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며 살아내는 삶
메테오라에서 E90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끝없는 평원과 산맥 사이로 차가 부드럽게 달렸다.
차창 밖에서 갑자기 후두둑 소리가 났다. 소나기였다. 산 위가 아니라 차 안에서 비를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베레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가 내걸렸다. 뜻밖의 한줄기 선물에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베레아(Veria) 또는 베로이아(Beroea)는 테살로니키에서 남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베르미오스 산 자락 아래 자리한 고대 도시.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해 과수원과 농사가 잘 되었고, 로마시대엔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국제적 교류로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는 로마 제국의 토목 기술과 행정력을 상징하는 길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말을 실감케 했다. 기원전 2세기쯤 완성된 이 도로는 아드리아해 뒤라키움에서 비잔티움까지 1,120킬로미터를 잇는 동서의 대동맥이었다. 지금의 알바니아 두레스에서 이스탄불까지 연결하는 이 길 덕분에 군사와 상업은 물론, 문화와 복음까지 동서양을 넘나들 수 있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테살로니키, 그리고 베레아까지 이 길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 이천 년 전에 그도 뜨거운 태양 아래 혹은 비를 맞으며 이 길을 걷고 또 걸었으리라.
사도 바울의 베마(Podium of Saint Paul the Apostle)를 찾아갔다. 바울이 베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울의 동상과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가 세워져 있었다. 벽화 속엔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바울, 진리를 갈망하는 베레아 사람들의 간절한 눈빛, 그리고 마케도니아로의 부르심을 전하는 천사의 환상이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때, 또다시 부슬부슬 빗방울이 흩뿌렸다. 사도 바울과 베레아 사람들이 만나던 그날도 이렇게 촉촉한 비가 내렸을까?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바울의 동상 가까이 다가섰다. 그런데 신기했다.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 오던, 단단한 신념으로 무장한 강철 사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 앞에 선 건 전혀 다른 바울이었다.
굽은 어깨, 세월의 무게가 깃든 가느다란 손가락, 자신이 지키는 신념이 담긴 책을 조용히 가슴에 품은 노인의 모습. 눈빛에는 강인함보다 어딘가 짙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아, 그렇구나. 바울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홀로 외로움에 깜깜한 밤을 견뎠을 테고, 때로는 절망 앞에 무너졌을 테고, 그럼에도 자신이 믿는 바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저 한 사람이었구나.
사도행전 17장 말씀이 떠올랐다. "베레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확인하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그리스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베레아엔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부유한 유대인과 헬라인이 함께 거주했었다. 그 역사적인 만남이 있던 자리에서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처럼 간절한 마음을 사모하게 됐다.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됐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 그가 회심한 후에 베레아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사기꾼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노예 신분에서 초대 감독까지. 신앙이 사람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한계가 없는 듯하다. 오네시모 이야기도 한 줄기 감동이 되어 가슴을 적셨다.
젖은 흙냄새와 부드러운 공기가 진리를 찾던 마음들처럼 촉촉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게 분명 있었다.
테살로니키(Thessaloniki)로 향했다.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 왕 카산드로스는 아내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여동생인 테살로니케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세웠다. 그 이름 속에 벌써 오랜 사랑과 역사가 함께 녹아들어 있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로마 시대에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였고, 비잔틴 시대에는 비잔티움과 함께 '공동 수도'로써 그리스 정교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금도 테살로니키는 상업과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명실상부하게 '그리스 제2의 도시'다.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의 상징이라면, 이곳은 ‘그리스의 역사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도시에 들어서니 4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골목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표를 단 건물은 15곳이나 있다. '시간'이라는 존재는 모든 걸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중하게 지켜내는 보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곳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Holy Church of Saint Demetrius)였다. 이 교회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바실리카 양식 건물로, 도시를 지키는 수호성인 데메트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5세기에 세워졌다. 데메트리우스는 3세기말에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 군대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던 그는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창에 찔려 순교했다. 군인으로서의 영광과 신앙인으로서의 신념 사이, 그는 마지막 순간에 두 갈래 길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권력과 믿음, 이 둘 중 무엇이 그의 가슴을 더 뜨겁게 했을까.
테살로니키는 1917년 대화재로 도시 중심부가 잿더미로 변했다. 그때 이 교회도 불탔는데 1926년부터 무려 22년에 걸쳐 재건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이 교회를 다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의 사랑이 교회 곳곳에서 느껴졌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금은의 화려한 장식과 이콘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래의 기초 기둥들과 새로 복원한 천장 빔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길래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봤더니, 데메트리우스의 유해가 안치된 은관에 조문하려는 행렬이었다. 더 앞쪽으로 가니, 주교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 주위로 낮은 담이 쳐져 있었고, 오른편으로 조그만 통로가 지하를 향하고 있었다.
지하는 데메트리우스가 갇혀 순교한 장소였다. 로마 시대에는 공중목욕탕이었다고 하니, 평범한 일상과 숭고한 죽음이 동일한 공간에서 교차된 셈이다.
우리는 그 깊은 지하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한 인간의 숭고한 결단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출세가 보장된 군인에서 총독까지 올랐던 사람이 복음 하나 붙들고 순교의 길을 택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후회가 없었을까.
테살로니키 곳곳에 역사의 보석들이 흩어져 있었다. 4세기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만든 로톤다(Rotunda) 역시 그중 하나다. 무덤으로 지어졌지만 한때는 교회였다가, 또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건물도 사람처럼 여러 인생을 살아온 듯했다. 그 근처에 갈레리우스 개선문(Arch of Galerius)은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세워졌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Cathedral)은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를 본따서 비잔틴 예술 양식으로 지은 성당이었다. 화이트 타워(White Tower of Thessaloniki)는 도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다. 한때는 견고한 요새였다가 어두운 감옥이 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자 전망대 역할까지 한다. 요새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박물관으로, 이렇게 바뀌는 동안에도 이 탑은 묵묵히 시간을 견뎌왔다. 그 탑을 올려다보자, 인간의 짧은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래 버텨온 세월이 느껴져 왠지 모를 경의감마저 들었다.
바울도 이곳에서 박해와 소동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그리스인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바울은 테살로니키 교회로 두 통의 편지를 보내며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는 공동체를 힘껏 격려했다. 그 편지들이 지금도 남아서, 이천 년 전 건네진 위로와 격려를 지금의 우리도 함께 나누고 있다.
테살로니키에 들어서면, 이 도시만의 독특한 공기가 느껴진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리스인의 정체성과 신앙의 본질을 굳건히 지켜온 뭔가 단단한 힘이 피부에 와닿는다. 곳곳에 자리한 교회와 모자이크, 그리고 신앙의 유산들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처럼 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메테오라에서 베레아까지는 E90 고속도로를 따라 차로 약 2시간이면 도착한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는 기차로 4~5시간 정도 걸리고, 빠른 이동을 원하면 버스나 국내선 비행기도 있다. 테살로니키에서 베레아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쯤 거리라, 두 도시를 묶어 여행해도 좋다.
테살로니키는 대도시라 숙소를 찾기에 편리하다. 오노마 (ONOMA) 호텔, 더 메트 (The Met) 호텔, 엘리자베스 부티크 (Elisabeth Boutique) 호텔, 포르토 팰리스 (Porto Palace) 호텔 등 취향과 예산에 맞게 선택의 여지가 많다. 베레아는 테살로니키에 비해 작지만, 바울의 베마 근처에 소박한 로컬 게스트하우스와 중소형 호텔들이 있어 현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베레아에서는 사도 바울과 관련된 유적지 중심으로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바울이 설교했던 베마와 바울 동상은 물론, 고대 모자이크와 중세 시대의 교회들도 볼거리다. 특히 유대인 공동체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
테살로니키는 볼거리가 훨씬 풍부하다.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와 로툰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 같은 종교적 건축물부터 화이트 타워, 갈레리우스 개선문, 로마 포럼 등 역사적 유적들까지 다채롭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은 카페, 레스토랑, 상점이 모여있는 중심가로, 도시의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두 도시 모두 이동이 편리하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제2의 도시답게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 베레아는 아담한 소도시라서 걸어서 이동하기에 부담이 없다. 테살로니키에서는 해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곳곳에 자리한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그리스의 맛과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베레아 사람들. 참 매력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경청했지만,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늘 열린 마음과 진지함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날마다 스스로 성경을 파고들었다. 누군가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진리가 무얼까 직접 탐구했다.
그런 베레아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요즘 세상엔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시대다. 그럴듯한 주장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와 온 세상을 떠다닌다. 이럴 때일수록 베레아 사람들의 태도는 새록새록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들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고, 받아들여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곱씹어 보았다. 요즘 시대에 더욱 필요해진 참지혜라 생각됐다.
데메트리우스의 삶과 죽음 앞에서 진정한 신앙이 무언지, 참된 용기가 무언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버리고 자신이 믿는 바를 선택한다는 것. 그것도 순교처럼 극한의 선택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의 작은 선택 앞에서도 자주 흔들린다. 편한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이익과 신념 사이에서 고민한다. 데메트리우스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진정한 용기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살아내는 거라고 도전하고 있었다.
베레아와 테살로니키를 여행하며, 두 도시 구석구석 스며든 신앙의 향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베레아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가졌던 신사적이고 열린 태도는 정말 닮고 싶은 모습이다. 성장은 타인의 말을 수동적으로 들어서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한 성장은 스스로 묻고 계속해서 탐구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예전에 나는 신앙을 단지 무얼 하고 무얼 하지 말아야 하는 관습이나 율법쯤으로만 여겼다. 믿게 된 이후에도 처음엔 그런 방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이 가진 신앙이라는 건 오히려 삶에 대한 태도나 방식, 그러니까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됐다. 베레아 사람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그런지 아닌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깊이 성찰하는 삶의 자세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테살로니키는 베레아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 박해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굳건히 믿음을 지켜낸 이들의 용기.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증명했고, 어떤 시련도 그들이 지닌 신앙을 꺾지 못했다.
서로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두 도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각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열매 맺힌 곳이라는 점이다. 베레아에서는 진리를 향한 갈망과 열린 태도를, 테살로니키에서는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신앙의 여정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길이다. 한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 그 길 위에서 베레아 사람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묵상하고, 테살로니키 사람들처럼 믿는 바대로 용기 있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