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르나, 몰약 향기 피어난 도시

진정 부요함을 배우다

by Shin란트로

아시아의 보석

에페소에서 한 시간쯤 차를 달렸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에게해였다. 요한계시록의 두 번째 교회가 있던 도시, 스미르나(Smyrna). 지금은 이즈미르(Izmir)라 불리는 곳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항구를 마주하니 왜 '아시아의 보석'이라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도시는 4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파고스 언덕, 지금의 카디페칼레(Kadife Kale) 지역에 새로운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스미르나는 본격적으로 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최적의 항만 조건과 온화한 기후, 그리고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자연스럽게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꿈에서 도시를 세우라는 명령을 받아 세워진 도시, 스미르나

로마 제국이 이 땅을 정복한 후 고대 스미르나는 더욱 화려해졌다. 에게해 일대 해상무역의 주요 도시가 되면서 황금거리 양편으로 웅장한 신전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로마 귀족들의 고급 휴양지로 변모해 갔다.

그런데 바로 그 번영이 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로마 귀족들은 엄청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스미르나는 로마 황제 숭배에 가장 열광적인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한글 표기로는 ‘서머나’인 이 이름이 '몰약’이란 뜻인 걸 알게 됐을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몰약은 짓이겨지고 빻아질 때 비로소 진한 향기를 토해낸다. 요한계시록에서 '고난'과 '인내'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 이름부터가 그랬다. 이 도시는 정말 이름 그대로의 운명을 살아냈다.

번영하는 이곳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며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극이 벌어졌다. 그들은 로마로부터 유대교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황제에 대한 반역자'라고 고발하고, 성찬식을 '사람 고기를 먹는 끔찍한 행위'라고 왜곡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을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방화 계획'이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스미르나의 초기 교회는 그렇게 사방에서 밀려오는 핍박의 파도와 맞서야 했다.

하지만 몰약이 그러하듯, 가장 깊은 고통 속에서 가장 진한 향기가 피어났다. 스미르나 교회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향기로 가득했다.


물소리에 담긴 삶의 이야기

스미르나 고대도시(Smyrna Ancient City)아고라(Smyrna Agora)는 상가 건물과 시장 사이에 있었다. 구글맵의 안내로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입구가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 바퀴 돌았다. 주차장 건물이 보여 우선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찾아보기로 했다.

지진이 잦은 터키는 온 땅이 유적지이고,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 도시가 형성되어 버린 곳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유적지 입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곳, 일상의 건물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마침내 아고라에 들어섰다. 로마 시대 웅장한 회랑과 대리석 기둥들 아래로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신비로운 물길이었다. 그때 이곳을 오가던 사람들도 이 물소리를 들었겠지. 부유한 상인도, 평범한 시민도, 갓 태동한 기독교 공동체 신자들도.

로마 사람들은 도시가 형성되면 항상 물길을 먼저 만들었다.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시민들의 여가생활을 위한 핵심 인프라였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니, 상인들의 흥정 소리와 함께 물 흐르는 소리는 고대 아고라를 가득 채우던 일상의 배경음악이었겠다.

이 풍요롭고 번화한 상업도시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땠을까.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던 그들은 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당했다. 아고라의 화려한 상점들과 부유한 상인들을 바라보며, 신앙 때문에 가난을 감수해야 했던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물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아고라의 물길처럼, 그들의 인내도 끝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소박함 속에 담긴 위대함

성 폴리캅 교회(St. Polycarp Church)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교회는 평범한 골목길 안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다행히 터키 전역에서 구글맵이 잘 작동했기에 핸드폰에 의지해 찾아갔다.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처음에는 작은 간판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화려한 간판도 없고,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외관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깊은 감명을 받았다.

순교자 폴리캅이 보여준 담대하면서도 겸손한 신앙의 모습이 이 교회의 소박한 외관에도 그대로 풍겨 나는 듯했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 서머나의 주교로 있던 그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86세의 나이에 화형장 앞에 섰다. 한 번만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회유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86년 동안 한 번도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구십을 바라보는 노인의 목소리가 크면 얼마나 컸을까. 나지막했을 거다. 하지만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함.

마지막이 더 영광스러운 삶이었음에 틀림없다.


미로 속 일상의 아름다움

케메랄트 시장(Kemeraltı Market)에서 이즈미르 시민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에 신선한 채소와 빵, 견과류 가판이 즐비했다. 골목마다 전통 디저트와 터키 식료품이 손짓을 했다.

모스크가 나타났다가 공예상점이 나타나고 찻집을 만나기도 한다. 반복되는 미로 같은 세계.

인생도 이렇지 않나 싶다. 탄탄대로처럼 쭉 뚫려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발걸음은 계속 내디뎌야 한다.

상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향긋한 향신료를 파는 할아버지, 화려한 터키 카펫을 진열해 놓은 중년 아저씨, 전통 수공예품을 다루는 여성 상인까지, 모두가 자신만의 작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모습이 고귀하기까지 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를 열고, 손님이 많든 적든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저녁이 되면 상점의 문을 닫으며 하루의 문도 닫는다.

그 일상의 반복. 순간, 지금의 나에게 스미르나가 전하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순교'는 21세기 미국에서 신앙생활하는 내게 너무 동떨어진 단어지만, '인내'와 '성실'은 내 삶의 자잘한 부분에까지 필요했기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대단한 업적이나 눈부신 성취가 아니라도 괜찮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시장 사람들 모습에서 진정 아름다움을 발견한 하루였다.


파도가 말을 걸어올 때

코르돈(Kordon) 바닷가에 섰다. 에게해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한 바다는 마치 오래된 일기장처럼 붉은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파도가 넘실넘실 규칙적으로 일어났다. 누군가 그 바다를 손에 들고 흔드는 듯, 파도가 해안선 바로 앞까지 밀려왔다. 육지로 넘어올 것처럼 넘실댔다. 그 파도가 사라지면 어느새 다시 새로운 파도가 밀려왔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 땅에 밀려왔다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즈미르는 결코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저 파도의 끝없는 움직임처럼.

파도는 밀려와도 다시 물러간다. 하지만 바다 자체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다. 이 도시도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지켜왔으리라.

해질 무렵, 해변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손을 꼭 잡고 걷는 젊은 연인들, 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온 가족, 혼자서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긴 사람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에게서 평온함이라는 동일한 위안을 얻어간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의 만찬

데니즈 레스토랑(Deniz Restaurant)은 이즈미르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시계를 맞춘 듯 정확한 타이밍에 직원이 바다 쪽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에게해 너머로 천천히 지는 태양.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갓 잡아 올린 신선한 도미와 생선 수프, 터키식 샐러드를 앞에 두고,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마음마저 평화롭게 했다.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까지 들려와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옆 테이블에서 건배 소리가 들렸다. 터키 현지인들이 라키(Raki)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아니스 향이 나는 이 술은 처음엔 맑고 투명하다. 그런데 물을 부으면 신기하게도 우윳빛으로 변한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혼자 있을 땐 투명하다. 깨끗하고,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만나 섞일 때, 예상하지 못한 색이 나타나고, 생각지도 않은 감정이 일렁인다. 때로는 탁해 보이기도 한다.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진짜 삶 아닐까. 섞이고 부딪히면서 더 풍성해지는 것. 투명함을 잃는 대신, 깊이를 얻는 것.

식사를 마치자 직원이 다가왔다.

터키 전통차를 주겠다는데, 고맙지만 사양했다. 이미 계획해 둔 디저트 카페가 있었다. 배에 여유를 남겨둬야 했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좋은 것들 사이에서 더 좋은 것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이라는 게 현실 인생과 다를 뿐이다.


기쁨 카페에서의 달콤한 우연

세빈치 파스타네시(Sevinç Pastanesi)는 이름부터 '기쁨의 베이커리'인 디저트 전문점이다. 디저트는 밥보다 내게 기쁨을 주니,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카페로 들어서니 사장님이 직접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터키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진열장에 있는 다양한 디저트들을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빵집 앞에서 느꼈던 설렘이 되살아났다. 층층이 쌓인 바클라바, 피스타치오가 듬뿍 올려진 케이크,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디저트들.

사장님의 추천으로 현대식 디저트 하나와 터키 전통 디저트 하나를 주문했다. 뉴질랜드 머랭 케이크인 파블로바(pavlova)는 크러스트 가운데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크림과 과일이 가득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동양과 서양이, 과거와 현재가 한 입에 녹아들었다. 마치 이 도시처럼 말이다. 과일의 상큼함과 이국적 풍미가 혀끝을 맴돌았고 사장님의 현대적 센스도 느껴졌다.


다음은 터키 전통 디저트 카잔디비(Kazandibi)를 맛봤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우유 푸딩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닭고기가 들어갔단다. 닭가슴살과 우유로 만든 푸딩을 타부크 괴슈(Tavuk Göğsü)라 하고, 그 푸딩을 팬에 올려 한쪽 면이 진한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 구워내면 카잔디비가 된다고 했다.

파블로바(좌)와 카잔디비(우)

'세상에 닭고기로 디저트를 만든다고?'

정말 세상은 넓고 먹을 건 많았다!

그날 밤은 새로운 디저트와의 만남뿐 아니라 더 특별한 만남도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무라트’라는 화가를 소개해줬다.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온 한국인 여행자라고 소개하자 기꺼이 자기 테이블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분만의 독특한 화풍과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캘리그래피의 아름다움, 그리고 지금 터키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까지. 대화는 밤이 깊도록 꽃을 피웠다.

헤어지기 전, 뭐라도 선물해 주고 싶었는지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우리 이름으로 캘리그래피를 그려주었다. 그 순수한 마음에 감동했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안부를 나누었다.

우연히 만난 현지 사람들은 우리의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마음속의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며.


일상 속에 숨은 면류관

서머나의 이름이 '몰약'을 뜻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 도시의 의미가 더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몰약은 상처를 치유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귀한 향료다. 이즈미르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에서도 그런 치유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골목에서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 그리고 카페에서 풍겨 나는 커피의 아로마가 이즈미르만의 독특한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마치 오래된 상처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것처럼, 이 도시 전체가 희망의 향기로 가득했다.

에게해의 석양이 코르돈 해안가에서 특별히 아름다웠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황금빛 노을처럼, 인생의 시련과 고난은 마지막에 더 큰 영광으로, 더 큰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 때문이었다.
이 도시가 가르쳐준 생명력은 어려움을 피하는 게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서머나 교회에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새롭게 다가왔다.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낸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자체가 희망이다.
그랬다. 생명의 면류관은 저 멀리 추상적인 미래의 영광이 아니었다. 바로 이 순간 일상의 작은 기쁨과 희망 속에서 이미 빛나고 있었다.


실용 여행 정보

이즈미르는 이스탄불, 앙카라와 더불어 터키의 3대 도시이다. 이즈미르 사람들은 친절하고 영어 구사자도 많아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다. 터키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의 도시라서 여행자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다.

이즈미르 카르트를 구입하면 메트로, 페리,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숙소는 알산작 지역이나 코르돈 근처를 추천한다. 특히 바다 전망이 있는 방이 좋다.

스미르나 아고라는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연다. 이른 시간에 가면 좋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도 저렴한 편이다. 지금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기대된다.

성 폴리캅 교회는 오후 3-5시 사이에 관람이 가능하다고 알고 갔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터키 전역에서 유적지 개발과 복구가 계속되고 있어 항상 방문 전에 최신 소식을 알아보는 게 좋다.

케메랄트 시장은 미로 같은 구조로 복잡하다. 구글맵을 준비하되, 길을 잃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가 가장 활기차고, 더위를 피하려면 아침 일찍 가는 게 좋다. 시장 곳곳에 있는 작은 모스크들도 둘러볼 만하다.

코르돈 해안 산책로는 저녁 7시경이 가장 아름답다. 주말보다는 평일 저녁이 한산하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있는 레스토랑들은 예약을 추천한다. 창가 자리를 요청하면 노을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 내가 갔던 세빈치 파스타네시는 밤 12시까지 영업해서 저녁 식사 후 디저트를 즐기기에 좋다.

이즈미르 역사 엘리베이터도 가볼 만하다. 정상의 카페에서 보는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

쉬린제 마을은 이즈미르에서 8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반나절 정도 소요된다. 와인 시음 예정이라면 투어나 대중교통 이용을 추천한다. 에페소까지는 차로 1시간 20분 거리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가난의 골짜기에서 건진 부요


이즈미르를 떠나는 아침, 호텔 창문을 열었다. 에게해의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요한계시록의 한 구절이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너의 고난과 가난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너는 부요한 사람이다."

왜 하필 오늘 아침, 이 문장이 떠올랐을까.


눈먼 시인과 가난한 교회가 본 세계

이즈미르에 대해 공부하다가 이 도시가 호메로스의 고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육체의 빛을 잃은 사람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인류 최고의 서사시를 썼다. 그는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눈으로 볼 수 없었기에 오히려 영혼으로 봤던 것일까.


부유한 도시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도시에 연관된 두 이야기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눈먼 시인과 가난한 교회. 하나는 어둠 속에서 불멸의 시를 창조했고, 다른 하나는 핍박 속에서 "사실은 부요하다"는 위로를 받았다.


겉으로 보면 둘 다 결핍의 이야기였다. 하나는 볼 눈이 없고, 하나는 가진 돈이 없다. 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함을 품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육신의 눈을 잃고 영혼의 눈을 얻었듯이, 서머나 교회도 세상의 부를 잃고 천국의 부를 얻었다.

결핍은 그들에게 이 세상 프레임처럼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내가 세던 것들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예기치 않은 바람이 불어와 모든 것을 앗아간 결핍의 시간. 가진 게 없고, 세상의 시선에서 초라하던 그 시절.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는 계속 셈을 했다. 내게 없는 것들을 세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렸다. 남들이 가진 것을 나는 왜 갖지 못하는지 질문했다. 그 셈은 언제나 마이너스였고, 그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그런데 이즈미르를 걷다 보니 알게 됐다. 내가 잘못 세고 있었다는 걸.


케메랄트 시장에서 대단치 않은 가게를 매일 성실히 지키는 상인들을 봤다. 폴리캅 교회에서 소박한 외관에 겸손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봤다. 디저트 카페에서 낯선 이에게도 마음과 시간을 나누는 친절함을 만났다.

이런 것들은 바쁠 때는 보이지 않는다. 풍족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족할 때, 힘들 때, 초라할 때만 보인다. 한 마디 위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삶을 풍성하게 하는지 그제야 보인다.

겉은 가난해도, 속은 부요할 수 있었다. 나는 제대로 세기 시작했다.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던 내 삶을 말이다.


마이너스에서 찾아낸 플러스

호메로스는 트로이의 멸망을 노래했다. 오디세우스의 긴 방랑을 그렸다. 읽으면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폐허와 유랑, 상실과 고통의 연속이다.

우리 인생도 그럴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돌아갈 곳을 잃은 듯한 외로움, 무너진 꿈의 잔해들. 내 삶이 오디세우스의 유랑처럼 느껴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도리어 그 언저리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피어났다. 이상하다. 고난이 나를 무너뜨린 줄 알았는데, 사실은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상실이 나를 텅 비게 만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몰약은 빻아질 때 향기를 낸다. 그전에는 그냥 나무 수액일 뿐이다. 우리 삶도 짓이겨질 때 비로소 향기로워진다. 그건 성공의 향기가 아니다. 인내의 향기였다. 화려함의 향기가 아니다. 진실의 향기였다.

스미르나 아고라의 물길이 지금도 흐르고 있듯이, 생명의 물은 우리 안에서 흐른다. 고난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른다. 마치 '그래도 살아있다'고 증언이라도 하듯이.


86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분은 86년 동안 한 번도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폴리캅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86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무게일까.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셀 수 없는 날들이 담겨져 있는 시간.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고백. 그건 평탄한 삶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시험의 때가 올 텐데, 두려워할 거 없단다.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살아내면 돼. 생명의 면류관이 너를 위해 준비돼 있으니까."

무언가 ‘하지 말라’는 말은 현재 하고 있던지 아니면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이 그리도 많은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자주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일 거다. 내 삶의 고비마다, 실패와 아픔의 순간마다, "두려워할 거 없다"는 그 말에 힘을 낸다.


생명의 면류관. 처음엔 그게 천국에서 받는 황금 왕관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그건 현재의 삶 속에서 고난을 견디며 어느새 튼튼해진 내 마음 위에 이미 씌워지고 있다는 걸.

매일 아침 일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용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믿음.

이 모든 것이 이미 면류관이다.


마지막이 아름다운 스토리를 꿈꾸며

다음 도시로 떠나며 도착할 때 보았던 이즈미르의 풍경을 차 안에서 다시 지나쳤다. 에게해의 푸른빛이, 코르돈의 해변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지만, 마음속에선 사진처럼 선명해진다. 끝없이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파도처럼 좋은 날은 왔다가 가고, 힘든 날도 왔다가 간다. 파도가 멈추지 않듯이, 삶도 멈추지 않는다. 우린 지금도 각자의 고난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삶의 마지막에, "내 삶은 참 부요했다" 고백할 수 있기를, 그리고 "네가 부요한 삶을 살고 왔구나" 칭찬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