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에게해의 푸른 꿈

더 찬란한 인생 2막을 준비하며

by Shin란트로

하얀 마을과 나

비행기 안에서 영화 『My Big Fat Greek Wedding 3』를 보며 그리스로 향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 툴라가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졌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푸른 에게해를 바라보며 마음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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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y Big Fat Greek Wedding 3』의 한 장면

산토리니는 '에게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 지형으로, 고대 아크로티리 유적지에서 볼 수 있듯이 미노아 문명과도 연관이 깊다.

산토리니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맘마미아!' 나는 내가 너무 서둘러 왔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눈앞의 풍경이 맘속으로 훅 들어와 버렸다.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랄까.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 층층이 쌓인 하얀 집들이 내 모든 감각을 자극했다. 에게해의 짙푸른 빛깔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 하늘과 맞닿아 경계조차 희미했다. 그 위로 절벽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하얀 벽과 파란 지붕의 집들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빚어낸 한 편의 작품이었다.

내 눈 속에 그대 있소 ^^


해가 스러지면 바다가 품고

산토리니에서 일몰 감상은 마치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다. 일몰 뷰 포인트로 유명한 이아 성채의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성(Agios Nikolaos Castle) 근처는 해가 지기 두세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오후 6시쯤이면 이미 북적이는 여행객들로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

이아 성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세계 3대 일몰 장소에 와 놓고, 사람들 등 뒤에서 찰나의 순간을 놓칠 순 없었다. 그래서 미리 볼칸 온 더 록스(Volkan on the Rocks)라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석양과 함께 영화 감상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둘만의 일몰을 만끽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하늘은 점차 색을 바꿔갔다. 처음에는 연한 주황빛이더니, 점점 진해져 이내 곱디고운 분홍색으로 번져갔다.

저녁식사와 함께 일몰을 기다리며

사실 미국 집에서 보는 일몰도 충분히 아름답다. 캘리포니아 로렌 하이츠 근처는 산이 많고 우리 집이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토리니의 일몰은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집에서는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며 하늘 전체를 물들이는 반면, 산토리니에서는 태양이 바닷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해를 품은 바다는 순간순간 색을 달리하며 장관을 연출했다. 하늘도 그 광경을 고요히 지켜보며 함께 어우러졌다. 정말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하늘과 바다가, 이렇게 황홀할 수 있구나 싶었다. 특별한 순간은 늘 빨리 지나간다. 마침내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사라지고, 이내 아쉬움이 밀려왔다.


시간이 멈춘 골목에서

다음 날 이아(Oia) 마을을 구경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서든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길모퉁이의 하얀 의자, 그 위에 놓인 꽃 화분,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교회 종소리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은 내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담장 너머 만발한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예상치 못한 모퉁이에서 작은 책방이나 갤러리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서들이 즐비한 아틀란티스 서점

피라(Fira) 마을의 골목을 헤매다 마주친 아틀란티스 서점(Atlantis Books)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뜻밖의 선물 같았다. 원래 이아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피라 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산토리니가 정말 바닷속으로 사라진 아틀란티스였을까? 20여 년 전, 꿈 많은 영국 청년 두 명이 이곳에 왔다가, 그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문학도들을 위한 아지트로 책방을 시작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처럼 낭만적이었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봉사와 후원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평범한 서점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가에 꽂힌 고서들은 산토리니의 신화와 그리스의 고대사를 품은 채, 먼지 쌓인 시간 너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몬디 베이에서 이아 마을을 올려다보며

파란 돔 교회(Blue Domed Church)아몬디 베이(Ammoudi Bay), 항구와 케이블카, 세 개의 종 교회(Three Bells of Fira)와 칼데라 뷰까지. 산토리니는 어디를 둘러봐도 마치 세상 끝자락에 선 것처럼 벅찬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모든 곳이 그림 같은 포토 스팟이다. 평소에 사진 찍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곳에서는 저절로 셔터를 누르게 됐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고 보니, 그 순간의 감동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았다. 지중해 특유의 바다 빛깔, 멀리서 울려오는 교회 종소리,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은 렌즈 너머 그 자리에 남겨져 있었다.

항구에서 마을로 올라갈 때 케이블카나 당나귀를 이용한다

맛으로 느끼는 지중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 바로 현지 음식이다. 그리스 하면 가장 유명한 건 기로스(Gyros)수블라키(Souvlaki)다. 둘 다 피타 빵에 구운 소고기나 돼지고기, 그리고 토마토, 차치키 소스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하나는 고기를 얇게 썰었고, 하나는 덩어리로 꼬치에 나온다는 차이뿐이다. 산토리니에서 먹은 토마토는 유난히 달콤했다. 기분 탓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화산 토양에서 자란 농산물은 특별히 더 달다고 했다. 요즘엔 지중해 식단이 건강식으로 알려져서 그리스식 요거트 소스, 차치키(Tzatziki)는 익숙했다. 숯불 향 고기와 신선한 야채, 상큼한 소스가 입안에서 어우러져 한국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입에 잘 맞았다. 덕분에 그리스의 여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 기분이었다.

20250513_215721.jpg 수블라키와 차치키

산토리니는 문어 다리 요리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문어와는 또 다른 맛이었는데 쫄깃하면서 부드럽고, 올리브오일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착 감겼다.

산토리니 문어 요리

무사카(Moussaka)수블라키, 기로스와 함께 그리스의 대표 음식이다. 다진 소고기나 양고기에 감자, 호박, 가지, 토마토를 차곡차곡 쌓아 베샤멜소스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다. 고기와 채소의 조합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부담 없어 먹기 좋았다.

20250514_115554.jpg 페타 치즈가 듬뿍 얻힌 그릭 샐러드(위)와 무사카(아래)


와인도 빼놓을 수 없다. 아시르티코라는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산토리니의 특산품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수블라키 냄새에 매료되고, 더위에 지칠 때쯤 나타나는 젤라토 가게는 산토리니 여행에 생기를 더해 주었다.


계획에 없던 길에서 만난 보석들

산토리니에서 유명한 관광지도 좋았지만, 우연히 발견한 곳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섬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아크로티리(Akrotiri)를 지나 이름난 해변들을 들러서 한 바퀴 돌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 구글 맵에 '하트 오브 산토리니(Heart of Santorini)'라는 글자와 함께 카메라 아이콘이 떴다.


'산토리니의 심장?'

'포토 스팟이라고? 한번 가보자!'


계획에 없던 방문이었는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곳이었다. 만약 이아 마을과 피라 마을만 둘러보고 산토리니를 떠났다면 이 섬의 진짜 매력을 놓친 것이다. 여기는 에게해를 앞에 두고 두 마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다.


하트 모양으로 뚫린 바위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나서 사람들이 하나둘 아래로 내려간다. 우리도 호기심에 따라가 봤다. 하늘만큼 큰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 절벽 끝에는 딱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작은 문이 보였다. 소박하지만 경건한 분위기의 예배당이 우리를 맞이했다. 땅끝 같은 동굴에서, 하늘의 시작을 매일 느끼며 예배했을 그 누군가의 삶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트 오브 산토리니

아크로티리 유적지베네치안 성(Venetian Castle)도 인상적이었다. ‘에게해의 폼페이’라 불릴만한 곳이었는데, 약 3,600년 전 화산 폭발로 사라진 고대 도시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3천 년 전 흔적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에도 누군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하늘과 바다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절대 그 거리를 뛰어넘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모든 격차를 넘어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베네치안 성 가는 길

레드 비치(Red Beach)는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붉은 화산암 절벽이 마치 화성의 풍경 같았다. 해변까지 내려가는 길이 꽤 험했지만, 그 덕분에 더욱 특별한 경험이 됐다. 붉은 절벽이 병풍처럼 해변을 감싸고 있어서,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레드 비치(Red Beach)


페리사 비치(Perissa Beach)의 검은 모래는 산토리니만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까만 모래와 맑고 투명한 바다는 화산이 만들어낸 특별한 풍경이다. 에게해에 발을 담그고 해변을 천천히 걸으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페리사 비치(Perissa Beach)


바닷가를 따라 레스토랑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알미라(Almira) 레스토랑에서 맛본 모둠 생선 한 상은 정말 신선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저 멀리 산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특별한 장소 같아, 직접 올라가 보기로 했다.

페리사 비치의 생선요리

이렇게 또 우연히 가게 된 곳이 고대 도시 티라(Ancient Thira)였다. 기원전 9세기 도리아인들이 세운 이 산꼭대기 도시는 세월에 닳은 신전과 극장 터가 남아 있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 속에서 부서진 돌들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페리사 비치와 에게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닷바람에 날아갈 거 같았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경관이었다. 때로는 예정에 없던 길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뭐 별거 있을까 하며 옮긴 발걸음이 사실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한 걸음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렌즈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

산토리니에서 보낸 며칠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평소 바쁘게만 살아오던 나에게, 이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이아 마을의 골목을 걷고, 피라 마을의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분주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사람들은 산토리니를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마음이 멈춰진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연과 사람, 그리고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 카메라를 내려두고 일몰을 바라봤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눈과 마음에 담고 싶어서였다. 태양이 바다너머로 스러지며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었을 때, 나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산토리니는 가보는 곳이 아니라 느끼는 곳이다. 하얀 골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고요한 바다의 속삭임,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 이 모든 게 산토리니만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줬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더 천천히, 더 깊이 이 섬의 마음을 읽어보고 싶다.


실용 여행 정보

산토리니는 아테네에서 페리로는 5-8시간, 비행기로는 50분 정도 걸린다. 페리는 일반과 고속이 있는데 요금은 두 배정도 차이가 난다. 산토리니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되고, 아티니오스(Athinios) 항구에서는 버스가 편리하다.


섬 내 이동은 렌터카(하루 30-50유로)가 가장 자유롭고, 좁은 골목이 많아 소형차를 추천한다. 스쿠터나 ATV도 인기가 있다. 피라나 이아의 칼데라 뷰 호텔은 1박에 평균 100-300유로로 비싸지만, 예산이 적다면 이메로비글리(Imerovigli)나 피로스테파니(Firostefani)에서 비슷한 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에어비앤비도 가능하다.


로컬 식당인 타베르나는 1인당 10-20유로로 푸짐한 식사가 가능하다. 관광지 근처는 비싸고 골목 안쪽으로 갈수록 저렴하며, 절벽 가까이 위치한 레스토랑은 가격이 조금 더 비싸지만 뷰 값을 한다.

이아 일몰 시간(7-8시)은 매우 혼잡하니 성채에서 일몰을 보려면 최소 1-2시간 전에 도착해 자리를 잡아야 한다. 7-8월은 최고 시즌으로 관광객이 많다. 혼잡함을 피하려면 5-6월이나 9-10월 방문이 더 이상적이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맘마미아, 그리스 섬에서 찾은 인생 2막


댄싱 퀸이 될 수 없어도

그리스의 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왠지 모르게 영화『맘마미아』가 떠올랐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도나의 모습이, 그 자유분방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You are young and sweet, only seventeen..."

아바(ABBA)의 '댄싱 퀸'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다가 피식 달지 않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젊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고, 하물며 열일곱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게 있다. 댄싱 퀸이 꼭 열일곱 일 필요는 없다는 걸. 마흔이든, 쉰이든, 아니 예순이 넘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지금 춤추고 있냐는 거다.


도나처럼 살고 싶다

자신의 삶을 여전히 사랑하는 도나 (구글 이미지)

영화를 보며 나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의 도나가 부러웠다. 물론 그녀의 인생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미혼모로 딸을 키우며 그리스 섬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게 쉬웠을 리 없다. 실수도 많았고, 아쉬움도 있었을 거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실수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남 탓을 하게 마련이다. "그때 그 사람이 그러지 않았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도나는 달랐다. 자신이 한 결정들을, 심지어 실수마저도 모두 받아들였다. 그렇게 자기 삶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내 선택들을, 잘한 것도 못한 것도 다 내 것으로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실수한 나 자신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때로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언제쯤 가능해질까.


엄마의 바람, 딸의 길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뭉클했던 건 엄마와 딸의 관계였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 도나도 딸 소피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우리 엄마 역시 그러셨다. 늘 "너는 나보다 더 좋은 걸 해야 한다"고 하셨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남편.

하지만 정작 "더 좋다"는 게 뭔지는 아무도 명확하게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하면, 남들이 인정하면 더 좋은 거라고 막연히 믿었을 뿐이다.


소피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내 진짜 모습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으러 가는 중이구나 싶었다.


중년의 뿌리 찾기

중년이 되고 보니, 인생의 전반부를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그 '좋다'는 기준이 과연 내 것이었는지 이제야 의문이 든다.


이제는 달라지기로 했다. 인생 후반부에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고 싶다. 소피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 것처럼, 나도 내 안의 진짜 나를 찾는 순례길에 올랐다.


그리스 섬을 여행하면서 예감했다. 이번 여행은 매년 갔던 여름휴가 중 한 곳이 아니라 내 인생을 되짚는 순례가 되리란 걸. 내 안에 숨어 있던 나를 만나는 순례 말이다.


인생 2막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행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인생 2막이 1막보다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어쩌면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고.


1막에서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바빴다면, 2막에서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련다. 1막에서는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애썼다면, 2막에서는 인생에 대답하는 과정을 즐기련다. 1막에서는 완벽해지려 노력했다면, 2막에서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도록 애쓰련다.


맘마미아의 한 장면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무대에서 춤출 수 있지 않은가. 젊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 무대는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한 건 춤추고 있다는 그 자체니까.


에게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생 2막, 이제 시작이다.
도나처럼 당당하게, 소피처럼 용감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게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 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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