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갔던 신데렐로의 귀환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 무려 60일 동안 못 보았네요ㅠ_ㅠ
지금도 다양한 작가들이 브런치를 통해 책 출간을 하고 다양한 기회를 만나고 있어요. 작가님도 동참하시겠어요?”
지난 4월 29일, 나의 브런치 알림에 뜬 글이다. 브런치 운영자(운영기계)가 보낸 글로 생각하는데 그 글이 협박처럼도 들리고, 뭔가 켕기는 것으로 보아 내가 잘못을 저지른 듯했다. 나의 잘못(?)이라고는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것뿐인데.
확인해 보았다. 이 글 전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날짜는 2월 28일이었다. 브런치 운영자는 정확히 60일째 되는 날 애정을 담아 경고성 메시지를(*) 나에게 보낸 것이다.
이번에 알았다. 1년 여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나에게 연락해 온 후 사무적인 소식만 전하던 브런치씨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그리고 이 브런치씨의 인내심은 60일이구나.
애정 담긴 경고성 메시지를 떠올리면서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누가 손해일까. 계산해 볼 것도 없었다. 브런치 작가를 하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많을 테지만, 나는 글을 올릴 놀이터를 빼앗기면 딱히 갈 곳이 없다. 너무나 쉬운 계산이었다.
하지만 관성이란 것은 나름 무서운 면이 있다. 다시 글을 써서 올려야지 마음먹은 후 며칠이 또 지났다. 그렇게 1주일이 가고,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2주, 3주가 지났다.
5월 29일이 되었다. 혹시나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씨가 또 연락을 해왔다.
“작가님, 지난 글 발행 후 구독자가 1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아마도 두 번째 메시지는 감성에 호소하는 모양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2월 28일의 구독자수를 알고리즘은 알고 있다. 그밖에 또 무얼 알고 있을까.
내친 걸음이었다. 나는 탈영한 군인처럼, 복귀를 하지 않은 채 편치 않은 마음으로 뛰어놀기로 작심했다. 만약 한 달이 더 지나면 브런치씨는 어떤 행보를 취할까.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2022년 6월 28일.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120일이 지났어요.(헤아려 보니 정말 그렇다)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이모티콘-따라 그릴 수가 없는 이모티콘이다)”
이제 내가 갑자기 브런치에 글쓰기를 멈춘 이유를 짧게라도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13개월 동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써오면서 가장 힘들게 느낀 문제는 ‘동어반복(同語反覆)’이었다. 어제 쓴 글이나, 오늘 쓰는 글이나, 그리고 내일, 모레, 글피에 쓸 글이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문제를 도무지 해결하지 못 하겠다는 자괴심. 한 주일에 한 번쯤 글 쓰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긴 것도 동어반복을 했기 때문임을 잘 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괴심의 골이 깊어졌다. 물론 동어반복 이외에 다른 이유들도 여러 가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든 것뿐이다.
이 자괴심을 해결하는 데 120일이 넘게 걸렸다. 그렇다고 뾰족한 답을 찾지도 못 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타협할 거라면 왜 글쓰기를 멈췄고, 다시 쓰기는 왜 하는 걸까.
‘너무 거창한 고민을 하고 있군, 설마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지, 누가 보면 청탁 받은 글을 1년 넘게 쓰고 나서 계속 쓸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다’ 등등 나를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깎아내리는 류의 생각들이 가득했다. 자애심은 없고, 자비심(自卑心)만 넘쳤다.
정말로 동어반복을 고민했다면 그래도 몇 줄의 변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궁색하면서 떳떳해지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미술가, 그리고 글 쓰는 작가들. 그들의 음악, 미술작품, 문학작품이 매 편마다 완전히 달라서 내가 좋아했던가. 그 작가의 작품임을 단박에 알 수 있도록 매양 그 모습이기에 좋아했던 것이 아니던가. 일례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다른 작가들의 음악과 뒤섞어 들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은가. 바하의 작품도 그렇고. 피카소의 작품과 몬드리안의 작품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그 작가의 작품들은 서로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김훈 작가의 소설과 수필들은 그들끼리 모두가 비슷하고, 고 장영희 교수, 고 박완서 선생의 글은 또 그 나름대로 비슷하지 않던가.
위안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반추를 한동안 한 후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주인 없는 채 문을 열어놓았던 신데렐로의 브런치를 찾아주셨던 분들께 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함께 전한다. 이제 부지런히 거미줄 걷고, 먼지 털고, 다이슨 청소기 돌린 다음 물티슈로 깨끗이 청소하려고 한다. 다른 작가 분들의 글도 다시 열심히 찾아 읽을 생각이다.
이참에 브런치 이름 신데렐로를 ‘동어반복’으로 바꿀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건 ‘라떼’가 처리하기에는 많이 어려운 일이라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7월은(‘7월 달은’이라고 썼다가 동어반복이 떠올라 고쳐 썼다.) 무언가를 새로 하기에 좋은 달이다. 왜? 내가 태어난 달이다. 르네상스라는 엄청난 단어도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 아닌가.
브런치씨의 반응이 궁금하다. 120일 간 세 번씩이나 독촉, 재촉, 독려, 격려, 읍소한 브런치씨가 이 글을 보고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만약 아무 메시지도 없다면 괜히 서운할 것 같다.
*애정을 담은 경고성 메시지 : 곰곰이 뜯어 읽으니 모순(矛盾)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