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회사 사무실 내에 동료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 다른 직원 모두가 전부 여자다.
스웨덴 출신의 보스부터,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영국계 프랑스인, 칠레계 프랑스인, 아프리카 코테디부아르인까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일하고 있지만 모두 여자다.
오전 9시에 출근하여 각자의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을 하다 오후 1시쯤 사무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모두가 각자의 점심을 준비하느라 사무실 한 켠에 있는 부엌에 모여든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모두가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15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그룹으로 회의실 공간에 모두 같이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한국과 다른 프랑스에서의 프랑스인들의 식습관을 보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재미와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피자 한 조각과 샐러드, 요거트와 과일
치즈와 크래커, 햄, 그리고 샐러드, 과일
슈퍼에서 구매한 통조림 파스타와 샐러드, 치즈와 과일
추운 겨울날이면 뜨끈한 국물을 떠올리며 백반 메뉴를 찾는 한국의 흔한 점심 식사 광경과 참 많이 다르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 이들의 식사메뉴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점심식사용 메인 음식인지, 식전에 먹는 애피타이저인지, 식후에 먹는 디저트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저렇게 적게 먹고도 배가 부를까? 다이어트 중인가? 하지만 이들의 식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피타이저, 메인 식사, 디저트의 순으로 나름의 프랑스 고유의 전채 식사 순서를 따르는 것을 본다. 그래도 먹는 양이 참 적어 보이긴 하다.
프랑스에서 식전 메뉴로 잘 나오는 야채수프, @Juyapics 2019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점심시간에 음식을 보는 것 외에도 흥미로운 것이 따로 있다. 여자들이 10명이 넘게 모여있는데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겠는가. 점심시간이면 모두가 모여 일상생활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식사시간에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무례하다는 취급도 받기에 때로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소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참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음식 이야기, 요리 이야기, 식당 추천 등, 여자들의 관심사로 늘 일상생활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직구한 멀리 한국에서 배달된 다이어리 자랑이 한창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산 다이어리를 구입했다면서 각자가 고른 다른 다이어리를 서로에게 보여준다. 유일한 한국인으로 앉아있는 내게 본인들의 다이어리를 보여주며 나도 알고 있는 브랜드인지 물어본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귀엽고 편리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한국의 문구류이기에 괜히 이곳 파리에서 한국 제품들을 만나니 그 반가움이 더해졌다.
그리고 여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화장품과 피부 관련 이야기가 늘 빠지지 않는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BIO 데오도란트가 화젯거리다. 슈퍼에서 일반적인 데오도란트를 구매하면 3-5유로의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는데 이들이 추천하는 유기농 브랜드는 일반 가격의 2-3배가 넘는다. 나는 슈퍼에서 파는 기본 데오도란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당장 유기농 브랜드로 바꾸라며 내게 본인들이 사용하는 브랜드를 추천하기 시작한다.
각기 다른 인종이 모여 일하는 만큼 피부색도 다르기에 각자의 피부색에 맞는 BB크림 추천도 인기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의 다른 국가 출신이지만 내게는 다 같은 피부가 하얀 유럽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백인이라도 이들의 피부 색깔을 핑크빛, 올리브빛, 샌드빛 등 다양한 종류의 색깔로 분류해야만 했다. 데오도란트와 마찬가지로 BB크림 역시 유기농 브랜드 추천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