이 회당을 찾으려고 도시를 헤맸을 때, 그는 분명 당황했을 거다. 로마의 군사 식민지로 재편된 이 도시에는 예상보다 유대인 공동체가 작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회당다운 회당이 없어 바울 일행은 성문 밖 강가로 향했다.


루디아 세례터 옆 작은 개울가에 앉아 나는 그날을 상상해 봤다. 물소리가 잔잔한 이곳에서 몇몇 여인들이 기도하고 있었겠지. 바울은 실망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한 여인의 눈빛이 달랐다.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였다. 그녀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지만, 바울의 말을 들으며 무언가 새로운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 순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셨다."(행 16:14).


루디아 기념교회 앞에서 생각했다. 바울이 계획했던 건 회당에서의 정식 설교였으리라.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건 강가에서의 조용한 만남이었다. 우연해 보이는 그 만남이 유럽 최초의 교회를 탄생시켰다. 루디아는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자신의 집을 바울 일행에게 내주었다. 아주 작은 시작이었지만, 그 작은 씨앗이 유럽 전역에 복음의 나무로 자라났다.


나의 계획이 무너질 때 하늘의 일이 시작된다

며칠 후 바울과 실라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는데, 그 일로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다. 그 여종의 주인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든 상관없었다. 귀신의 도움으로 점을 쳐서 자신에게는 많은 돈벌이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돈줄이었던 여종이 고침을 받자, 주인의 분노가 폭발한 거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빌립보 유적지에 남아 있는 감옥터 앞에 서서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분명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곳에 왔는데, 루디아 한 사람과 그 가족만 구원받고 감옥에 갇혀 버렸으니, 이게 웬일인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만도 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의 반응은 놀라웠다. 그들은 한밤중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옥문이 열리고 손발을 묶고 있던 결박이 풀렸다.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살하려 했다. 로마법상 죄수를 놓친 간수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춰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


그 순간이 간수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바울의 외침은 단순히 자살을 막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언 같았다. 간수는 등불을 가지고 뛰어 들어와 바울과 실라 앞에 떨며 엎드렸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 빌립보에서 배우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만약 그들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간수를 만날 수 있었을까?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울은 빌립보에서 온몸으로 경험하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시간표에서는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남긴 이 고백은 빌립보 감옥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는 감옥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바라보는 연습 중이었다.


하나님은 겸손을 통해 일하신다

루디아 세례터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빌립보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권한다.(빌 2:5)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오히려 종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다. 신의 아들이면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겸손하게 인간을 사랑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보여준 것도 바로 이런 겸손이었다. 회당 대신 강가를 택하고, 귀부인 대신 여종을 고쳐주고, 자유인 대신 감옥에서 간수를 품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하향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상향의 계단이었다.


루디아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바울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간수는 로마 제국의 권력을 대신하는 사람이었지만 죄수 앞에서 떨며 엎드렸다.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 다 복음 앞에서 은혜가 필요한 존재였다.


기쁨의 근원을 찾다

우리 부부가 빌립보에 머무르는 동안, 섬기는 교회에서는 마침 빌립보서를 주제로 설교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왜 빌립보서가 ‘기쁨의 서신’이라고 불리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바울의 기쁨은 상황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감옥에 갇혀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바울이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디아의 회심, 여종의 치유, 간수 가족의 구원—하나하나 연결되어 빌립보 교회를 이루었다. 사회적 배경도 다르고 만나게 된 경위도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게 기적 아닐까.


내 시간표 너머, 카이로스의 시간을 신뢰하기까지

내 삶에도 '회당을 찾다가 강가를 만난' 순간들이 있었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 억울하게 여겨지는 상황, 왜 이런 일이 내 삶에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빌립보에서 배운 건 하나님의 시간표가 내 시간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내 삶에 일어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내 곁에서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다른 일에 바빠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예전에 이 구절을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아니면 조금 더 성숙해지면서,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알게 됐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상황은 모두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 허락하셨다는 의미라는 걸 이젠 깨닫는다.


루디아 세례터를 떠나며 다짐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바울과 실라처럼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겠다고.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살아가겠다고.

하나님의 시간은 완벽하고, 아무리 작은 시작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큰 열매를 맺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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