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꿈, 성스런 마지막
파묵칼레에 도착했을 때,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산자락을 따라 마치 거대한 흰 담요를 덮어놓은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파묵칼레(Pamukkale)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목화가 많이 나기도 하지만, 이 풍경을 보면 '아, 그래서 목화의 도시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이 신비로운 풍경의 비밀은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에 있다. 석회암층을 뚫고 올라오는 뜨거운 온천수에는 탄산칼슘이 녹아 있어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만나 단숨에 하얀 석회를 남긴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쌓이고 쌓여, 지금 우리가 보는 환상적인 계단 모양의 테라스, 트라버틴이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온천수와 함께 일산화탄소 같은 유독가스도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이곳을 하데스, 즉 저승으로 통하는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1988년, 파묵칼레의 자연미와 산 위에 자리한 히에라폴리스의 역사적 가치가 함께 인정받으면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에 등재됐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모두 인정받은 복합유산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40여 곳 정도로 드물다고 한다.
언덕을 따라 층층이 이어진 석회 테라스는 신이 직접 설계한 계단 같기도 하고, 하얀 구름이 땅에 내려와 단단히 굳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수천수만 년 동안 온천수가 쉼 없이 흘러 만들어낸 장관을 보니, 자연이야말로 가장 성실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파묵칼레의 눈부신 하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기도 하고, 혹시나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도 한몫한다. 정상은 저 멀리 한참 남아 있고, 맨발바닥이 까지지나 않을까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게 된다.
‘대체 이 석회 침전물이 쌓이는 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1년에 약 1~3mm씩 자란다고 하니, 그 시간을 생각해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수만 년이라는 시간이 이 작은 석회 덩어리 하나하나에 오롯이 응축되어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온천수에 발을 담근 채 잠시 쉬었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쌓인 피로가 따뜻한 물에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온천물의 온도는 35도 정도로 몸이 기분 좋을 정도로만 따스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가 진짜 현실 세계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순백의 세상, 잠시 영화 세트장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이들은 이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자기 동네 수영장인 양 신나게 물장구치며 웃고 떠들었다. 젊은 연인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피부 질환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몸을 담그고 무릎을 주무르는 중년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파묵칼레의 자연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은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다.
파묵칼레를 다 올라가면 산 언덕에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빌립 사도의 순교 기념지(St. Philippe Martyrion)부터 찾아갔다. 언덕 꼭대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자리해서일까, 뉘엿뉘엿 지는 노을과 함께 평온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립. 그는 히에라폴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2011년, 이탈리아 고고학 팀이 이곳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냈고, 유해는 로마로 옮겨졌다.
빌립 사도의 무덤 앞에 서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천 년 전 이 낯선 땅에서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모든 걸 바친 한 사람.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평범한 어부로 살아가던 그가 어떻게 이 먼 소아시아 땅까지 오게 되었을까. 대체 어떤 힘이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올리브나무 사이로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 테라스가 내려다보였다. 빌립 사도 역시 생전에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창조에 감탄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치유를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빌립은 87세의 나이에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안전한 길만 택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무덤을 내려오면서 그의 순교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에게 그의 삶보다 죽음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의 치유 효능이 알려지면서 로마 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부유했던 로마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 이 도시에 찾아왔고, 그중 일부는 아예 이곳에 정착하기도 했다.
웅장한 원형극장(Hierapolis Ancient Theater)에서는, 이천 년 전 이곳을 가득 메웠을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탁 트인 언덕에 위치해 발아래로 온 도시가 내려다 보였다. 만 오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넓은 극장에서는 어떤 드라마가 펼쳐졌을까. 고요한 돌계단 위에서 수많은 감동과 눈물, 웃음과 감탄이 꽃피었을 순간들을 상상하게 된다.
히에라폴리스는 예상보다 무척 넓었다. 모두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꿋꿋하게 서 있는 몇몇 기둥들이 눈에 띄었다. 그 위의 조각 장식들은 지금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시간을 이긴다. 오랜 세월 수많은 지진과 전쟁을 겪고, 비바람에 깎이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온 기둥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겉모습은 다 사라졌어도, 본질만큼은 남아서 시간을 뚫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 도심 한가운데에 아폴론 신전 터(Ancient Temple Of Apollon)가 있다. 옛날에 히에라폴리스의 종교적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신전 바로 옆에는 ‘플루토니움’이라 불리는 동굴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 동굴이 지하세계로 통하는 입구라고 여겼다.
일반 사람들은 이 동굴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고, 아폴론 신전의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제사장이 이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면 무언가에 취해 평소와 다른 말을 내뱉었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아폴론 신의 신탁으로 여겼다.
지금 밝혀진 과학적 사실에 따르면, 일산화탄소라는 유독 가스 때문에 제사장들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이런 자연 현상을 신의 계시로 여겼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신비롭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사실, 그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일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다. 현대의 우리도 그런 미지의 세계 앞에서는 두려움이나 신성함 같은 감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히에라폴리스에는 ‘죽은 자들의 도시’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of Hierapolis)도 있다. 터키에서 가장 큰 고대 공동묘지로, 수천 개의 석관과 무덤이 산비탈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로마 시대에 온천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이곳에 묻혔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이 글귀는 이곳에서 발견된 한 묘비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짧은 문장이지만 묵직하게 다가왔다.
석관 하나하나는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박하고 단출한 무덤이 있는가 하면, 가족묘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한 무덤도 눈에 띄었다. 둥글고 낮게 흙을 덮어 만든 무덤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이었지만, 기둥 위에 관을 올려놓은 낯선 형태의 무덤도 있었다. 무덤들을 둘러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무덤이 전하는 이야기는 결국 다 같았다. 모든 삶은 끝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 우리는 흙에서 왔고, 마지막에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네크로폴리스가 히에라폴리스 안에 있었던 것처럼, 죽음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고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삶을 온전히 사랑하려면 죽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죽음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들기보다,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온전하게 사는 지혜 같다. 파묵칼레의 온천수가 석회 바위를 만나 아름다운 계단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삶도 죽음이라는 종착점을 만나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까.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Hierapolis Archaeological Museum)은 로마 시대 대목욕장을 복원해 만든 독특한 박물관이었다.
'옛 목욕탕의 둥근 천장 아래서 고대 유물들을 감상하고 있다니'
이곳에서 목욕을 즐기던 로마 사람들과, 지금 이 자리에 선 내가 이천 년이라는 먼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시장에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출토된 다양한 조각상과 석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르테미스 여신상과 정교한 장식이 돋보이는 로마 시대 석관들이 눈길을 끌었다. 석관 표면에 새겨진 조각들은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나 종교, 그리고 내세관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 근처에는 ‘클레오파트라 풀(Cleopatra Antique Pools)’이라 불리는 온천 수영장이 있다.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 건축물 사이에서 온천수가 솟아올라 자연스럽게 수영장을 이뤘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보수 공사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37도의 따뜻한 온천수에서 이천 년 전 로마 기둥들 사이를 헤엄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이다. 마치 클레오파트라가 된 듯한 기분이 들까?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한 번 체험해보고 싶다.
히에라폴리스를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다시 파묵칼레 쪽으로 내려왔다. 렌터카도, 예약한 식당도 모두 파묵칼레 타운 입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자, 하얀 석회 테라스도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갔다. 마치 커다란 웨딩케이크 위에 핑크색 크림을 얹어놓은 것 같았다.
해가 점점 낮아지면서 테라스의 색도 끊임없이 변했다. 장밋빛에서 주황빛으로, 이내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자연이 펼치는 이 색채의 향연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잊고 바라봤다. 다른 관광객들도 저마다 카메라로 이 순간을 담으려고 열심이었다.
산토리니에서 본 일몰이 떠올랐다. 카메라로 이 순간을 담을 수는 있지만, 내 마음에 남는 기억이 더 생생하다는 걸 이미 경험한 우리였다. 아름다움의 진가는 소유하기보다 경험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가지려 하지 말고 느끼자!
예약해 둔 히에라 레스토랑(Hiera Restaurant Coffee & Tea House)에 도착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5성급 호텔 못지않은 세심한 서비스에 감동 그 자체였다.
사장님이 직접 나와 반겨주시고, 테이블 세팅부터 음식 설명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챙기셨다. 소수의 테이블만 받는 이유도, 한 명 한 명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주문한 터키식 케밥에 파스타까지, 맛과 플레이팅 모두 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사장님은 본인이 직접 고른 수십 가지 소스를 병풍처럼 테이블 가득 세팅해 주시고는 각 소스의 특징과 어울리는 음식까지 설명해 주셨다. 그 모습에서 음식에 대한 진심과 손님에 대한 환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식사가 끝난 뒤 내어주신 터키 차와 견과류,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챙겨준 병물까지—작은 배려 하나하나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진정성은 히에라폴리스의 웅장한 유적만큼이나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되지만, 기억에 남는 장소는 손에 꼽을 정도다.
왜일까. 화려한 인테리어나 혀를 춤추게 하는 맛까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새로움에 덮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심이 전해지고 마음에 공감하게 될 때, 그 장소와 그 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던 이 식당에 손님으로 왔다가 터키 청년의 진심에 사로잡혀, 이제는 안주인이 되어있는 한국사장님의 밝은 미소가 이 식당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터 부부 사장님의 친절과 진심 덕분에 일상의 도전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식사 한 끼,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배려, 그리고 진심 어린 미소 한 조각 정도는 얼마든지 건네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조금 더 이동해 카라하이트에 있는 리치먼드 온천 리조트(Richmond Pamukkale Thermal Resort)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파묵칼레가 하얀 석회로 유명하다면, 카라하이트는 붉은 온천수가 유명한 곳이다. 철분이 풍부한 물이 만든 붉은 테라스는 파묵칼레에서 본 하얀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호텔 온천에 몸을 담그자 하루 종일 걷느라 쌓였던 피로가 씻겨졌다. 따뜻한 온천수가 지친 다리를 풀어주고, 오늘 하루 경험한 모든 순간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데니즐리 공항에서 파묵칼레까지 약 65km 정도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데니즐리 시내에서는 파묵칼레까지 정기적으로 버스가 있어서 30분이면 도착한다. 마을 자체가 워낙 작아 도보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숙박은 온천 호텔이나 리조트를 추천한다. 호텔에서 온천을 여유롭게 즐기면 하룻밤이라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파묵칼레를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4월부터 6월까지의 봄과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이다. 여름에 방문하면 날씨가 많이 더우니, 아침 일찍이나 해가 진 뒤에 둘러보는 게 좋다.
입장료는 히에라폴리스까지 들어갈 수 있는 통합 티켓으로, 내가 방문할 당시 30유로였다. 계절에 따라 개장 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보통 오전 8시부터 해 질 때까지 개방한다.
파묵칼레는 입구가 3군데 있다. 남쪽 입구(Hierapolis South Entrance)는 오전 6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고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북쪽 입구(Hierapolis North Entrance)는 네크로폴리스부터 시작해서 내리막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할 수 있다. 타운 입구(Pamukkale Town Gate / West Entrance)는 석회 테라스를 직접 오르는 코스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전체를 둘러보려면 4~5시간 정도 걸리니 일정은 여유 있게 잡는 게 좋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여행지라, 조금 한가한 일몰 무렵에 방문하면 석회 테라스와 하늘이 노을로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트라버틴에서는 맨발로 걸어야 하므로 신발을 들고 다녀야 한다. 보호 차원에서 들어갈 수 없는 구간도 있고, 바닥이 미끄러운 곳도 있으니 안전에 특별히 신경 쓰자. 신발을 담을 가방이나, 나중에 발을 닦을 수건을 챙겨가면 편리하다. 석회 테라스를 걷는 동안 햇살이 강하고, 하얀 석회층이 빛을 반사해 눈이 부실 수 있다.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 그리고 물도 잊지 말고 준비하자.
카메라 배터리는 넉넉히 챙기는 게 좋다. 멋진 풍경 때문에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
파묵칼레에서는 온천 소금이나 트라버틴으로 만든 기념품이 인기가 많다. 가까운 카라하이트는 붉은 온천수인데 피부에 좋기로 유명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파묵칼레 언덕의 하얀 석회암 계단은 이천 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관광버스나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의 온천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치유를 위해, 또 누군가는 그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히에라폴리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이 고대 도시는 로마 시대에 최고의 온천 휴양지로 이름을 날렸다. 부유한 로마인들은 관절염과 피부병을 고치러 왔고, 여행객과 상인들은 휴식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했다. 온천의 치유력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네크로폴리스, 죽은 자들의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한 노인이 왔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빌립이었다.
빌립을 처음 만난 건 요한복음 1장에서다. 예수님이 그를 부르며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했다. “모세의 율법책과 예언자들의 예언서에 기록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나사렛 사람 요셉의 아들인 예수였어”
“가서 만나보자!”
빌립의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는 확신하면 나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많았다.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 앞에서 “이 사람들을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살 수 있겠느냐?” 물었을 때, 빌립은 계산기를 두드리듯 답했다.
“한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준다고 해도 200 데나리온어치의 빵이 부족합니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사람. 하지만 때로는 그 현실성이 더 큰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르느냐"
그런 빌립이 말년에 히에라폴리스에 정착했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4세기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빌립은 히에라폴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다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해 본다.
히에라폴리스는 치유의 도시였다. 온 제국에서 병든 이들이 몰려들었다. 몸의 치유를 찾아온 이들에게 빌립은 영혼의 치유를 이야기했을 거다. 아마도 그는 온천가 주변에서, 목욕탕에서, 환자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조용히 복음을 전했을 거다.
"당신이 찾는 진짜 치유는 여기 이 온천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 중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을 테다. 로마의 철학자들, 그리스의 의사들, 부유한 상인들. 이들에게 갈릴리 어부 출신 노인의 이야기는 어떻게 들려졌을까?
하지만 빌립은 포기하지 않았다. 질문 많던 젊은 시절의 그 성격이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거였다.
"정말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나요?"
"고통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히에라폴리스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동북쪽 외진 언덕에서 뜻밖의 유물을 찾아냈다. 바로 빌립 사도의 무덤과, 이후 비잔틴 시대에 그의 순교를 기념해 세워졌던 마르티리온이었다.
그 유적 앞에서 빌립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봤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았을까? 현실적이고 계산적이었던 그가,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을 정도로 확신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게 질문의 끝이었을 것이다. 평생 질문하며 살아온 사람이 마침내 찾아낸 답은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의심했고, 계산했고, 때로는 낯선 기적 앞에서 머뭇거렸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결국에는 확신했고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되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르느냐"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모든 질문의 답이 바로 곁에 있었다는 것을. 계산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존재함 자체로, 그 사랑 자체로 모든 걸 가능케 하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늘날 파묵칼레를 찾는 수십만의 관광객도 어떤 면에서는 이천 년 전 히에라폴리스를 찾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치유를 찾고 있다. 몸의 아픔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 관계의 회복, 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여전히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청년도, 지팡이를 의지해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노인도,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여기에 왔다. 물론 그걸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빌립이 이들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당신이 정말로 찾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 모두는 빌립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삶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 흐르고 있는 진짜 갈망을 들여다보는 것.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히에라폴리스를 떠나면서 빌립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끝까지 질문하지만, 답을 찾으면 망설임 없이 나누고.
현실을 바라보지만, 그 너머의 가능성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치유를 구하지만, 다른 이들의 치유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의 샘물은 다른 곳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우리가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바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말이다.
"당신이 정말로 찾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