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 중에 이스탄불 엑스포에서 열린 '홈 텍스타일 전시회'도 들렀다. 결혼 기념 여행이자 성지 순례, 거기다 비즈니스 출장까지. '일타쌍피'가 아니라 '일석삼조', '일거삼득'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엑스포 참관 후 다음 목적지는 카파도키아(Cappadocia)!
카파도키아까지는 차로 가려면 일곱 시간도 넘게 걸려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공항 가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터키 가요를 흥얼거리셨다. 구슬픈 전통 멜로디였지만, 어딘가 희망이 담긴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일상의 무게에 눌려 잊고 살았던 서로에 대한 설렘, 아이들 키우느라 한쪽으로 밀어뒀던 꿈을 다시 꺼내는 용기. 그리고 지나온 세월이 남긴 상처조차 이제는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까지. 이런 마음들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의 첫인상은 마치 달의 뒷면을 보는 듯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조각가가 정성껏 다듬어놓은 야외 미술관 같았다. 온통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 전부터 화산이 토해낸 재와 용암이 차곡차곡 쌓이고, 바람과 물은 조각칼 노릇을 해서 만들어진 풍경이었다. 부드러운 응회암은 세월 앞에 깎여나가고, 단단한 현무암은 시간을 견디며 남아있어 마치 모자를 쓴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요정 굴뚝'이나 '스머프 마을'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신기하고 귀여운 자연경관 뒤에는 묵직한 서사시가 숨어 있었다. 히타이트 시대부터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명의 흔적이 이곳에도 예외 없이 남아 있다. 특히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바위 속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신앙을 지켜낼 수 있는 성소였다.
큰 소리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묵직한 침묵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성당에 들어섰을 때처럼 말이다.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달려간 곳은 젤베 오픈 에어 뮤지엄 (Zelve Open Air Museum)이다.
‘오픈 에어 뮤지엄이라면 야외 박물관?’
호기심이 솟아났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들이 모여 있으니 박물관은 박물관이다. 그런데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낸 특별한 박물관이었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괴레메와 젤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젤베 야외 박물관을 찾았던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관광객도 뜸했다.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 열기도 한풀 꺾이고, 바위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주차장 옆 조그만 가게에서 물 두 병을 샀다. 아저씨가 물을 건네며 5시 15분 전에 표를 사기만 하면 들어가서는 8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고 하셨다. 시계를 보며 빨리 뛰라고 손짓을 했다.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표를 살 수 있었다.
동굴 마을을 걷다 보면 어느새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사람들이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교회와 주거지, 식당, 수도원이 바위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천 년이 넘도록 어둠 속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Göreme Open Air Museum)은 더 웅장하다. 지금 공개된 동굴 교회만 30여 개인데, 예전에는 사오백 개의 교회가 있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숨어 살았는지 그 규모가 짐작됐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초기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로마 군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리며, 촛불 하나에 의지해 벽에 그려 넣었을 성화. 어둠이 깊을수록 빛에 대한 간절함도 깊어지나 보다.
저녁에는 카파도키아에서 유명한 항아리 케밥(Testi Kebabı)을 주문해 봤다.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오랜 시간 천천히 구운 뒤, 직원이 우리 테이블까지 항아리채 들고 와서 직접 깨뜨려 주었다.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김이 피어오르는데, 그 순간 고기의 진한 향과 야채의 달콤함이 함께 퍼졌다. 그날따라 저녁 식사가 늦었고 여행의 피로가 쌓였었는데, 항아리 케밥이 따끈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아바노스(Avanos) 마을은 히타이트 시대부터 도자기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항아리를 빚고, 여자들은 정성스럽게 카펫을 짜서 사랑 고백의 선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마을 이곳저곳에 도자기 가게와 카펫 가게가 많았다.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따끈한 김과, 서로 잘 어우러진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왠지 풋사랑이 아니라 오랫동안 정성 들여 익혀낸 사랑을 닮아 있었다. '사랑해'라는 한마디를 전하려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구나 싶었다. 물레를 돌리며 항아리를 빚는 동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담았을까. 그러니 예전 사람들의 사랑은 그만큼 깊고 진했을 테다. 지금처럼 클릭 한 번, 이모지 하나로 마음을 전하는 빠른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세상이었다.
새벽 4시, 알람이 울리자 피곤함보다 설렘이 먼저 밀려왔다. 이곳에서 열기구(Hot air balloon)를 타는 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아이들을 키우며, 또 이민자로 분주하게 살아오느라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었다. 세상이 아직 어둠에 잠겨 있을 때, 기대와 떨림을 안고 출발 지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가스버너 불을 높이며 열기구들을 부풀리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거대한 천들이 서서히 둥근 모양을 갖추며 일어서는 게,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 같아 신기했다. 조종사가 "자, 이제 떠오를 거예요"라고 외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
정말 신기했다. 공기를 데우면 이 거대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른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인간의 호기심과 도전 정신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탔던 열기구의 조종사는 잘생긴 터키 청년이었다. 열기구를 부드럽게 땅에서 띄워 올리더니, 바구니 가운데 있는 가스버너의 불 세기를 조절하면서 중간중간 장난도 쳤다. 기구가 하늘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발아래로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보니 그제야 하늘을 나는 게 실감 났다.
땅에서 올려다봤을 때는 그저 신기한 바위 덩어리들이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거대한 조각 정원같기도 하고 신이 설계한 미로 같기도 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수백 개의 요정 굴뚝들이 360도 파노라마로 눈아래 펼쳐졌다. 그 순간의 감동은 내 짧은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열기구가 한꺼번에 뜨는 곳이라더니, 하늘은 온통 알록달록한 열기구들로 가득 찼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마치 하늘 전체가 꽃밭이 된 듯했다. 하늘은 금빛과 분홍빛으로 물들고, 아래로는 시간의 침식과 사람의 삶이 빚어놓은 신비로운 땅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수백 개 다른 열기구들 안에서도 같은 감동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했다.
파샤바 계곡, 로즈 밸리, 우치히사르까지 카파도키아의 모든 비밀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 걸으며 보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연결되어 보였다. 하나씩 떨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맞춰졌다.
열기구가 바람을 따라 떠다닐 때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한 시간 남짓한 비행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계속 하늘에 떠 있고 싶었다. 이 높이에서, 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순간은 유달리 짧게만 느껴졌다.
착륙하고 나자 샴페인 축배를 들고, 기념으로 인증서도 받았다. 샴페인 잔을 부딪히던 그 순간에도 내 몸은 아직 하늘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후에는 파샤바 계곡을 걸었다. 이곳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데, 요정 굴뚝과 협곡, 포도밭이 어우러진 풍경이 발걸음을 붙들었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대대로 살아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거친 땅이지만 그 거칠음 속에 품고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로즈 밸리에서는 해 질 무렵, 바위들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장관을 보았다. 시간에 맞춰서 장소를 찾아가느라 모래틈에 차가 빠질 뻔했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우치히사르 정상에 올랐을 때는 가슴이 사이다를 마신 듯 뻥 뚫렸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등반가들도 이런 기분일까, 감히 상상하게 될 정도였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그런지 정말 온 세상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아래와는 확실히 공기가 달랐다. 아, 정말 높긴 높구나' 실감했다.
천 년 전 이곳을 오르내렸던 사람들은 이 꼭대기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군이 오는지 망을 봤을 수도,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에 감사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카파도키아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식사 시간을 놓치면서도 열기구 예약을 성사시킨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먼저 밥부터 먹고 갔다면 여행사는 이미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한다. 꼭 해야 할 일, 정말 보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미루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나는 라틴어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말을 좋아한다. 성경 에베소서 5장 16절에도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라고 나와 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바로 와닿지 않아, 영어로 보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make the most of opportunity)'고 쓰여 있었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동굴 속에 숨어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결코 무한하지 않다. 인생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게 가장 잘 사는 방법이다.
중년에 접어드니 깨닫는 게 있다. 삶을 열정적으로 산다(Hustle Hard)는 게 꼭 대단한 일을 한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의 한계를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Stay Humble), 동시에 온몸으로 감당하며 사는 것이었다. 내 전부를 쏟아붓되 여백이 있는 삶. 그게 살 만한 인생 아닐까 싶다.
시간이 조각해 낸 신비로운 땅, 카파도키아.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오늘의 삶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비록 최고는 아닐지라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이스탄불에서 카이세리나 네브셰히르 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10분~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공항에서 주요 도시까지는 셔틀버스나 택시로 30~40분 정도 걸린다. 시내버스나 투어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자유로운 이동을 원한다면 렌터카를 추천한다. 도로 상태는 양호하고 주차도 비교적 편리하다.
카파도키아에 왔다면 동굴 호텔만큼은 꼭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Museum Hotel이나 Sultan Cave Suites, Kelebek Special Cave Hotel 같은 곳들이 유명한데, 현대적 편의와 전통적 정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예산이 넉넉지 않다면 게스트하우스나 부티크 호텔도 괜찮은 선택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세계문화유산인 괴레메 오픈 에어 뮤지엄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 젤베 오픈 에어 뮤지엄의 동굴 교회와 마을 유적, 트레킹으로 유명한 파샤바 계곡, 해 질 녘 분홍빛 바위가 장관인 로즈밸리, 파노라마 뷰가 압권인 우치히사르 등이 있다.
여행 시 유의사항으로는 동굴 호텔의 경우 성수기에는 금세 만실이 되니, 미리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열기구는 날씨에 따라 취소되는 경우가 잦아, 여유 있게 일정을 잡으면 좋다. 우리는 현지에서 직접 로컬 여행사를 찾아가 계약했다. 약간의 운이 필요하긴 하지만, 관광사나 출발지에서 미리 예약한 사람들보다 절반 가격에 탈 수 있었다. 전날 예약하는 게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긴 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새벽 다섯 시, 카파도키아의 찬 공기가 뺨을 스쳤다. 열기구 바구니 안에서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 있었다. 결혼 25주년은 은혼식이라 했던가. 이제 ‘실버 커플’이 된 우리지만, 마치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땅이 멀어져 갔다. 어제까지 우리 발걸음이 닿았던 그 길들이, 우리가 걸었던 동굴들이 작아져 갔다. 바위 하나하나의 거친 질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온 도시가 품은 오랜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수천 년의 세월이 빚어낸 기암괴석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 땅에서 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그저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바위와 동굴들이 실은 서로 이어져 있었고, 모두 연결되어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게 비로소 보였다.
문득, 옆에 서 있는 당신이 보였다. 아니, ‘다시’ ‘제대로’ 보였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를 너무 가까이에서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기미를 가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저녁마다 모니터 앞에서 맛집이나 여행 프로그램에 몰두하는 당신의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일상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치열한 일터에서 살아남느라 어느새 팍팍해진 남편의 말투를 나는 견뎌야 했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안일로 씨름하느라 예민해진 내 표정을 남편은 받아들여야 했다. 가까이서만 바라보는 우리의 일상은 때로 서로의 부족함만 확대해서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조금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니 비로소 보인다.
어느새 하얗게 내려앉은 흰머리가,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눈가의 주름이, 온 가족을 품어 안으려 둥그러진 어깨가… 그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니 새삼 고맙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때로는 까칠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웠던 내 모습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었음을… 그도 그렇게 나를 봐주며 살아간다.
카파도키아의 바위들이 수많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었듯, 우리도 25년의 크고 작은 풍파를 견디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거칠고 흠이 많아 보여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완성된 하나의 작품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열기구가 더 높이 올라갔다. 카파도키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다.
사람도, 사랑도, 인생도 이런 거구나.
가까이서만 보면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모자란 부분만 보이지만, 조금 멀리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라보면 전혀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바라볼 줄 알아야 비로소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나 보다.
어느새 나는 쉰둘, 남편은 쉰여섯이 되었다. 이제 서서히 예순을 향해 가고, 아이들도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우리는 다시 둘만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겠지. 어쩌면 이게 새로운 시작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남편의 손을. 마주 잡은 손안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를,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카파도키아처럼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 25년 동안 가까이에서만 바라봤던 서로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준비를 한다.
열기구는 계속 떠올랐고,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