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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Feb 07. 2022

나이

해가 바뀌었다(이제는 양력, 음력 모두 바뀌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 새 아침에 떡국을 먹는다. 언제부터 생긴 시속인지는 모르겠으나, 새해에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이 습속을 놓고, ‘떡국을 못 먹어서 나이를 안 먹었다’느니, ‘두 그릇 먹으면 두 살을 먹는 거냐’ 같은 이야기를 하면 새해 벽두부터 매를 버는 일이 될 것이다.) 


왜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살다보면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중요한 일을 나이와 연결시킨 것으로 보아 나이를 먹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모양이다. 그러다 보면 나잇값에 관한 언급 역시 그냥 흘려 넘기기 어렵다.  


제발 나잇값 좀 해라. 나잇값도 못 하고, 아직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느냐... 와 같이 종종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나잇값의 지향점은 긍정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나잇값 하라”는 말이 국어사전 예문에 있는 걸 보면,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나에겐 다행한 일이다.


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자 말씀을 피해가기 어렵다.

“나는 열다섯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일흔에는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논어> ‘위정)


이건 공자님 정도 되는 사람들의 영역에 해당하는 일일까. 내 나이와 대조해 보니, 괴리가 심하다. 이른 바 현타가 심하게 오면서 현기증까지 약간 생긴다. 


마흔에는 불혹하셨다는데 그와 정 반대로 미혹의 세계에서 헤엄쳤고,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육십에는 이순이라 했다. 웬만한 건 들어 넘기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들어 넘기기는커녕 여전히 발끈하고 있으니...


사진 출처 : pixabay.com


나이를 드러내는 때는 연초 외에 생일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외국처럼 생일에 나이 수만큼 초를 켠 다음 소원을 빌고 초를 껐다. 그러더니 요즘은 생일 케이크에 켜는 초도 나이만큼이 아니라 퉁 쳐서 한 개만 켜기도 하는 모양이다.


과거에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내세우며 나이 대접 받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남자들의 다툼 끝에 “너 몇 살이야?”가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거기서 왜 나이가 나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이제 그런 관습의 덕을 볼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은 어떻게든 젊게 보이는 게 추세가 되었다. 특히 여성의 나이는 안 밝히는 게 에티켓처럼 돼 있다. 나이라는 건 속일래야 속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나, 무인도에 외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간의 흐름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그런 사람들은 벽에 작대기를 그어가면서 시간의 경과를 파악한다. 


이 사람들이 날짜를 헷갈려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루하루, 매일 매일이 그날이 그날 같아서 그럴 것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도 어제 같고, 다가올 내일은 또 오늘 같고, 그 다음다음 날은 엊그제 같고. 이러다 보니 날수도 요일도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이 때문에 웃은 적이 있다. 주인공 도깨비(공유 분)는 고려시대의 인물로 939세로 묘사된다. 이 도깨비의 신붓감(김고은 분)은 고3 학생으로, 불과 19세다. 두 사람의 나이차가 많은 것을 두고, 또다른 주인공인 저승사자(이동욱 분)가 도깨비를 놀린다. 그렇게 나이차가 많아서 어쩌냐고. 


이때 도깨비의 반응. “나, 938세나 마찬가지야. 나 빠른이야.”


그렇게 해서 한 살 줄이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 테지만 그토록 ‘노력’한다는 게 매우 우스웠다. 특히 전혀 예상 못한 ‘빠른’ 공격에 허를 찔린 느낌이기도 했고.


새해가 시작된 지 오늘로 38일 혹은 7일이 지났다. 쇠털 보다 조금 적지만 아직 엄청나게 남아있는 3백 몇 십일의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날이 되기를. 그리하여 매일 매일이 기억에 남는 색다른 날이 되기를. 현실성 없는 이야기지만 이맘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환상을 현실처럼 꿈꿔 보겠는가. 


끝으로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알 수 없는 <도깨비>의 대사 한 마디 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가 920세 차이나는 연인과 사랑에 빠져서 읊조리는 대사다.


*대문 사진 : 동해 바다의 일출. 어디서 찍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낙산 바닷가 아니면 속초의 해맞이공원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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