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자줏빛 시간과의 만남

내 삶의 색깔을 찾아서

by Shin란트로

하얀 성이 품은 자줏빛 비밀

아크히사르(Akhisar). 터키어로 '하얀 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비잔틴 시대, 하얀 탑으로 장식된 성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두아디라 혹은 티아티라(Thyatira)라 불렀다.


순수한 하얀색의 이름과는 달리, 이 도시는 왕족만이 입을 수 있는 고귀한 자줏빛을 만들어 냈다.

고대에 보라색 염료는 대개 바닷가 조개에서 얻었다. 하지만 내륙 깊숙이 자리한 두아디라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꼭두서니(Madder)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자줏빛을 추출했다.

그 당시 자주색은 일상적인 색이 아니었다. 한 필의 천을 염색하기 위해서 수백 개의 뿌리가 필요했고, 그 염색 과정은 대를 이어 전수되었다. 두아디라의 장인들은 이 기술 하나로 소아시아를 넘어 지중해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하얀 성에서 태어난 자줏빛. 그 대비가 참 인상적이다. 순수함과 고귀함, 소박함과 화려함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했다.


작은 언덕 아래 숨겨진 큰 이야기

불과 백 평 남짓한 도시 한복판의 작은 언덕, 테페메자리(Thyateira Hill Tombs).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두아디라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 둘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바실리카(basilica)열주 회랑(Colonnaded Portico)이다. 바실리카는 기독교 예배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이 작은 도시에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루디아처럼 신앙을 지녔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세운 교회가 이어져온 게 아닐까 싶다.

바실리카(basilica) 교회터
바실리카(basilica) 교회터

열주 회랑과 부서진 석조 기둥 사이를 조심스레 걸었다. 길드 인장이 찍힌 토기 조각, 염색에 쓰였던 항아리 조각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 도시일 뿐이지만, 그 시절에는 다양한 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활발한 상업 도시였다.

열주 회랑(Colonnaded Portico)
염색에 쓰였던 항아리와 토기 조각들

아직도 대부분의 유적은 도시 아래에 잠들어 있다. 지금 드러난 모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한 삽 한 삽 파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대를 남겨두고 떠났다. 땅속 깊은 곳에서 두아디라의 오래된 비밀들이 빛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리며.


루디아가 건넌 강은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나 유럽 최초의 크리스천이 됐다는 여인.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 루디아. 그녀가 바로 두아디라 사람이었다. 두아디라가 루디아 지역에 속해 있어서 ‘충청댁’처럼 ‘루디아댁’이라고 불렸던 거다.
어린 루디아는 자주색 염료의 신비로운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을 거다. 꼭두서니 뿌리가 우려내는 붉은 물빛을 처음 본 순간의 감탄, 그 액체가 천에 스며들어 고귀한 자줏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봤겠지.

루디아 기념교회(그리스 필리피)의 루디아 이콘

하지만 루디아가 자주장사로 성장하며 마주한 건 염료의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이 도시의 길드들은 각각의 수호신을 모시고 있었다. 자주 염색업자들 역시 특정 신을 섬기며 사업의 번영을 빌어야 했다. 길드에 속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던 시대였다. 여자의 몸으로 멀리 해외까지 가서 무역상으로 성공한 걸 보면, 그녀는 진취적이고 대범한 성격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그런 루디아라도 사업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과 방황이 없진 않았을 거다.


빌립보에서 바울의 말을 듣고 그녀의 마음이 열렸던 건, 순간적인 결단이 아니었다. 고향의 그 복잡한 신들과 길드의 이해관계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자주색을 만들기 위해 뿌리를 우려내듯, 그녀의 삶도 새로운 믿음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색깔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의 길드와 신전이 만들어낸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은 첫 번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세벨이 속삭이는 타협의 목소리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는 칭찬과 책망이 뒤섞여 있었다.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를 안다"며 교회의 선한 행위를 칭찬하지만, 동시에 "이세벨이라 하는 여자를 용납한다"며 꾸짖는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였던 성경 속 인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교회 안에서 이방 종교와의 타협을 부추기던 여선지자 같은 인물을 지칭하는 듯하다.


두아디라는 여러 길드가 모여 있던 상업 도시였다. 은세공, 피혁, 염색, 양모, 아마포 제조 등 다양한 동업조합이 도시 경제를 이끌었다. 이런 길드 모임에 참여하려면 각 길드가 섬기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전에서 나오는 음식을 함께 먹어야 했다. 단순히 개인이 우상에게 제사드리고 음행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관습이 공동체 전체에 퍼져 있었다.


두아디라의 그리스도인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믿음을 지키려면 경제적으로 고립돼야 했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우상숭배에 타협해야 했다. '이세벨'은 바로 이런 타협을 정당화하는 목소리였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하나님도 우리 사정을 잘 아시니까 이해하실 거예요.”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냐 생계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중세의 그림자, 계급이 만든 또 다른 성벽

두아디라는 교회사에서 중세 암흑기를 상징한다고 배웠다. 중세는 로마 교회가 그리스도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계급과 제사 형식에 집착해 이방 종교로 변해가던 시대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치다. 당시 두아디라 사람들이 길드의 계급과 우상의 제사에 얽매였던 것처럼, 중세 교회도 성직자의 계급과 형식적인 제사에 점점 사로잡혀 갔다.


사제에서 주교, 그 위로 추기경과 교황까지 이어지는 계급 구조는 두아디라의 길드 못지않게 배타적이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복잡한 중재자들이 끼어들고, 구원조차 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구원이 면죄부라는 이름으로 매매되고, 성인 숭배라는 미명 아래 우상숭배가 교묘하게 자리 잡았다. 두아디라의 '이세벨'이 중세 교회에서 더 교묘한 모습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처음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에게 주어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으로 회복되었다. 루터와 칼빈,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세의 '이세벨'을 거부하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돌아갔을 때, 진정한 권세가 회복되었다.


처음에는 이 약속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길드 하나도 제대로 가입 못한 사람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라니.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약속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두아디라를 걸으며 깨달았다. 이 약속은 단순히 먼 미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지금 유효한 약속이기도 했다.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롭다.

세상의 눈치로부터, 권력의 협박으로부터, 돈의 유혹으로부터. 그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다. 그 자유로움 자체가 진짜 권세였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라는 말을 듣고, 나는 처음엔 오해했다.

수많은 사람을 휘어잡는 힘, 큰 땅을 지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 권세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거였다.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

유혹이 손짓해도 고개를 돌리는 힘.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진실을 붙잡는 용기. 모두가 꺾일 때도 꼿꼿이 서 있는 뚝심. 그게 진정한 권세였다. 그런 사람 한 명이 결국 역사를 바꿔왔다.

폐허가 된 교회 터를 떠나며 생각했다.

2천 년 전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오늘 이 순간 내게도 들려온다. 시간을 뛰어넘어, 국경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진리의 목소리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타협하지 않고 살 용기가 있는가.


실용 여행 정보

아크히사르는 이즈미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80-11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즈미르 버스 터미널 오토가르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니사에서는 동북쪽으로 45km 떨어져 있어 마니사를 거쳐 가는 경로도 가능하다.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이즈미르에서 E96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일곱 교회 순례를 계획한다면 사르트(사데)와 알라셰히르(빌라델비아)를 함께 방문하는 하루 코스도 가능하다. 도시는 작아서 반나절이면 주요 유적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순례 코스는 버가모에서 출발해 사데로 이어지는 루트도 좋다.
사데나 필라델비아 교회 유적지가 무료인 것과 대조적으로, 두아디라 유적지는 규모가 작음에도 입장료가 약 3유로 정도 있다.

아크히사르는 작은 도시라 숙박 시설이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즈미르나 마니사에서 숙소를 잡고 당일치기로 방문한다.

아크히사르는 터키 최대의 올리브 생산지로 유명하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을 이용한 터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행 기념품으로 올리브 오일이나 올리브 비누를 추천한다.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오십, 내 삶의 색깔을 찾아서


세상과 다른, 자줏빛 선택

두아디라에 도착했을 때, 솔직히 좀 실망했다. 에베소처럼 웅장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 가운데 조그만 담장 안에 돌기둥 몇 개와 토기 조각들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다야?' 싶었다.

이 도시는 자줏빛 염료로 유명했다. 루디아라는 여인이 바로 이곳 출신의 자주 장사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져 간다.

루디아가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나 세례를 받은 건, 단순히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방식 전체를 내려놓은 거였다. 길드의 안전망, 사업의 관행,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그 선택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바울 선생님, 말씀은 정말 감동이에요. 근데 제가 길드를 나와서 사업을 어떻게 해요? 식구들은 어떻게 먹여 살려요? 길드 규칙은 형식으로만 따르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믿으면 안 되나요?"


편안한 타협의 유혹

반백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을까.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좇는 걸까, 아니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믿는 바를 따르는 걸까. 쪼끔 타협하며 편안함을 택하는 걸까,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옳다고 믿는 길을 걷는 걸까.


"이건 그저 형식일 뿐이야."
"네 마음만 안 그러면 괜찮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어때."

'이세벨'의 목소리는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신앙에서도, 심지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들려온다.


보잘것없는 뿌리가 고귀한 왕의 색깔이 되기까지

호텔로 돌아와서 꼭두서니 염료를 검색해 봤다. 자줏빛 한 올을 얻으려면 엄청난 양의 꼭두서니 뿌리가 필요했다. 그것도 땅속 깊이 3년 이상 묵은 뿌리여야 한다. 뿌리를 캐서 씻고, 말리고, 끓이고, 걸러내는 과정이 몇 달씩 걸리기도 했다.

빠르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고 한다. 화학 염료를 섞거나, 다른 식물을 섞거나, 과정을 단축하거나. 근데 그렇게 만든 색은 금방 바랬고 빛깔도 고르지 않아 값어치가 떨어졌다.

진짜 자줏빛은 오래 걸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 뿌리가 깊이 내려야 했고, 복잡하고 반복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색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왕들이 탐낼 만큼 고귀했다.


인생도 그렇다. 빨리 성공하는 방법, 쉽게 인정받는 방법, 편하게 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조금씩 타협하고, 물 타고, 불순물을 섞으면 된다. 당장은 화려해 보이고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바래고 가치를 잃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쌓아온 것들,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신념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선택한 인내의 시간들. 그건 삶의 진짜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지금의 두아디라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그 화려했던 자줏빛 도시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곳 출신의 한 여인, 모두 다 따라가는 대세라고 타협하지 않았던 루디아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된다.


오십 대는 참 매력 있는 나이 같다. 젊은 날의 열정은 한숨 가라앉았지만, 인생의 지혜는 조금씩 쌓여간다. 타협하고 싶은 유혹은 여전히 많지만 뿌리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건, 앞으로 내 삶에 소중한 가치가 무언지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두아디라에서 내게 물었다. 나는 어떤 색깔로 살고 싶은지.
빨리 만들어지는 싸구려 색깔인가, 아니면 오래 걸리지만 변하지 않는 진짜 자줏빛인가.
편안한 타협인가, 불편한 정직함인가.

나는, 왕의 색깔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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