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60대 중반 남성이 드디어 신문을 끊었다. 1월말의 일이다. 이쯤 되면 내 입장에서는 라떼 냄새 나는 ‘종언(終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신문 시대의 종언... 중년을 넘어선 시정(市井)의 범부 하나가 신문구독을 멈췄다고 “신문 시대가 끝났다”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과연 그럴까.
약 10년 쯤 전, 점심식사 후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10명 쯤 되는 회사 직원들에게 내가 물었다. 집에서 신문 보는 사람이 있느냐고. 그 무렵 신문 안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 대상의 연령은 20대부터 40대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었다. 돌아온 답변은 모조리 “노(No)”였다. 집에서 신문을 구독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10명 가운데 달랑 1명이 되는 것이다. 궁금증이 가라앉지 않아 40대 후반의 직원에게는 다시 한번 물었다. 답은 마찬가지였다. 꽤 충격을 받았으나 그 정도로 신문 시대가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몇 년 후 그러니까 지금부터 5년 쯤 전 아주 가까운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신문 이야기가 나왔다. 집에서 신문을 보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의 답은 “No”였다. 5년 전 열 명의 No 때보다 조금 더 놀랐다.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하는 대학교수가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니... 5년 전 열 명의 비구독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3년 쯤 전, 우리 집 신문배달이 자꾸 늦어졌다. 뿐만 아니라 아예 빼먹는 경우도 한 달에 한 두 차례 생겼다. 참았다. 하지만 빼먹는 빈도가 주 1회 이상으로 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신문보급소에 전화했다. 따졌다. 미안하다며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열흘을 넘지 않았다. 신문은 또 오지 않았고, 두어 번 쯤 더 전화로 실랑이를 하고는 결국 신문을 끊었다. 나아질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끊겠다고 선언하자 구독하지도 않은 다른 신문까지 갖다 준다. 그냥 있다가는 신문을 끊지 못 할 것 같아 신문을 그대로 현관 옆에 쌓아놓았다. 그러고도 끊지 못하다, 신문사 본사 독자관리부서에 까지 전화를 몇 번 하고서야 신문을 끊었다.
그렇게 원하던 신문을 끊었으니 후련해야 하는데 허전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챙겨들어오던 습관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결혼 후만 해도 30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허전한 게 당연했다. 그래서 다시 구독할까 하고 잠깐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신문구독료가 아까운 건 둘째 치고, 신문이 안 와서 스트레스 받던 생각에 진저리가 났다. 그렇게 신문과 나의 수십년 된 인연은 끝이 났다.
내가 이렇게 신문을 끊은 후에도 앞서 이야기한 60대 중반의 남성, 즉 나의 손위 처남은 변함없이 신문을 구독했다. 그 후 처남집에 가면 신문을 뒤적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동안이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그만 두게 되었다.
처남에게 신문 끊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봐야 할 이유보다 안 봐도 되는 이유가 훨씬 많을 테니까 물을 이유가 없다. 혹시 이유가 있더라도 나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신문을 본 걸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시기는 중학교 무렵이다. 아마 4면밖에 안 되는 얇은 신문이었을 것이다. 4면이 아니면 많아봐야 8면이었을 것이다. 그 후 신문의 면수는 계속 늘어났고, 섹션 신문이라고 해서 분야별로 나뉘는 신문이 되면서 면수는 32면 이상까지 되었다.
1977년 9월 고상돈(1948~1979)이라는 등산가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전하던 신문은 1면 전체에 먹베다를 깔고 백발자(검은 박스 위에 흰 글씨로 눈에 확 띄게 뽑는 제목)로 제목을 뽑았다. 그리고 2년 후 10월 하순 또다시 먹통단 백발자로 된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정말 대문짝만한 글씨의 제목을 보았다(이때만 해도 한자가 섞인 제목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큰 글자의 제목이었다.
내가 직장에 갓 취직했을 무렵에는 오후 다섯시 쯤 광화문에서 다음날 조간신문 초판을 사오곤 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발행하는 호외(*)라는 것도 있었다. 신문 부수가 광고 가격을 결정하게 되면서 발행 부수를 과장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신문의 논조와 팩트를 놓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신문사들은 내 처남이 신문을 끊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지금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퇴직한 전직 신문기자도 안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누가 볼까. 현직 신문기자들? 혹은 신문보급소장? 또다른 궁금증. 종이 신문 발행 부수는 도대체 몇 부 정도 될까.
신문은 영어로 newspaper다. 이 정도 단어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알 것이다. news+paper.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어찌됐든 news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제 마무리하면서 신문의 또 다른 기능(?)인 paper, 즉 종이로서의 기능을 생각해 본다.
나는 음식을 할 때 기름이 튈 것 같으면 바닥에 신문지를 깐다. 우리 집에서 신문을 끊은 후에는 처남 집에서 신문을 가져다 썼다. 처남의 절독을 알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걱정 같지 않은 걱정이지만, 걱정은 걱정이다. 이제 신문지가 없으니, 기름 튀는 음식할 때 바닥엔 뭘 깔지? 이삿짐 쌀 때 유리그릇이나 사기그릇은 뭘로 싸지? 전부 ‘뽁뽁이’로 싸나?
*호외 : 매일 발행되는 신문에는 날짜와는 별개로 일련번호가 붙는다. 2022년 2월 14일자가 ‘제2014호’라면 2월 15일자 신문은 제2015호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호수를 붙이지 않고, 급하게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을 호외(號外)라고 한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내가 라떼임을 다시 한번 확실히 알았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에서 ‘신문지’를 검색했더니,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를 판다는 광고가 수두룩하다. 신문은 이제 뉴스 전달 기능은 상실하고 종이 기능만 남은 모양이다.
***사진 출처 : 신데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