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게, 로마식 도시의 향기

보이지 않는 영원을 꿈꾸며

by Shin란트로

떠남이 주는 이중의 감정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 올라오니 빛이 눈부시게 찬란했다. 마치 그 옛날 사람들이 느꼈을 것 같은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 느낌도 잠시, 페르게(perge)를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바위들과 작별하며, 여행이란 끊임없는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 나를 품어주던 곳을 떠나 또 다른 낯선 땅으로 향하는 이 순간, 벌써부터 그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나톨리아 고원을 바라보며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싶었다. 히타이트 민족부터 튀르크 민족까지, 수많은 민족들이 이 길을 따라 꿈과 희망을 품고 걸어갔으리라. 나 역시 그들처럼 무언가를 찾아 이 길을 가고 있다. 어느새,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은 뒤로 하고, 새로운 곳에 대한 셀렘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올랐다.


콘야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행복

긴 운전으로 몸도 지치고 배도 고파 들른 콘야. 그곳에서 숨은 맛집을 찾았다. 구글 맵 리뷰만 보고 찾아간 콘야 케밥 집(Konya Kebap Evi). 외관도 특이하지 않았고, 위치도 학교와 사무실 건물 사이 평범한 곳에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테이블 위로 메제(Meze)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에서 돈 주고 사 먹었던 바로 그 메제들이 기본 밑반찬처럼 나왔다. 풍성한 인심 때문인지 식당 안은 현지 손님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만족스런 표정에서 이곳이 진짜 맛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콘야에 오면 먹어봐야 한다는 콘야식 피자, 메블라나 피데(Mevlana Pide)를 주문했다. 미국 피자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 카샤르 치즈와 다진 고기, 향신료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함과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졌고, 뜨거운 치즈가 입안에서 녹으며 터키 특유의 향신료가 코끝을 자극했다.
양고기 케밥 역시 여행객의 주린 배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부드럽게 구워진 고기는 잡내 하나 없이 고소하고 풍미가 깊었다. 터키에서 양고기 요리와 케밥은 언제나 옳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만나는 예상치 못한 행복. 미리 계획하고 예상했던 게 아닌데, 우연히 선물처럼 내 앞에 펼쳐진 상황과 사람과 이벤트가 더 큰 기쁨으로 기억된다. 긴 운전 길이 기분 좋은 충전의 시간으로 바뀌고, 렌터카 자유 여행의 참 묘미를 혀끝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베이셰히르 호수, 시간이 머무는 곳

한참을 운전하다 몸이 찌뿌둥할 즈음, 베이셰히르 호수(Beysehir Lake)가 눈앞에 나타났다. 잠깐 차를 세우고 호숫가를 거닐며 다리를 풀기로 했다.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잘 구분되어 있었다. 호수는 고요했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에 하늘이 그대로 비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었다. 시계 초침 소리를 따라가는 시간이 아니라 물결의 출렁임에 맞춰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갈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 물 위를 나는 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잠시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었다. 여행의 목적지가 꼭 유명한 관광지일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이렇게 계획 없이 들른 호수에서 더 깊은 위안을 얻어 간다.


페르게, 시간 위를 걷는 순례자들

드디어 페르게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이 첫 번째 선교여행으로 바나바와 함께 이곳에 발을 디뎠던 때가 서기 45년이나 49년쯤이라고 한다.

페르게는 당시 1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무얼 보았을까, 어떤 걸 느꼈을까. 고대 석조 길과 유적 사이를 거닐며 그 시절을 상상해 본다.

페르게 고대 도시

이곳의 웅장한 원형극장에서 시민들이 연극을 감상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던 시절, 거대한 경기장에는 관중의 환호성이 파도처럼 울려 퍼졌을 거다. 그 모든 시끌벅적한 일상 속에서 바울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가닿았을까. 당시로서는 너무나 혁명적이었을 '복음'이라는 메시지에 진정으로 귀 기울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페르게 극장(Perge Theater)은 만 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건축물로, 로마 제국의 위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로마시대 극장은 무대 위의 작은 속삭임도 객석 맨 윗줄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원형 구조와 계단식 좌석이 소리를 효과적으로 위쪽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낸다. 건축 재료로 석회암을 사용해 주변의 소음 같은 저주파는 흡수하고 사람의 목소리처럼 고주파는 증폭시켰다. 실제로 음향공학자들이 무대에서 동전 하나를 떨어뜨리고 그 소리가 꼭대기 객석까지 들리는지 증명하기도 했다.

극장은 복원 중이라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글 이미지(출처)로 보는 극장 내부

극장 건너편에 자리한 경기장(Antikes Stadion Perge)은 한 술 더 뜨는 규모였다. 관중석은 만 이천 명 규모였지만, 그 길이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터키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 경기장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2세기 후반에 만들어져 육상 경기뿐 아니라 대규모 집회 장소로도 쓰였다.

관람석을 떠받치는 아치형 구조 아래에는 상점들이 자리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스포츠와 쇼핑을 좋아하나 보다.

상점 자리

흙먼지 날리는 경기장 트랙을 따라 걸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 제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남아 있는 몇몇 유물만이 그 흔적을 보여준다. 우리 역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래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기둥 거리에서 만난 시간의 흔적

페르게 기둥 거리(Colonnaded Street)는 도시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로이다. 300미터 가까이 좌우로 서 있는 대리석 기둥들이 마치 제복 입은 군인의 도열식 같았다. 세월에 깎여 무너진 잔해들 사이를 거닐면서, 이 길이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펼쳐졌을 무대로 다가왔다. 상인들은 물건을 흥정하고, 한쪽에서는 철학자들이 토론에 여념이 없었겠지.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나란히 거닐던 길. 그리고 어느 날엔가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을 그 길이 바로 여기였으리라.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며 그들의 발자국과 나의 발자국이 겹쳐지는 듯했다. 부서진 기둥들이 온전했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팍스 로마나가 선사한 일상

페르게에는 여러 개의 공중목욕탕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쪽 목욕탕이 규모와 정밀함에서 단연 돋보였다.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다. 로마인들에게 목욕은 몸을 청결히 하는 위생의 개념을 넘어, 타인과 소통하는 문화적 의식이었다. 팍스 로마나 시대가 가져온 경제적 여유와 안정은 여가 문화를 활짝 꽃 피웠다.

"A Favourite Custom" (1909) by Sir Lawrence Alma-Tadema 로마식 목욕탕을 묘사한 작품

냉수탕에서 온수탕, 온수탕에서 다시 열탕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동선에서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지하에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우리나라의 온돌과 유사한 방식으로 물을 데웠다. 그뿐만 아니라 체육관과 안마실, 심지어 도서관까지 갖춘 웅장한 종합시설은 로마인들이 생활 속에서 목욕과 운동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었다.


페르게 님파이움(Perge Nymphaeum) 은 최근 복원을 거쳐 다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님파이움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들어진 분수대이자 급수 시설이었다. 고대 케스트로스 강에서 물을 끌어와서 케스트로스 분수로도 불린다. 끝도 보이지 않는 거리 중앙으로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순간, 가슴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대 방식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페르게에 도착했을 때부터 고대 도시의 규모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탈리아 문화국의 지원아래 에페스를 능가할 유적지로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고대의 물길을 다시 뚫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사람들. 이미 지나간 과거가 현재와 다시 연결될 때 새로운 의미로 탄생되는 현장을 보게 됐다.


페르게에서 발견한 영원

바울은 첫 번째 선교 여행길에 왜 페르게를 선택했을까. 10만 명이 사는 큰 도시라서? 에베소 못지않게 번영했던 교역의 중심지라서? 그의 마음이 이끌렸던 건 도시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이었을 거다.

페르게의 기둥들이 석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그 속에서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품었던 꿈과 소망, 바울이 전했던 사랑과 용서의 소식, 그리고 지금 이곳을 찾아온 한 중년 부부.
이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오늘 느낀 이 마음만큼은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그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자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게 영원히 사는 법 아닐까. 작은 친절, 진심 어린 대화, 따뜻한 미소가 영원을 만들어 낸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페르게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또 다른 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 내 발자국을 보며 무엇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발자국이 사랑의 방향을 향해 있기를 바란다.


하루가 다 저물었다. 노을마저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그 순간 비로소 알았다.
‘아, 영원이라는 건 영원히 남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의미 있게 채워가는 거였구나.’
그리고 그 의미가 내게는 '사랑'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내일은 또 다른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페르게에서 배운 이 마음만큼은 계속 가지고 갈 것이다. 부서진 아름다움을,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실용 여행 정보

데린쿠유에서 안탈리아까지는 약 5~6시간의 장거리 운전 여정이다. 중간에 쉬어 갈 도시로 13세기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고향인 콘야를 추천하며, 시간 여유가 있다면 루미 박물관도 들러 볼 만하다.


안탈리아에서 페르게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AntRay 트램을 이용할 경우 안탈리아 중심부에서 동쪽 종착역인 메이단까지 이동한 다음, 미니버스를 타고 악수까지 간 후 도보나 택시로 약 2km 더 이동하면 된다. 안탈리아 오토가르에서 페르게행 미니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소요되며, 도로 사정은 양호한 편이다.


페르게 고대 도시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주요 명소로는 헬레니즘 시대의 성문과 원형 탑, 1만 5천 명을 수용했던 로마 원형극장, 터키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1만 2천 명 규모의 로마 경기장이 있다. 길이 300m에 달하는 기둥 거리에서는 고대 전차 바퀴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대 상업 중심지였던 아고라와 로마 사회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남쪽 공중목욕탕, 기념비적 분수 시설인 님파이움,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까지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부서진 기둥 앞에서 나를 발굴하다


페르게를 떠나는 길, 차 안에서 수첩을 펼쳤다. 오늘 본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관광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 찼다.


무너진 것들이 말을 걸어올 때

넓디넓은 페르게 고대 도시를 걸으며 왜 온전한 건물보다 부서진 유적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지 생각하게 됐다.

내 삶에 비춰 보았다. 모든 게 완벽하고 잘 나갈 때,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바쁜 일상 때문에 내면 깊은 공허를 알아챌 틈이 없었다. 어느 순간,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오르던 그네 줄이 뚝 끊어졌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깨지고 부서졌다.

그런데, 상처투성이인 그때, 세상 앞에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 생채기가 드러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마저도 사랑과 시간이 보듬어주고 치유해 줬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이전보다 좀 더 진실하고 좀 더 넓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페르게의 기둥들은 풍화로 얼룩지고 부서졌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그 표면에서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었다. 이천 년이라는 시간을, 반복된 계절을,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손길을.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끈하고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세월의 흔적을 당당히 드러내며 그 속에서 깊이를 얻어가는 사람으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향기

로마 제국이 남긴 웅장한 건축물들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제국은 사라졌는데, 한 사람이 전한 보이지 않는 메시지는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었다. 돌로 쌓은 제국보다 말로 전한 사랑이 더 오래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렸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강한 걸 추구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바꾸는 건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한마디의 위로, 따뜻한 시선, 진심 어린 격려 같은...

거창한 업적보다 작은 온기로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 내가 남기고 싶은 의미임을 깨닫는다.


시간은 무엇을 남기는가

만 오천 명이 환호했던 극장, 만 이천 명이 모였던 경기장. 그 모든 열광과 환호는 어디로 갔을까.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공간은 남았다. 그리고 그 공간에 서면, 묘하게도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가 남긴 흔적은 어딘가에 새겨진다. 내가 사랑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내가 걸었던 길 위에, 내가 웃었던 공간 안에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 언젠가는 모든 게 유적처럼 남겠지만, 그 유적에 새겨진 이야기만큼은 아름답기를 바라면서.


나는 무엇을 발굴하고 있는가

페르게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로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다. 땅속에 묻힌 보물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우리 안에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보물들이 있다.

두려워서 꺼내지 못한 꿈, 삶이 바빠 돌아보지 못한 탈란트, 상처받을까 봐 숨겨둔 진심… 그런 것들이 내면 어딘가에 묻혀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페르게의 고고학자들이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며 유물을 드러내듯이, 나도 내 삶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들여다봐야겠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발굴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몰랐던 보석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사실 여행도 그렇다. 낯선 곳을 다니며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동시에 내 안에 숨겨진 미지의 모습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페르게의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듯, 나도 이 여행을 통해 조금씩 진짜 내 모습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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