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셰히르, 붉은 사랑의 도시

사랑하려면 빌라델비아처럼

by Shin란트로

낯선 골목에서 만난 친절

사르트에서 동남쪽으로 50km를 달렸다. 알라셰히르(Alaşehir)에 도착한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마주쳤다. 구글맵이 안내한 곳은 좁은 골목이었다. 유적지가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어? 순간 유적지임을 알았다. 미리 검색하면서 눈에 익은 돌기둥이 쓰윽 나타났다. 갓길에는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당황하며 한 바퀴 더 돌아보려는 순간, 기념품을 가득 실은 미니밴 한쪽에서 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투어버스 전용인 주차구역에서 주차 금지 콘을 치우면서 여기 주차하라고 손짓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아저씨는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이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가이드 역할은 물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셨다.

입장료도 없는 데다, 이런 정성에 아무것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행 짐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일곱 교회 사진으로 만든 냉장고 마그넷의 가격을 물어봤다. 돈은 지불하고 사진으로만 찍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더 활짝 웃었다.

그분의 따뜻한 친절과 순수한 미소가 지금도 생각난다.


형제를 사랑한 왕의 이름처럼

알라셰히르는 '붉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의 흙이 붉은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빌라델비아(Philadelphia)였다. 기원전 2세기쯤 페르가몬의 왕 앗탈로스 2세가 자신의 별명인 '필라델푸스'를 따서 이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왕인 형이 해외 원정을 나가면 대신해서 국정을 맡았다. 웬일인지 백성들이 그를 더 좋아해서 형 대신 왕이 되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형을 배신하지 않았다. 신실함을 끝까지 지키다가, 형이 죽은 후에야 왕이 되었다.

그 후로, 사랑이라는 의미의 '필로스'와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를 합쳐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 ‘필라델푸스'가 그의 별명이 됐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도시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었다. 오백 년이 흐른 뒤 비잔틴 시대가 되면서 바로 그 자리에 사도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Philadelphia St. Jean Church)로 다시 세워졌다.

이 지역 특산품은 청포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변 형제 교회들이 성찬식에 쓸 수 있도록 포도주를 만들어서 나눠줬다. 그리 크지도 넉넉지도 않은 공동체였지만, 형제 사랑을 말로만 하지 않았다. 자신의 형편과 상황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이름이란 건 참 신기하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존재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렇게 부르면 부를수록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처럼, 내가 상대방의 이름을 꽃이라 불러주면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주니 말이다.


작은 능력으로 기둥이 된 사람들

빌라델비아 교회의 기둥은 유난히 두껍고 컸다. 지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 때문이었을까.

기둥 바로 옆에는 현대식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밑에 나머지 두 개의 기둥을 포함해 교회 유적이 있는 게 확실하지만 건물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발굴하지 못한다고 했다. 현재의 삶과 고대의 유물이 이렇게 뒤엉켜 공존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조화롭게 느껴졌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되고 인내로 말씀을 잘 지켰다고 칭찬받은 교회.

우리는 늘 큰 능력을 갈망한다. 큰 능력을 가져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재능, 더 큰 영향력, 더 화려한 무대… 하지만 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봐도,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능력을 얼마나 성실하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주인이 하인 세 명에게 각각 돈을 맡겼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일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냥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이 돌아와서 칭찬한 건 얼마만큼 많이 남겼느냐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일등과 이등이 있어야 했다. 주인은 두 사람을 동일하게 칭찬했다. 주인이 기대했던 건, 맡겨진 것에 어떻게 반응했나, 얼마나 성실했나였다.

빌라델비아 교회 건너편은 모스크였다. 모스크의 하얀 첨탑이 보인다.


포도밭이 들려주는 이야기

붉은 땅 위로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봤다. 포도라는 존재가 새삼 신비롭게 다가왔다. 작은 포도알 하나하나가 모여 송이를 이룬다. 그 송이들이 모여 풍성한 수확을 만들어낸다. 연약하지만 한 마음으로 뭉쳤던 빌라델비아 공동체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포도의 일생을 보면 더 놀랍다. 햇볕에 익고, 손에 따여지고, 발에 밟히는 포도.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그 고통이 없으면 포도주도 얻을 수 없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발효돼야 비로소 깊은 맛의 와인이 된다. 오래될수록 더 깊어지고, 더 가치 있어진다.


인생도 포도 같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깊이 있게 만든다. 포도가 짓밟혀야 와인이 되듯, 우리 삶도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더 깊고 진한 인생으로 익어간다. 성숙이라는, 지혜라는, 평온함이라는 맛으로.

포도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큰 잎도 작은 잎도 예외 없이 모두 다 흔들렸다. 혼자 맞는 칼바람은 바람의 세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꺾이고 만다. 인생 가운데 얼마나 많은 바람들이 일어나 우리를 뿌리부터 흔들어대는지 모른다. 버거운 일들이 많다. 하지만 이 빌라델바아 공동체처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혼자서는 못할 일도 감당해 내고, 얼마든지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 여행 정보

알라셰히르는 사르트에서 동남쪽으로 50km, 이즈미르에서 동쪽으로 110km, 데니즐리에서 서북쪽으로 6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즈미르 등 주변 주요 도시에서는 현지 버스 터미널 오토가르를 이용하고, 시내에서는 미니버스(돌무쉬)나 택시,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숙소는 상대적으로 소도시라 선택지가 많지 않지만, Can Deluxe Hotel이나 Baris Hotel, Serhat Hotel 등 깨끗하고 평이 좋은 지역 호텔들을 찾을 수 있다.

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성 요한 기념교회는 성경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인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장소다.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은 술타니 포도의 세계적 산지로 유명하다. 현지 포도 농장 방문이나 전통 시장에서 포도나 건포도를 이용한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현지 케밥과 피데, 샐러드도 훌륭하니 로컬 레스토랑이나 바자르 내 저렴한 음식점을 이용해 보자.



여행자의 노트: 생각 한 스푼 더

인생은 열린 문처럼, 기둥처럼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나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왜 하필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열린 문'의 약속이 주어졌을까.


그들은 경제 공동체에서 쫓겨났다. 종교 공동체에서도 배척당했다. 모든 문이 닫히는 듯했다. 길드에서 제외되면 장사를 할 수 없었다. 회당 출입이 금지되면 신앙생활이 불가능했다. 사방의 문이 하나씩 닫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이 닫는 문이 많을수록 하나님이 여는 문이 선명히 보인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계획했던 문들이 하나씩 닫히던 그 시간, 비로소 보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문이 눈에 들어온다. 더 좋은 문이, 아니 진짜 문이.

사람이 여는 문은 사람이 닫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는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다. 그게 진짜 내가 두드려야 할 문이었다.


작은 것의 힘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요한계시록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그렇게 표현했다. 작은 능력. 처음에는 이게 칭찬인지 위로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알라셰히르를 걷다 보니 알게 됐다. 칭찬이자 위로이며, 동시에 변치 않는 진리였다.

뒤돌아보면 "작은" 나 자신과 자주 마주했다. '내 작은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어깨는 늘어지고 마음도 슬그머니 문빗장을 닫았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큰 능력이 아니었다. 작은 능력으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주차장 앞 아저씨를 생각해 본다. 그에게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었을까. 그냥 친절했을 뿐이다. 낯선 여행자를 도와주고, 설명해 주고, 사진 찍어주고, 웃어주었을 뿐이다. 작은 능력이다. 하지만 그 작은 능력이 나에게 큰 감동으로 남았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그랬다.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변 교회에 무료로 나눴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나눔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향기롭게 회자된다.


작다는 것.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할 수 있는 크기였다. 거짓 없이,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충실할 수 있는 크기였다.


기둥이 된다는 것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기둥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기둥은 보이는 곳에 있다. 숨길 수 없다. 누구나 본다. 하지만 기둥은 자기를 드러내려고 서 있지 않다. 건물을 떠받치려고 서 있다. 자신이 무너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기둥은 유독 두껍고 컸다. 지진이 많은 지역이라 그랬을 거다. 흔들림이 많을수록 기둥은 더 튼튼해야 하니까.

흔들림이 많은 시대, 불안한 세상일수록 누군가는 기둥처럼 서 있어야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게 작은 능력으로 충성한 사람들이 받은 약속이었다. 성전의 기둥, 하나님 나라의 기둥, 그 자리를 지키는 기둥.

나도 그런 기둥이 되고 싶다. 화려하게 눈에 띄는 기둥이 아니라, 누군가를 떠받치는 기둥.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기둥. 작지만 신실한 기둥 말이다.


열린 문을 품고 살아가기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문을 닫으라고 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마음의 문을 닫아야 한다고. 실망하지 않으려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달랐다. 모든 문이 닫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두었다. 형제들을 위해 포도주를 나눴다. 낯선 이들을 환대했다. 작은 능력으로도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했다. 그렇게 하나님이 열어놓은 문을 품고 살다 보니, 열린 문을 약속받았다. 하나님이 연 문은 아무도 닫을 수 없었다.

작은 능력으로도 충분하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기둥처럼, 짓밟히는 순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 포도처럼. 알라셰히르를 떠나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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