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찾은 삶의 깊이
데린쿠유(Derinkuyu)는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막상 그곳에 들어가 보니 우물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였다. 땅속에 숨겨진, 아니 땅속으로 파고들어 만든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데 왜 우물이라고 했을까?
데린쿠유는 깊이 85미터에 지하 8층까지 있고, 2만 명이 살 수 있을 만큼 넓다고 한다. 관람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은 지하 5층까지다. 1층과 2층에는 마구간과 포도주 압착기가, 3층과 4층에는 주거 공간과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층들은 창고와 터널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입구에서 내려가는 첫 계단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처럼 지하철만 타도 숨이 막히는 사람에게는 참 가혹한 곳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천장도 낮아졌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가니 허리가 아파왔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평생 살았을까'
‘햇볕을 쐬지 못하면 , 비타민 D가 부족해 구루병에 걸린다는데…’
‘어둠 속에서 살다 보면 허리도 다리도 휘어지고, 아파도 병원에도 못 갈 텐데…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하도시는 기원전 8세기부터 히타이트 민족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초기 기독교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번성하게 됐다. 그 후로 20세기 초까지도 카파도키아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박해를 피해서 이곳에서 살았다.
생각해 보면 참 기막힌 일이다.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싶은 게 신앙인의 마음일 텐데, 이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 신을 불렀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에서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다.
놀라운 건 이들이 단순히 숨어서 견디기만 한 게 아니었다. 동굴 안에는 교회와 신학교는 물론 식당과 창고, 심지어 와인 저장고까지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55미터 깊이의 우물과 50개가 넘는 환기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생존이 목적이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지 않았을까. 이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지켜내고자 했던 것 같다. 이 깊은 우물은 지하도시의 숨구멍이자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침입자가 나타나면 입구를 완전히 막을 수 있도록, 맷돌처럼 생긴 큰 돌문을 설치했다. 이 돌은 안쪽에서만 열 수 있어서, 한 번 닫히면 완벽한 요새가 되었다.
지하 3층 주거 공간을 둘러보며 상상해 봤다. 여기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태양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들도 있었을 거다. 그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떻게 하늘의 파란색을, 구름의 하얀색을 설명해 줬을까.
부엌에는 아직도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천 년도 더 된 그을음이다. 그때도 여기서 엄마들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아빠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돌아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겠지. 지하 도시라고 해서 일상이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
벽화의 흔적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 표현하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봐주는 사람도 몇 안 될 텐데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신에게 바치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였을까.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더 소중했으리라.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오늘 나눌 수 있는 음식, 오늘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얼마나 귀한 건지 그들은 알았다. 오늘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들은 예배와 배움을 통해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사람은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는데, 이들은 왜 아래로 내려갔을까. 더 높은 곳에 가고 싶고,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아닌가. 내려가는 동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게 살 길인 경우도 있다. 위는 위험하고 아래는 안전할 때. 위는 절망이고 아래는 희망일 때. 이들에게 지하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지상에서는 박해받는 소수였지만, 여기서는 당당한 주민이었다. 지상에서는 숨어 다녀야 했지만, 여기서는 마음껏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내려갔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간 셈이었다.
데린쿠유의 마지막 이야기는 쓸쓸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탄생한 후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인구교환 정책이 있었다. 이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로 떠나면서 지하도시는 완전히 버려졌다고 한다.
천 년도 넘게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빈 공간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곳을 떠났을까. 어둠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신앙의 터전을 뒤로하고 떠나는 마음이 어땠을까.
출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지상으로, 빛 있는 곳으로 나왔다. 그들은 그때 행복했을까, 허전했을까.
데린쿠유는 터키 카파도키아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다. 렌터카 자유 여행이 아니라면 그린 투어(Green Tour) 같은 일일 투어를 신청해서 방문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투어에는 데린쿠유 지하 도시 외에 으흘라라 계곡 등 다른 명소들도 포함된다. 숙박은 카파도키아의 중심인 괴레메 또는 네브셰히르 지역을 추천한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는 지하 5층까지 개방되어 있으며, 거대한 미로 형태로 되어 있다. 입구에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천식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안내 표지가 있다. 출구로 나왔을 때, 화장실 옆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단체 관광으로 왔는데 무릎이 좋지 않아 일행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셨다. 어두운 지하 도시의 특성상 폐소공포증 등 신체적 특이사항이 있다면, 방문 전에 미리 투어 가이드에게 문의하는 게 좋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데린쿠유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거나, 아니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를 택했다. 지상에서 살 수 없으면 땅 아래로 파고들어 갔고, 옆으로 팔 수 없으면 더 깊이 파 내려갔다. 그렇게, 그들은 깊은 땅속에 새로운 삶을, 새로운 공동체를, 새로운 희망을 스스로 일궈냈다.
요즘 내 삶도 답답한 구석이 많다. 위로 올라가려 해도 길이 막힌 것 같고, 옆으로도 빠져나갈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데린쿠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처럼 나도 내 안에 또 다른 길을 파보자고 마음먹는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자고 말이다.
깊이 파면 샘물이 솟는다고 했던가. 데린쿠유, 이름 자체가 '깊은 우물' 아닌가. 그들은 절망의 땅을 파서 희망의 우물을 만들었고, 짙은 어둠 속에서 신앙의 샘을 찾아냈다.
나도 내 안의 데린쿠유를 파야 할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곳에,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 나만의 신성한 터전을 만들어야겠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져도, 내면의 불빛만은 꺼뜨리지 않고 지켜 내기 위해서 말이다.
데린쿠유는 내게 그런 용기를 준 곳이다.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야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걸, 깊이 파 들어가야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