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아름다움
테살로니키 공항에서 그리스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터키 이스탄불(Istanbul)로 향했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이 만나는 경계에 자리한 도시, 이스탄불.
지리적 운명 때문이었을까. 이 도시는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역사 위에 또 다른 역사를 써내려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잔티움'이라 불렀던 작은 어촌 마을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세우면서 중세의 중심지가 되었고, 훗날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오늘의 '이스탄불'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그 이름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마주 보는 도시. 이 특별한 장소에선 '경계'라는 말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세상을 재단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스탄불에서는 그런 경계가 모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몇 걸음만 내디디면 두 대륙을 동시에 밟게 되는 이곳에서, 동서양을 나누는 경계는 그저 지도 위에 그어진 가느다란 점선에 불과해 보였다.
이스탄불은 시대마다 수많은 명소가 있어서, 어디를 돌아볼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아야 소피아 성당(Hagia Sophia)이었다.
6세기,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세운 이 웅장한 돔형 대성당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러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이 도시를 점령한 후에는 모스크로 바뀌었다. 그래서 관광객과 무슬림 신도들이 들어가는 줄이 따로 있었다. 예배 시간이 되자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고, 관광객들은 기다려야 했다.
장엄한 돔 아래 서니, 수천 년의 세월과 제국들의 흔적이 옅은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두 신앙이 한 공간에서 숨 쉬는 곳. 어쩌면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평화가 가장 절실한 곳이 아닐까 싶었다.
내부를 돌아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데이시스 모자이크(Deesis Mosaic)였다. 13세기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께 '기원'하는 모습을 다양한 색감의 모자이크 조각들로 표현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면서 이 모자이크도 석고로 발라버렸다. 수 백 년간 어둠 속에 덮여 있다가 20세기에 아야 소피아가 박물관이 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시간이 덮어버린 것들도 언젠가 다시 드러날 때가 있구나.'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포기하거나 잊혀진 꿈들도, 언젠가 자신의 때에 다시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야소피아 맞은편에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가 있었다. 17세기 술탄 아흐메트(Sultan Ahmet) 1세는 아야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큰 모스크를 바로 앞에 짓도록 명령한다. 내부를 이만 장이 넘는 푸른빛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해서 오스만 예술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섯 개의 첨탑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인간의 염원이 얼마나 간절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외형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경쟁하여 이긴 의기양양한 모습 같아서 내게는 상처 입은 아야 소피아에게 마음이 더 갔다.
넓디넓은 광장에는 궁전인지 모스크인지 화려한 지붕의 건물들이 많았다. 그중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건물이 보였다. 건물 외관은 그리 특이해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많길래 뭔가 싶어 우리도 줄을 섰다. 바실리카 시스턴(Basilica Cistern)이라 불리는 지하궁전이었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도시 식수 공급을 위해 지하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무려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숲처럼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각기 다른 신전에서 옮겨온 기둥들은 저마다 독특한 문양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건, 그리스 신화에서 눈을 마주치면 돌로 변한다는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기둥이었다.
이곳은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영화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1963)』에서 숀 코너리가 이 저수지 안을 보트로 지나가는 장면은 이곳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신비롭게 비추는 조명과 물에 비친 기둥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누구나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올 때는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아래 이렇게 아름답고 깊은 공간이 숨어 있었다니, 이 세상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신비와 아름다움은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삶 또한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을 걷다 보면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술탄들이 살았던 이곳은, 작은 도시 같았다. 하렘의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따라가면서, 눈부신 권력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상상해보곤 했다.
수많은 보석과 황금 장식품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지만, 막상 가슴을 울린 건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보스포루스 해협의 풍경이었다. 술탄들도 매일 저 창 너머로 이런 풍경을 바라봤겠지. 해협의 물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왕에게나 나에게나 똑같이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다.
갈라타 타워(Galata Tower)의 좁은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시간과 역사의 다른 페이지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14세기에 제노바인들이 방어를 위해 세웠던 이 탑은, 수백 년 동안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을 지켜온 등대 같은 존재다.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유럽과 아시아, 보스포루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 도시를 왜 ‘세계의 중심’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발아래로 펼쳐진 붉은 기와지붕, 날카로운 첨탑들,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게 한 점의 그림처럼 고요했다.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걱정도 이렇게 넓은 시야로 보면,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 흩어진 불빛처럼 작은 점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는 재미도 쏠쏠하다. 1461년 오스만 시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상점이 4천 개가 넘는다.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의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든 이곳. 출입구만 해도 18개, 골목길만 67개라니,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 같은 길치는 정신 바짝 차리고 걸어야 했다.
바자르에서 쇼핑할 때는 반드시 몇 군데 돌아보고 흥정하기를 추천한다. 첫 가격에서 절반 가까이 깎는 게 흔한 일이고, 상인과 벌이는 밀고 당기기가 이곳의 묘미라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장 주변의 카페에 앉아 달콤한 로쿰(Lokum)과 진한 차이(Chai)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것도 좋다.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상인들, 그리고 물건을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걷다 보니, 문득 인생이란 바다도 이렇게 저마다의 배를 타고 건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세상 물정 모를 때는 정말 좋은 게 뭔지 알아보기 어렵지만, 하나둘 경험이 쌓이고 살아가다 보면 비로소 내게 어울리는 것, 내게 유익한 것이 뭔지 가려낼 수 있게 된다. 상인의 능수능란한 입담과 미소에 숨겨진 진심을 읽어내며 바자르의 흥정 속에서 삶의 지혜 하나를 깨닫는다.
터키에서는 매일 아잔(Azan) 소리를 듣게 된다. 하루 다섯 번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인데, 모스크의 첨탑에서 흘러나온다. 그런데 며칠 머물다 보니 재미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잔 소리가 울려 퍼져도 정작 그 소리에 맞춰 기도하러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순간에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친구랑 마주 앉아 웃고 떠들 뿐이었다.
‘어라? 어차피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할 거면 굳이 거리마다 소란스레 스피커로 틀어댈 필요가 있나?’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무심한 자연스러움이 진짜 일상일지 모른다. 이방인인 나도 처음에는 또렷하게 들려오던 그 스피커 소리가 며칠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어느새 바람 소리마냥 귓가를 스쳐 흘러가 버렸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한다고 어디 공부가 되던가. 주입식으로 시키거나 억지로 강요하면 오히려 내적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하니까, 방송이 나오니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기도가 하고 싶어서, 간절히 신과 만나고 싶어서 하게 되는 기도가 진짜 아닐까. 이스탄불 사람들이 보여준 건 그런 자유로운 신앙으로의 몸짓 같았다.
이스탄불은 세상에 둘도 없는 고양이의 천국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고양이뿐만 아니라 개들도 종종 눈에 띈다. 고양이와 개들은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간다. 귀에 작은 칩이 달려 있어 정부 차원에서 뭔가 관리한다는데, 무슨 관리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주민들이 알아서 이들을 돌보는 듯했다. 골목마다 보이는 고양이 집과 물그릇, 밥그릇에서 이 도시의 따뜻함을 느꼈다.
어느 좁은 골목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지켜본 듯한 철학자 같은 눈으로 나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그 고양이가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고 평온해 보인 건 왜일까. 빌립보의 바울 감옥 문 앞에서 느릿하게 머물던 그 고양이도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이스탄불에서 맛본 음식들은 정말이지 혀끝에서 펼쳐지는 작은 축제 같았다.
갈라타 다리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고등어 케밥(Balik Ekmek)을 발견했다. 밥을 먹은 후 산책 삼아 주변을 돌아보던 중이었는데,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궁금한 마음에 사봤다. 사실 고등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고등어는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듯 비린맛 하나 없이 신선했고 불향과 터키 향신료를 덧입어 환상적인 맛이었다. 곁들여 준 야채와 바게트 빵의 조화가 입안에서 한 편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한 게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남았다.
저녁이면 케밥(Kebab) 집을 찾았다.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숯불에 구워 빵과 함께 먹는 건데, 은은한 향이 고기 본연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터키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조리법이 입맛을 끌어당겼다.
내게는 디저트 타임이 더 행복했다. 바클라바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얇은 페이스트리가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그 사이에서 호두와 피스타치오의 고소함, 꿀의 달콤함이 차례로 혀끝에 느껴진다. 터키쉬 딜라이트 로쿰은 쫄깃한 식감과 장미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마치 오스만 궁정에서 티타임을 하는 듯했다.
매 끼니마다 곁들인 터키 차의 진한 향기는 이 모든 맛을 깔끔하게 완성시켜 줬다. 작은 유리컵에 담긴 붉은빛 차를 한 모금 마시면, 입안 가득 퍼지는 따뜻함과 함께 이 도시의 정취가 느껴진다. 그리스에서도 그랬는데 터키에서도 한식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골든 혼과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걸었다. 비춰주는 빛에 따라 은은하게 물드는 해협은 더없이 신비로웠다. 물은 어떤 경계도 가르지 않는다. 보기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것 같지만, 사실상 두 대륙을 이어주는 게 바로 이 푸른 물길이다.
한 발은 유럽에, 한 발은 아시아에 디딜 수 있는 곳이 이스탄불이다. 내 몸이 두 개의 세계로 나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세계가 내 안에서 겹쳐지는 경험이었다. 갈라타 다리의 낡은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부들의 낚싯줄과 배들의 항로가 얽혀 있듯이, 여기서는 모든 것이 섞임 속에 있었다.
처음엔 이스탄불의 복잡함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터키 속의 유럽 쿠즈군즉이 탄생했다. 경계라서 나뉘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부딪혀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기는 그냥 이스탄불이었다.
우리 삶에도 경계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때가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내 안에 있던 여러 경계들도 조금씩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스탄불은 나에게 다름을 두려워하는 대신 맛보고 경험하는 법을 연습하게 했다.
이스탄불카르트는 모든 대중교통에서 사용 가능한 충전식 교통카드로 공항, 역, 신문 가판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 공항에서는 버스보다 메트로를 이용하면 교통 체증 없이 50분-1시간 정도 걸려 이스탄불 시내에 도착한다. 구시가지 관광에는 T1 트램 노선이 술탄아흐메트와 그랜드 바자르 등 주요 관광지를 연결해서 가장 효율적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 체증이 심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갈 때는 페리를 이용하고, 보스포러스 크루즈도 추천한다. 크루즈는 에미뇌뉘(Eminönü)나 카라쾨이(Karaköy) 선착장에서 타는데, 돌마바흐체 궁전, 루멜리 요새, 해안가에 늘어선 오스만식 저택 얄리까지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구시가지인 술탄아흐메트 지역에 머물면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언덕길이 많고 차량 접근이 제한되는 구역이 있다. 신시가지인 탁심이나 갈라타 지역은 쇼핑과 식사,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기에 좋고 공항 접근성도 뛰어나다. 아시아 지역의 쿠즈군즉은 조용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아야소피아에서는 비잔틴과 오스만 예술의 공존을 감상하고, 블루 모스크에서는 오스만 건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바실리카 시스턴의 신비로운 지하 궁전과 톱카프 궁전의 오스만 왕실 유적, 그랜드 바자르의 500년 전통 시장은 꼭 방문해 보자. 바자르에서 쇼핑할 때는 반드시 여러 상점을 비교해 보고 흥정해야 한다. 저녁나절 갈라타 타워에 오르면 이스탄불 야경이 환상적이다.
도시가 넓고 경사가 많아 편한 신발은 필수이며, 관광지에서는 소지품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지배하면서 시작된 이야기가 있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예멘 땅에서 자라는 작고 검은콩에서 작물 이상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 콩 속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보았던 걸까.
커피는 아프리카에서 자랐지만, 그 문화가 꽃핀 곳은 이슬람 세계였다. 카흐베하네(Kahvehane), 커피하우스가 곳곳에 생겨났는데, 이곳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서로 소통하고 토론을 벌이던, 대화의 장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커피 문화는 동서 무역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번져갔다.
2013년, 터키쉬 커피가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우연이나 행운만은 아니다. 작은 커피잔 하나에 담긴 건 그저 마실거리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터키 사람들이 쌓아온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터키쉬 커피를 처음 맛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첫 모금을 머금었을 때의 그 짙고 충격적인 쓴맛은 혀끝에 닿자마자 당황스러웠다. 마치 인생의 고단함을 한 방울로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쓴맛이 혀에 익숙해질 무렵, 설탕의 단맛이 서서히 올라온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커피는 인생과 많이 닮아 있었다.
터키쉬 커피는 커피가루를 아주 곱게 갈아 물과 함께 끓여내기 때문에, 마시고 나면 꼭 남는 것이 있다. 바로 커피 찌꺼기다. 터키 사람들은 이 찌꺼기로 무늬를 읽어 점을 치기도 한다. 타세오그래피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어쩌면 인생의 찌꺼기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바클라바(baklava)나 로쿰(Lokum)처럼 달콤한 터키 디저트와 함께 터키쉬 커피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달콤함과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
달콤한 순간만 있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쓴 순간만 있다면 또 얼마나 버거울까. 하지만 이 둘이 번갈아 찾아오고, 때로는 한꺼번에 밀려와 춤출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인생의 맛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여행도 그렇다. 달콤한 순간만으로 이루어진 여행이 있을까? 그런 인생이 있을까?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갑작스런 비에 흠뻑 젖기도 하고, 때로는 외로움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쓴맛들이 있기에 달콤한 순간들이 더 소중해지는 것 아닐까.
터키 사람들이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러워진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작은 잔에 든 커피를 조금씩, 천천히, 마치 시간을 음미하듯 마신다.
터키쉬 커피는 혼자 마시는 차가 아니다. 터키 사람들에게 커피는 당연히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음료다. 혼자 마시는 커피보다 둘이 마시는 커피가, 둘이 마시는 것보다 여럿이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다는 걸 안다.
쓴맛도 단맛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건네는 시간. 누군가는 오늘의 고민을, 누군가는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커피 한 잔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시간은 꿀처럼 달콤하게 흘러간다.
터키쉬 커피는 그 쓴맛처럼 인생에 대해 쓴소리(?)를 해줬다. 쓴맛을 피해 도망치지도 말고, 단맛만을 좇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인생의 모든 맛을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순간을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나누라는 것이다.
돌아와서도 가끔 터키쉬 커피가 생각난다. 그 묵직하고 진한 맛이 그리운 게 아니다.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보냈던 시간과 따뜻했던 만남이 그립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인생도 터키쉬 커피처럼 살아야겠다고. 천천히, 깊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미하면서 말이다.
"커피는 서두르면 안 돼요."
"인생처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