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Feb 21. 2022

“나 잡아봐라” - 키오스크 술래잡기

지난해 여름,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와중에 자동주문기계인 키오스크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https://brunch.co.kr/@cinderello/41)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기업의 고민과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고객들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위의 글은 라떼맨 혹은 라떼우먼들이 겪는 애로에 내 나름으로 공감을 표하려는 것이었다. 이 글은 본격적인 연주에 앞선 전주곡쯤 되었던 모양이다. 


지난 해 겨울 초엽이다. 내가 다니는 마트에 자동계산기(셀프계산대)가 등장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정기적으로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늘 이용하는 출입구의 계산 창구로 갔다. “어?” 창구의 계산원들이 있던 자리에 낯선 기계가 들어서 있다. 들어갈 땐 몰랐다. 불과 열흘 사이에 생긴 변화다. 기계의 느낌은 키오스크와 아주 흡사했다. 자동계산기(*)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 창구에서 근무하는 계산원들은 모두 5명이었다. 그 자리에 4대의 자동계산기가 자리했고, 계산원 두 명은 맨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 계산기를 본 나의 아내는 ‘겁도 없이’ 자신이 직접 해보겠다고 나섰다. 아내는 개와 고양이는 지나칠 정도로 무서워하지만, 기계는 별로 무서워하질 않는다. 반면 나는 기계에 대해서는 종류를 불문하고 최소한의 관심만 가질 뿐이다. 아내는 별 부담없이 가전제품 설명서를 읽는다. 자동차에 알지 못하는 사인이 뜰 경우, 매뉴얼을 뒤져 그 사인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도 아내다. 아무튼...


아내는 서부시대 총잡이들처럼 ‘바코드건(bar code gun)’을 들고 게임하듯 쏘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물품을 올려놓고 다시 카트에 담는 역할을 자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코드가 없는 물품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주로 농산물류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안내 직원이 배정돼 있었다. 물었더니. 여차저차 하면 된단다. 어렵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큰 우여곡절 없이 계산을 마쳤다. 

마트에 새로 설치된 자동계산기(셀프계산대)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 나는 아내에게 앞으로는 소량일 경우 직접 계산하고, 물건을 많이 살 때는 계산원에게 가자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건성으로 듣는 듯했다.


다음 번 장보기.

물품 구매를 마친 후 아내는 다시 직접 계산을 하겠단다. 나는 시간이 더 걸리니까 계산원에게 가자고 했다. 그제서야 아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동안 자신은 계산원의 계산이 틀릴지 몰라 늘 신경을 썼다고. 게다가 특별 할인 품목을 처리하다 잘못 될 경우 반품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짜증이 났다고. 그 불편을 왜 우리가 감수해야 하느냐고. ‘그렇게 깊은 뜻이??’


나는 딱히 반박할 의견도 논리도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든 손님들이 두 명으로 줄어든 계산원에게 몰리는 바람에 그쪽에는 긴 대기줄이 생긴 상태였다. 그날 결국 우리는 다시 자동계산기를 이용했다. 게임하듯, 놀이하듯.


그 다음 장보기 날.

다른 출입구의 계산대를 눈여겨보니 그곳도 역시 바뀌어 있다. 10명 정도 되던 계산원이 4명으로 줄었다. 나머지는 자동계산기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계산원이 종전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전 계산원(모두 여성이었다)의 연령이 평균적으로 대략 50세가 넘었다면 지금 보이는 직원들은 3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나와 아내는 종전의 직원들은 모두 실직을 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스스로를 라떼라고 표현하는 우리 부부는 나이가 족쇄가 되어 실직을 하게 된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였다.


쇼핑을 끝내고 계산할 차례. 어, 그런데 자동계산기 구역 출입구에 비닐 테이프가 쳐져 있다. 안내 직원에게 물었더니, 기계 점검중이란다. 어쩔 수 없이 계산원 쪽의 긴 줄 뒤에 가서 섰다. 


놀라운 일은 잠시 후에 벌어졌다. 젊어 보이는 계산원은 우리 부부가 무빙벨트 위에 잔뜩 올려놓은 물품들의 바코드를 순식간에 읽어 제쳤다. 종전에는 쌓아놓은 물품이 빨리 계산되지 않아 느릿느릿 물품을 올려놓아도 되었는데, 이날은 바코드 읽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기야 바코드 읽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 것도 없겠지만, 음속과 광속을 경험한 우리 부부에게 광속의 세계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순간 나는 계산원을 보면서 영화 007 시리즈와 미션임파서블에 나오는 킬러들을 떠올렸다.


아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그 마트 계산원들의 임금 체계를 모르기는 하지만 경력에 따른 임금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계산하는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고용주 입장에서 어느 직원을 쓸 것인지는 1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부빌 언덕이 아예 없는 것이다.


햄버거 가게의 주문용 키오스크와 주차장의 주차비 정산용 키오스크, 병원의 처방전 발행 키오스크를 기껏 따라잡았더니 이번에는 마트의 자동계산기가 자기를 잡아보라고 한다. 그리고 마트의 인원 조정이 너무 우악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도 혼란스러워졌다. 세상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인지, 아니면 별로 빠르지 않은데 적응하는 내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인지 그것도 혼란스럽다. 


*자동계산기 : 마트에 설치된 자동계산기도 키오스크라고 칭하는지 알 수 없어서 자동계산기로 칭했다. 마트에서 정한 명칭은 ‘셀프계산대’.

**대문사진 : 출처-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신문 시대의 종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