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년이 좀 넘게 골프를 쳤다. 한창 재미를 느낀 3년 쯤 될 때는 매주 한 두 번씩 필드에 나갔다. 주말 골퍼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실력이 부쩍 늘거나 하지 않았다. 구력이 쌓인 후에도 실력이 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한두 번 필드에 나가는 지금은 더 이상 실력이 늘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필드에 나가는 목적이 운동인지 바람 쐬기 위한 것인지, 지인들과의 친목 도모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골프 실력이 늘지 않았을까.
운동을 못 한다고 해서, 운동을 못 하는 이유를 모르라는 법은 없다. (이 문장을 써놓고 읽어보니, 내가 골프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운동을 못 해도 그 이유는 알 수 있다. 이렇게 쓰면 될 것을 부정에 부정을 담아서 한껏 복잡하게 만들었다.)
골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를 하나하나 들자면 20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 이유를 모두 뭉뚱그려 가장 중요한 이유, 가장 큰 이유 하나만 들라면 ‘힘을 빼지 못해서’를 꼽아야 될 것 같다.
좀 더 멀리 보내겠다고 있는 대로 힘을 주니 정확한 임팩트가 일어나지 않는다. 스위트스폿에 맞으면 거리도 더 날 텐데 그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힘을 잔뜩 주니 임팩트 후 팔로우 스루가 되지 않는다. 임팩트 후 원심력에 따라 팔이 뻗어나가서 스윙이 완성되도록 해야 하는데, 힘이 꽉 들어간 상태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되지 못 한다. 이 지경이면 방향에도 문제가 생긴다.
다른 운동을 예로 들어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수영. 수영을 배우는 첫 단계에서 해야 하는 것도 힘 빼기다. 그래야 물에 뜨고, 폼이 자연스러워진다. 평영의 경우 힘을 빼지 않으면 한 번의 스트로크로 나가는 거리가 짧아진다. 힘 뺀 사람은 10번 남짓만 스트로크를 해도 25미터를 갈 수 있는데, 힘을 빼지 못 하면 20번이나 해야 한다. 힘을 못 뺀 채 배영을 하면 온몸이 뻣뻣해서 나무 인형이 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잘 안다.
다른 운동도 비슷하다. 아니, 비슷하다가 아니라 똑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니스도 그렇고, 탁구도 그렇고, 야구의 스윙도 그렇고, 야구의 공 던지기도 그렇고, 축구의 슛도 그렇다.
설을 코앞에 둔 지금 덕담을 해도 시원치 않은데, 이 무슨 해괴한 ‘힘 들어간 소리’인가.
1월 1일에 아무런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겐 음력이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를 맞아 무언가 목표를 하나 세우려다가 내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힘 빼기’다. 올 한해 내 생활의 목표를 이렇게 정하려고 한다. 힘... ... 빼...기
라떼, 꼰대라는 소리 이면에는 힘을 빼지 못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하는 뜻이 담겨있지 않은가?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도 힘을 뺄 필요가 있겠다.
힘 빼기는 운동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생활 속의 힘 빼기와 관련된 예.
피아노를 칠 때도 손가락에 과하게 힘을 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피아노를 오래 칠 수도 없을뿐더러 손목과 손가락을 다칠 위험도 커진다. 음식 만들 때 칼질하기도 마찬가지다.
초보운전자들은 긴장한 탓에 운전할 때 힘은 잔뜩 들어가고 몸이 굳는다. 힘을 못 빼니 고개가 뻣뻣해서 시야도 아주 좁다. 그런 몸으로 오래 운전을 하고 나면 온몸이 뻣뻣하고 근육이란 근육이 모조리 아프다. 경험 많은 운전자와 큰 차이가 있다.
명절에는 가족들이 좋은 마음으로 만났다가 힘 빼지 못하는 바람에 갈등만 빚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힘 빼면 틀림없이 나아진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 아나. 제대로 힘 빼면 10년 넘게 해마다 늘어나던 골프 스코어가 올해 처음으로 줄어들게 될지.
* 골프를 못 하는 이유 : 브런치에 올리기 직전 아내에게 이 글을 한번 보라고 했다. 아내는 내가 골프를 못 하는 이유는 스무 가지가 아니라, 100 가지도 넘을 것이라고 했다. 새해 전날이라 좋은 마음으로 새겨들었다.
** 새해인 듯 새해 아닌 새해같은 날의 하루 전 날,
우리들은 1월 1일에 양력으로 새해를 맞고, 한달 쯤 만에 음력으로 다시 새해를 맞습니다. 조금 어색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 브런치에서 만나 뵙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새해 인사드립니다. 행복한 설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