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를 만든 도시에서 건진 참보물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약 89킬로미터, 한 시간 반 남짓 차를 달려 사르트(Sart)에 도착했다. 고대에는 사르디스(Sardis)라 불렸고, 성경의 사데 교회가 있던 곳이다.
이곳의 첫인상은 배산임수에 딱 들어맞는 '완벽한 명당'이었다. 뒤로는 트몰로스 산, 지금의 보즈(Boz) 산이 거칠게 솟아 있었다. 앞으로는 팍톨로스 강, 지금의 게디즈(Gediz)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쉽게 넘볼 수 없는 이곳은, 무역과 문명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땅이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세계 최초로 금화를 만들어 '황금의 도시'라 불렸던 곳. 그 찬란했던 번영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다.
사르디스는 기원전 1200년경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 후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로 삼으면서 더욱 번성했다.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수사에서 앗시리아의 옛 수도 니네베를 지나, 무려 2,703킬로미터에 이르는 '왕의 대로(Royal Road)'가 바로 이 사르디스까지 이어졌다.
이 길을 통해 이루어진 무역과 문화 교류는 상상 이상이었다. 실크로드의 서쪽 관문 역할을 하던 사르디스에는 각지의 상인들이 부와 꿈을 좇아 모여들었다. 특히 기원전 560년 무렵, 크로이소스 왕이 팍톨로스 강에서 엄청난 양의 사금을 채취해 당대 최고의 부를 쌓았던 것도 이런 지리적 이점 덕분이었다.
그러나 풍요로움은 언제나 양날의 검과 같다. 물질적 풍요는 영적 결핍으로 이어지곤 했다. 사르디스의 눈부신 황금빛 번영은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던 걸까.
사르디스 고대도시(Sardis Ancient City)에 도착했다. 소박한 입구에는 입장료도 없었다. 야외학습을 나온듯한 초등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났다. 한 아이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란다. 처음엔 그냥 시골 아이들이 사진 찍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사진을 찍어주자 바로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자기 걸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선생님을 내버려 두고 아이들이 하나둘 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골이라고 섣불리 무시했구나’ 싶었다. 터키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50대 아줌마인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평생 블랙핑크 급 이런 환대는 처음이었다!
아이들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K팝과 K드라마가 불러왔을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어느새 한 학급 아이들이 죄다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설명하던 선생님이 불러도 갈 생각을 안 하기에,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귀중한 수업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 번영의 흔적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로마 시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유대교 회당(Sardes Synagogue)이 나타났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사르디스에는 오랜 유대 공동체가 있었다. 이 회당의 규모만 보더라도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더 큰 건물이 보였다. 목욕 시설을 완비한 김나지움(Roman baths Gymnasium)의 압도적인 규모에는 벌어진 턱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몸과 함께 마음의 단련도 중시했던 그리스 로마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부유했던 도시답게 공공시설의 규모 또한 놀라웠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1914년 프린스턴 대학 발굴팀이 처음 이곳을 조사할 때, 이 체육관을 사데 교회로 잘못 식별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굴하다 보니, 사데 교회를 다른 곳에서 찾아냈고, 이곳은 다른 용도였음을 알게 됐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나, 결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단정 짓는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양,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가 진실인 양 속단해 버린다.
하지만 진짜는 늘 더 깊은 곳에 있다.
100년 전 발굴팀이 이곳을 교회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매일 착각하며 산다. 저 사람이 이럴 거라고, 이 상황은 이렇게 끝날 거라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아, 내가 본 건 표면뿐이었구나.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은 훨씬 복잡하고 깊었구나.
성급함은 독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한 걸음씩 다가가면 된다. 백 년이 걸려서라도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지면 되는 거다.
유적지를 떠나며 생각했다. 사람도, 관계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쉽게 재단하지 말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부유했던 도시라 그런지, 사르디스는 유적의 규모가 모두 대단했다. 이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도 폐허가 된 지금 이 정도인데,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했을지 상상해 본다. 주변의 산세는 그 수려함이 국립공원 급이었다. 단풍구경도 하고, 여신님께 부와 안녕도 빌 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다.
거대한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하지만 온전한 기둥은 단 두 개뿐이었다.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간절히 빌었을 텐데, 그 간절함을 받아주던 신전마저 이렇게 폐허가 되어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원래 키벨레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키벨레는 소아시아 사람들이 대대로 섬기던 풍요의 여신이다.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사르디스는 페르시아에게 중요한 도시여서 아테네 군대가 도시를 불태우고 신전도 파괴했다. 그 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으로 그 자리에 키벨레와 유사한 성격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다시 세웠다.
키벨레에서 아르테미스로, 그리고 훗날 기독교로. 제국이 사라지고 문명이 바뀔 때마다 그토록 의지했던 신들도 함께 교체되었다.
변하지 않고 영원히 의지할 수 있는 건 과연 어디에 있을까. 불안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르테미스 신전 곁에, 마치 문간방을 세 들어 사는 모양으로 사데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위치와 규모가 많은 걸 말해주는 듯했다. 거대한 이교 신전의 화려한 그늘 아래 작고 초라하게 존재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요한계시록에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준엄한 책망을 받았던 교회. 왜 이런 책망을 받았을까? 거대한 신전의 웅장함에 압도돼 주눅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풍요로운 도시의 물질적인 분위기에 어느새 익숙해져서, 사람과 돈이 많이 모이는 곳이 '알짜배기 좋은 자리'라고 착각했던 걸까? 도시 자체는 끝없이 번영했지만, 교회는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기억하셨다.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있고,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거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몇 명. 많지도 않은, 어쩌면 손에 꼽을 만큼의 사람들. 하나님은 그들을 세고 계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데(Sardis)'라는 이름이 '새로 태어난(new born)', '회복된(renewed)', '남은 자(remnant)'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는 놀랐다. 이 도시의 운명이 이미 그 이름 속에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죽음 같은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 태어날 가능성이, 회복될 희망이, 남겨질 사람이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들풀들이 교회 터를 가득 덮고 있었다. 무심히 자라는 풀들이 오히려 생명력 있어 보였다. 그 풀 사이로 개미들이 쉼 없이 땅 위와 아래를 오가고 있었다. 진짜 생명이 무엇인지, 진짜 '남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 '몇 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세상이 다 그렇다고 말할 때, 모두가 타협하며 살아갈 때, 혼자라도 옷을 더럽히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있는 공동체 안에도, 깨어 있는 소수의 '남은 자'는 있기 마련이다. 사데 교회처럼 겉만 번지르르했던 곳에서도, '속이 꽉 찬' '알곡 같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내가 속한 사회나 공동체의 부조리를 탓하기만 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나는 얼마나 그 앞에 신실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지 묻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의 도시 사르디스에서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금고에 쌓아둘 수 있는 금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둘 '삶의 황금률'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신실함, 그건 썩지도 가치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르디스는 터키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작은 마을 살리힐리(Salihli) 근처에 위치해 있다. 이즈미르에서 버스나 렌터카로 이동하면 대략 1시간 30분쯤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이즈미르 오토가르에서 살리힐리행 버스로 도착한 뒤, 택시를 이용해 유적지에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아르테미스 신전, 사데 교회 터, 체육관 유적까지 모두 둘러보는 데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늘이 거의 없어서 모자와 물은 꼭 챙기자. 그리고 주변에 식당이나 카페 찾기도 쉽지 않아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가면 좋다.
사진 촬영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유적 보호를 위해 기둥이나 돌 위에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꼭 기억하자.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 속 마이다스 왕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없이 부러웠다.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한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왕이 사랑하는 딸을 안았을 때 딸이 차갑고 단단한 황금 조각상으로 변해버렸다. 그 절망을 이해하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크로이소스만큼 부자(Rich as Croesus)"라는 표현을 듣게 됐을 때, 나는 또 다른 고대의 왕을 만났다. 리디아(Lydia) 왕국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 그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왕이다. 이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부의 상징으로 불린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부자 크로이소스", "크로이소스의 부"라는 말은 그의 부가 얼마나 전설적이었는지 증명해 주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 속에서 나는 크로이소스를 다시 만났다.
아테네의 현자 솔론과의 대화였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궁전에 솔론을 초대하면서 분명 기대했을 것이다. 이 현명하다는 아테네 사람이 자신의 보물창고와 금은보석들을 보고 감탄하며 "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라고 치켜세워 주기를 말이다.
크로이소스는 자신감에 차 솔론에게 물었다.
"솔론이여, 그대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나 솔론의 대답은 왕의 기대를 빗나갔다. 그는 담담하게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 텔로스를 꼽았다. 훌륭한 자녀를 두었고, 조국을 위해 싸우다 명예롭게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왕은 재차 물었다. 솔론은 이번에는 아르고스의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위해 소 대신 수레를 끌고 신전까지 가서 효도하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한 젊은이들이었다.
완전히 실망한 크로이소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왕이시여, 인간의 삶이 70년이라 해도, 그 안에는 무수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권세를 누려도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말로 행복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단정하지 말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얼마나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말인가. 행복을 지금 가진 것이나 잠깐의 성공으로 판단하지 말고, 인생 전체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라는 뜻이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중간까지만 읽고 전체를 평가하는 누를 범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때 크로이소스는 솔론의 말을 비웃었지만, 훗날 그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화형대에 오르게 된다. 그제야 그는 솔론의 말을 떠올리며 "아, 솔론! 솔론! 솔론!"하고 절규했다. 진실은 고통 속에서 비로소 또렷해졌다.
요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소셜 미디어를 보면 명품 백과 미슐랭 레스토랑, 환상적인 해외여행 사진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마치 그런 것들이 행복과 성공의 유일한 증거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화려한 사진 뒤에 숨겨진 진짜 삶의 이야기는 모른 채, 그저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진정한 '부요함'은 무엇일까.
밤마다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박한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통장 잔고나 소유물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내면이 평온하다면 진정 부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축복(Blessing)'이라 부르는 그 완전한 평화(Shalom).
마이다스의 황금 손도, 크로이소스의 보물창고도 그들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마이다스는 딸을 잃었고, 크로이소스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솔론이 행복하다 말했던 텔로스와 클레오비스, 비톤은 비록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생을 마감했다.
언젠가 동네 작은 카페에 갔을 때였다. 옆 테이블의 노부부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들의 주름진 손이 테이블 위에서 맞닿아 있었다. 그 따스하고 편안한 장면을 떠올리면 '부요'가 뭔지 알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는 마법 같은 능력보다, 그저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부요함'이고 '행복'이었다.
마이다스가 신에게 바래야 했던 건 황금 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주 잡을 수 있는 '평범한 손'이었고, 크로이소스가 솔론에게 들었어야 했던 건 찬사가 아니라 삶의 깊은 '진실'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마이다스가 되거나 크로이소스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솔론의 지혜는 우리를 깨우쳐 준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서, 가짐이 아니라 '나눔'에서, 쌓음이 아니라 '비움'에서 온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는 삶이 진정 부요하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살아있는 자는 행복하다 하지 말고, 다만 운이 좋다고 하라."
우리네 인생은 수많은 인과와 우연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면서 한 폭의 카펫으로 완성돼 가는 듯하다. 그렇기에 고대 현자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겸손하라고 따스하게 충고한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되,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잊지 말라고.
그러면 황금의 저주에서 벗어나 진짜 보물을 찾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