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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ya Jul 10. 2019

낯선 곳에서 정부 관료들과의 첫 만남

보츠와나 공무원들과의 첫 회의에서 일어난 일

점점 익숙해 져가는 공무원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


지난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다행히도 나의 상사는 우리 둘만의 암묵의 비밀로 지켜 주었다. 교육부 장관에게 사건이 보고가 되지 않았고 나의 직속 본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측에서도 사건이 잘 해결 된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해 주었다. 당장 한국으로 쫓겨 나지는 않게 되었지만 앞으로 내가 이곳에 남아 일을 하게 되는 데 더 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몰려 들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일한다는 것. 내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침 7시 30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동료들과의 화합을 이루며 업무를 해 나가는 능력이 중요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을 넘어 이곳에서 원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는 따로 있었다. 


무릎이 올라오는 치마를 입거나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날, 당시 상사였던 보츠와나 국가위원회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모두가 도시락을 싸와 점심을 나눠 먹는 시간에 직원들의 대화에 한창 끼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부장제 사회가 심한 보츠와나에서 우리 부서 내 여성직원 6명 중 3명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가부장제 전통을 보여주는 결혼 지참금 문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가 남성과 남편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다며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사소한 문화차이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어쩌면 이곳에서 요구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올바를 자세와 태도 중 하나였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정해둔 규칙과 규범이 있다면 묵묵히 따르기를 원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방인으로서 나의 서툰 모습과 실수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기대였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기관이 아니었고 한 국가 내 국민들을 대표하는 정부기관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를 위한 나의 노력이 필요했다. 철저히 이방인으로서 나는 이곳에서 그들의 일부로 인정받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속담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새로운 이곳에서 원하는 행동과 자세를 위하여 노력하기로 마음 먹었다.


낯선 곳에서 정부관료들과의 첫 만남


Ministry of Education in Botswana @Juyapics, 2017


보츠와나에 도착하고 교육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첫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을 함께 이끌어 나갈 관계자들을 모아 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사업담당자로서 내가 속해있는 교육부의 주도적인 참여를 통해 교육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다른 정부 부처들인 지방정부 부 (Ministry of Local Government)와 보건복지부 (Ministry of Health)가 참여하게 되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교육정책을 만들고 정책실현을 위해 총 사업실무를 담당하게 되는 교육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의 역할도 중요했다. 특히 보츠와나 내 우리가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시골 지역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총 관할하고 학교건물이 포함된 교육시설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지방정부부의 역할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사업의 핵심 중 하나였던 유아교육 사업에 필요한 영 유아 대상 보건복지 교육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의 참여가 중요했다. 이렇게 3개의 가장 중심에 있는 정부부처에 온 실무진과 담당자들 17명이 첫 회의에 참석해 주었다.


각자의 짧은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첫 회의에서 가장 필요했던 우리 사업에 대한 소개시간이 왔고 나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지난 6년동안 레소토에서 진행한 성공적인 사례들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사업 내용을 소개하였다.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레소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유아교육부터 성인 문해교실, 그리고 직업훈련교실로 이어나간 배경을 소개하며 꾸준한 주민주도형 사업 발전과정을 강조하였다. 동시에 이와 같은 성공적인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보츠와나 정부부처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부탁하며 약 1시간이 걸친 발표를 마치게 되었다.


나의 사업 소개 후, 질의응답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내가 받은 첫 질문은,


“사업 소개는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브릿지사업이 우리 보츠와나에 가지고 오는 사업비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아차, 내가 우려했던 질문이 바로 첫 질문으로 나왔다. 회의장 안의 17명의 모든 눈빛이 내게 집중되었고 상황을 빨리 대처해야 했다. 당황한 기색을 잠시 숨기고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네. 저희 사업비 규모가 작은 것을 알고 있지만 이 금액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보츠와나에 편성된 사업비 규모는 50,000USD (약 5천만원)입니다.”


“지금 숫자를 잘못 말하신 것이지요? 0을 하나 제외하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대답과 동시에 갑자기 들고 있던 볼펜을 테이블 위에 던져 내리며 코웃음을 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몇 참가 공무원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지금 말씀하신 금액으로는 교실 하나밖에 건축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레소토에서처럼 학교를 직접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 순간, 나의 얼굴은 붉게 타올랐고 당황한 기색을 멈추지 못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내가 이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던 나머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나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사실 이번 보츠와나에서 브릿지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사업의 경우 한국정부, 교육부의 지원으로 진행되는데요. 한국정부는 아프리카 지역 중에서도 가장 발전이 더딘 빈곤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새로운 사업 국가로 이미 경제성장이 많이 이루어진 보츠와나가 선정이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가 사업을 진행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으며 이를 보츠와나 정부와 함께 협력해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시간을 훌쩍 넘긴 첫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첫 회의에서 우리 사업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부족한 태도와 역량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수 억 원의 원조금액을 가지고 큰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는 서구의 다양한 개발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사업 규모는 굉장히 작았다. 나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숨기려 했고 막상 사실을 밝혀야 했던 순간, 그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은 사업비 규모 때문에 우리 사업에 관심을 잃고 다음 회의에 오늘 모였던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나를 보고 있던 보츠와나 교육부 내 보츠와나 유네스코위원회 교육담당자였던 메 디네오 (Mme Dineo)씨가 대답해 주었다.


"왜 네가 걱정을 하는 지 모르겠구나. 너는 우리 나라에 교육사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찾아준 것이고 외부의 도움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인 것이다. 브릿지 사업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오지 마을에 있는 지역 주민들은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주는 것은 우리 정부 공무원들의 역할과 책임인 것이다. 또한 브릿지 사업이 영원히 우리나라에 남아줄 것도 아니며 사업이 중단되고 나서도 꾸준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바로 오늘 모인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난 순간, 가슴 속 차 올랐던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착각이라도 했을까? 왜 무조건 많은 금액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야만 성공을 할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공통의 하나된 국가발전목표를 가지고 ‘나’라는 개인의 목표보다는 ‘우리나라’ 국가를 위해 일을 하는 이곳, 보츠와나 정부 공무원들을 보면서 이방인의 나에게도 이곳에서 공무원의 신분으로 일하게 된 것에 대한 그만큼의 자부심과 욕심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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