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편한 온도의 고백
라오디케이아(Laodikeia)로 향하는 길, 내 마음속에는 끊임없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실제로 그곳에 가보니 그저 성경에 나오는 상징적 표현이나 비유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수자원이 부족해서 멀리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북서쪽으로 9km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는 뜨거운 온천수를, 북동쪽 14km 거리의 골로새에서는 만년설이 녹은 차가운 물을 가져왔다. 이 두 수원(水源)이 도시 안에서 합쳐지면서 물은 미지근하게 변했고, 게다가 물속의 석회와 광물질 때문에 물맛조차 텁텁하고 역겨웠단다.
고대에는 라오디게아(Laodicea)로 불렸던 이 도시는 헬레니즘 왕국의 안티오쿠스 2세가 자신의 부인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명명할 만큼 화려하고 번성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검은 양모로 만든 의류와 직물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럭셔리 명품으로 통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와 동방 각지로 수출되면서 이 도시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자연스럽게 은행업이 발달했다. 그 결과, 상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꽃피는 법. 라오디케이아는 바로 그런 도시였다. 소아시아의 루커스 계곡을 따라 번성했던 이 상업 도시는 모직물과 금융업 뿐만 아니라, 의약 기술로도 유명했다. 수질이 좋지 않아 눈병이 많았고, 그래서 안약 개발도 활발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가 뒤섞였고, 유대인 공동체도 일찍부터 자리 잡아 예루살렘에 금을 송금하기도 했다. 그들은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독교 교회를 세울 정도로 부유했다.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Laodicea Ancient City)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비잔틴 시대의 동문을 지나자 도시 전체가 한눈에 펼쳐졌다. 비교적 관광객이 적어 한적했고, 마치 도시 전체를 나 혼자 독차지한 기분이었다.
도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시리아 길(Syrian Road)을 따라 걸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대리석 돌길과 복원된 수많은 기둥들이 어우러져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침 햇살이 기둥 그림자를 땅에 길게 드리우기 시작하자, 마치 고대의 상인이나 여행객이 된 듯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첫 번째 극장인 북극장(Northern Theater)에 발을 들여놓자, 무성한 풀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너머로 수천 년 전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했다. 극장 유적들 사이로 저 멀리 파묵칼레의 새하얀 비탈과 데니즐리 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음유시인처럼 한 소절 읊조리고 싶었을 테고, 연극배우처럼 무대 중앙에 서서 감정을 토해내고 싶어 졌을 것 같다.
동쪽에는 로마식 스타디움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규모에 또다시 놀랐다. 당시 사람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축제의 열기가 지금도 뜨겁게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목욕탕과 온천 구역을 거닐다 보니 이곳의 옛 일상이 보여졌다. 지금의 카페나 커뮤니티 센터처럼,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서로 소통했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이웃과 나란히 앉아 인생사를 이야기하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수로와 목욕장 바닥에 흘러내린 온천수의 흔적, 목욕을 즐기던 일상의 풍경, 그리고 신전의 두터운 기둥 너머 스토아(Stoa)와 장터(Agora)에 모여든 상인과 손님들의 북적임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 옛날의 자리, 그들의 흔적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라오디케이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초기 기독교 교회 바실리카였다. 이곳은 다른 유적지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규모도 엄청났고 발굴 과정 중에도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파란색 공무 요원 복장을 입은 청년이 입구에 있었다. 물론 자기 스마트 폰만 쳐다보고 있고, 뭘 물어봐도 영어를 못했지만, 일곱 교회를 다 돌아다녀봐도 사람이 지키고 있는 곳은 유일했다. 게다가 마치 어제까지 누군가 사용하던 교회처럼 거의 온전하게 발굴되어 있었다.
입구 문턱을 넘어서자, 바닥에 펼쳐진 여러 색깔의 모자이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붉은 하트 무늬가 유독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수천 년 전,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밟고 다녔을 바로 그 바닥 위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문양이 여전히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실리카를 둘러볼 때, 목사님 설교가 떠올랐다. 라오디게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이자, '마지막 시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순례 일정상 가장 먼저 찾게 된 곳이었다. 마치 '너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니?' 하며 우리 시대의 단면을 가장 강하게, 첫 순서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지근한 도시에서 만난 하트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하트 모양 모자이크는 화려한 성공이나 많은 재물보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라오디케이아의 역사는 대지진과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구 안내판에는 이 도시를 강타했던 수많은 지진의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중 가장 참혹했던 건 네로 황제 시절에 일어난 대지진이다.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하자, 로마 황제가 재건 지원을 약속했다.
놀라운 건 시민들이 "우리 스스로 도시를 다시 세우겠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불굴의 자존심과 의지는 로마 제국 전체에 그들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언덕 정상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펼쳐진 유적들과 중앙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신전 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된 듯, 잠시 앉아 그 풍경을 바라봤다. 그들은 물리적인 지진 앞에서는 굳건했지만, 영적인 지진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던 건 아닐까.
라오디케이아를 떠나면서 과일과 물을 사려고 매크로(Macro) 슈퍼마켓에 들렀다. 계산할 때 아이디를 보여달라고 했다. 미국 신분증을 내밀자, 직원이 우리 다음 손님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그 사람의 카드를 스캔해서 할인 가격을 적용해 줬다. 아마 코스트코처럼 멤버십 할인 마트였나 보다. 낯선 땅에서 만나는 이런 소소한 친절은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직원이나, 그 슈퍼마켓이 아니라 그 나라의 따뜻함으로 말이다.
정말 그 말대로 냉동된 석류주스와 오렌지주스가 냉동고에 가득했다. 보자마자 얼른 카트에 담았다.
여행이 일주일을 넘어 이주차로 접어드니 즐겁지만 지친다. 설레지만 녹초가 된다. 그럴 때마다 차 안에서 마신 석류 주스와 오렌지 주스는 우리의 구원투수였다.
한 모금 들이키면 석류의 새콤달콤함이 혀끝에서 터지고, 오렌지의 상큼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그러면 지친 어깨가 쫙 펴지고 멍했던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꽝꽝 얼어있어서 시원하게 한 잔씩 비우고 나면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볼까?" "오케이!"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때로는 한 잔의 주스가 몸을 깨우는 에너지원이자, 마음을 리셋하는 버튼이었다.
터키에서 '카이막(kaymak)'의 매력에 푹 빠져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 먹었다. 이건 꿀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마트에 벌집 꿀은 포장이 너무 컸다. 꿀 코너에서 한참을 고르고 있으니 인상 좋은 터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지역에서 꿀을 양봉하며 납품한다는 그는, 자신의 양봉지에서 직접 꿀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2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우리 일정으로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냥 마트에서 터키 특산품 솔꿀 작은 병 하나를 구입했다. 저녁에 호텔에서 맛본 카이막과 꿀 조합은 여전히 환상적이었다. 식당에서 먹던 것과 거의 똑같은 맛이니, 나처럼 카이막에 푹 빠진 사람들에게는 강추한다.
터키인들의 국민음료 아이란(Ayran)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요거트에 물과 소금을 넣어 만든 건강음료로, 터키식 요거트다. 우리가 먹던 요거트보다 짜고 묽어서 처음에는 별로였다. 그런데 뙤약볕 아래 땀 흘리며 걷다가 하나씩 사 먹어 보니, 짭조름한 청량감이 목구멍으로 넘기기에 좋았다. 전해질도 보충해 주고 속도 편하게 해 주니, 이 나라 사람들이 날마다 마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에서 만나는 음식들은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익숙해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다음 여행지 에페소로 향하는 길. 터키 고속도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밭과 올리브 농장, 누런 평야를 가로질러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아직 갈 길은 먼데 배꼽시계가 울린다. 터키에도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는데 '코프테시 유세프(Köfteci Yusuf)'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희네 빈대떡’처럼 ‘요셉이네 코프테’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먼저 앉아 있는 손님들의 식탁을 쭉 둘러봤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 동그랑땡보다는 크고 떡갈비보다는 작은 크기의 고기전 같은 것을 접시 가득 쌓아놓고 먹고 있었다. 그게 '코프테(kofte)'라는 음식이란다.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코프테는 간 소고기에 양파, 허브, 소금, 후추, 빵가루를 섞어 동그랗게 빚어 구운 요리다. 촉촉하고 육즙이 풍부해서 빵과 차가운 요구르트, 신선한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입안에 착 감겼다.
터키 고속도로 휴게소는 대부분 넓고 깔끔하다. 카페테리아부터 편의점, 화장실, 주유소, 기념품점까지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운전 중 잠깐 쉬어가기에도, 허기를 달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라오디케이아는 한때 돈과 문화가 넘쳐나던 대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고요한 발굴 현장에서 과거의 찬란함을 한 조각씩 되살리고 있을 뿐이었다.
풍요로움이 독이 되기도 한다는 걸,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너무 많이 가지니 간절함을 잃었고, 안락함에 젖어드니 열정이 식어갔다. 미지근한 삶.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어정쩡함 속에서 영혼은 서서히 녹슬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건, 포기하지 않고 문 밖에서 끈질기게 두드리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네가 뜨겁든지 차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이 가슴을 찔렀다. 책망이지만 동시에 사랑이었다. 책망이 들려온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 밖에서 끈질기게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는 건, 여전히 초대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 옛날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를 스스로 일으켜 세운 것처럼, 이번에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길 기도하게 됐다.
나도 내 안의 미지근함과 마주했다.
어느새 안주하려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시 뜨거워지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일인지도 모른다.
라오디게아에서 온 편지가 오늘도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지금 네 마음의 온도는 어떠니?'
이 질문을 품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라오디케이아는 데니즐리 시내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파묵칼레에서 차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데니즐리 버스터미널에서는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데니즐리 차르닥 공항으로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데니즐리 시내에는 비즈니스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합리적인 가격대의 숙소들이 많다. 파묵칼레 마을에서는 온천호텔, 펜션, 테라스 전망의 부티크 숙소들을 찾을 수 있다. 카라하이트에는 치유를 목적으로 한 고급 온천 리조트들이 많이 있다. 유적지 뷰와 조식 포함 여부를 확인하고, 성수기인 봄가을에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주요 명소로는 북극장과 남극장, 고대 스타디움, 시리아 로드의 열주 거리, 초기교회와 로마식 목욕탕, 신전, 아고라, 대규모 수로시설이 있다. 언덕 전망대에서는 주변 일대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최적 방문시기는 봄과 가을인 4~6월과 9~11월이며 여름에는 오전이나 늦은 오후를 추천한다. 기본적인 관람에는 2-3시간,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려면 반나절 정도 잡는 것이 적당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골로새에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라오디게아에도 분명 편지를 보냈다는 말인데 그 편지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름하여 '라오디게아 서(書)', 그 편지엔 과연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는 루커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자매 도시였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 상인들이 오가며 소식을 전하던 곳. 골로새서를 읽어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이 라오디게아에 보냈던, 사라진 그 편지의 내용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이런 내용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에게,
나는 비록 로마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단 하루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메마른 땅 같다는 소식이 제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합니다. 최고급 검은 양모 의복을 걸치고 은행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는 너무나 가난하다는 것을요.
골로새의 형제자매들처럼, 여러분 역시 이단의 가르침에 휘둘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교묘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포장된 가르침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모든 것을 저버리고, 어찌하여 이 세상의 덧없는 초등 학문에 매달리는 것입니까?"
바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랑이 짙게 배어 있었다.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준 안정감이 오히려 영적 나태와 공허를 불러오는 아이러니. 이는 비단 이천 년 전 라오디게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과연 라오디게아와 얼마나 다를까, 마음이 찔려왔다.
어쩌면 바울의 편지에는 이런 경고도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여러분의 믿음이 '미지근하다'는 소식은 제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 듯합니다. 뜨거운 히에라폴리의 온천수처럼 열정적이지도, 차가운 골로새의 샘물처럼 시원하지도 않은, 그저 어정쩡한 중간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니. 혹 신앙이 단순히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혹 예배가 그저 하나의 형식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닙니까?
부유함은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은행 금고에는 황금이 가득할지언정,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에는 언제나 희망과 사랑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회복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겪었던 큰 지진을 기억하십시오. 로마 황제 네로가 복구 지원을 제안했을 때, '우리의 힘으로 다시 세우겠다!'고 외치던 그 자부심과 의지를. 바로 그런 불굴의 의지로, 무너져가는 여러분의 영혼과 신앙도 다시 일으켜 세우십시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의 덧없는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토록 끈질기다. 요한계시록에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어쩌면 이 말씀이야말로 라오디게아에 보낸 편지에 담겼을 가장 강력한 초대였을 것이다. 우리 마음 문을 열고, 그분과 함께 먹고 교제하며 삶을 나누라는 간절한 부름. 골로새의 형제 에바브라와 히에라볼리의 성도들처럼,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라는 바울의 위로와 격려도 함께 적었을 것이다.
이 편지는 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마도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울의 권면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자신들의 부유함과 자존심에 익숙해진 상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는 불편했을 거다. 자만에 가득 찼던 그들이 과연 이 '불편한 진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을까. 글쎄, 어쩌면 그들은 그 편지를 불태웠거나, 아니면 어딘가 깊숙이 숨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편지는 비단 이천 년 전 라오디게아 교회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적으로는 메말라가는 현대 교회에게, 익숙함과 타성에 젖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그 사라진 편지는 여전히 날카로운 경고이자 동시에 따스한 초대장으로 다가온다.
편지는 사라졌지만, 그 속에 담겨 있었을 '사랑'은 계속해서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다. 라오디게아의 유적지를 걸으며, 나는 그 잃어버린 편지의 메아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