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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an 24. 2022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이것이 치매인지, 단기 기억상실증인지, 섬망인지, 알츠하이머인지, 아니면 단순한 건망증인지 나는 알지 못 한다. 드러난 현상은  내가 마스크없이 밖에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그랬지만 며칠 전에도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간 일이 있었다. 그날은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서 주차를 한 후 걷기 시작하다 ‘노 마스크’임을 알아차렸다. 이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놀람과 낭패감이었다. 다행히 차 안에 예비 마스크를 놓아둔 것이 생각났다. 콘솔 박스 안에 KF80 마스크가 두 개 있었다. 80이고 94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날과 오늘의 공통점은 아내 없이 혼자 외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가지 우려스런 증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늘은 백주 대낮에  마스크 없이 버스를 타러 나섰다. 요즘 하도 추워서 걷기 운동을 쉬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나온 김에 버스를 갈아 탈 정류장까지 네 정류장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대략 2km거리다.


걸어가는 동안 여러 사람을 지나쳤으나 그들의 눈빛에서 내가 마스크를 안 썼음을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러다가 건널목을 건너면서 ‘어? 마스크!!!’하고 생각이 났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던 사람들의 서늘함을 넘어 싸늘한 눈초리 때문이었을까. 마스크 없이 무려 20분 가량을 활보한 후였다.


며칠 전 마스크 없이 운전도 하고, 걸어다녔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까. 오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건널목 바로 앞의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자, 들어보시라. 마스크 없이 편의점에 들어가면 어찌 되는지.

코로나19 바이러스. 만 2년째 이 모습을 보고 있지만, 참 이상하게 생겼다.

편의점에 들어서며 오른쪽 계산대를 힐끗 보았다. 남자 알바생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알바생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마스크 어딨어요?” “저기요” 세 음절에서 싸늘함이 느껴진다. 적의(敵意)인지도 모르겠다. 목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진열대에 마스크가 없다. 두리번거리다 말을 걸었다. “안 보이는데요.” 답이 없다. 적의는 이제 노골적이다. 다시 말했다. “마스크 어딨어요?” “그 아래 쪽이요.” 다가와서 알려줄 마음은 아예 없는 듯하다. 이런 때 X가지가 없다는 표현을 쓰던가. 다시 두리번거리다 아래쪽을 보니 마스크가 있다.


가격표를 보고 놀랐다. 집에서 아내가 사던 마스크의 평균 가격은 6백 몇 십원이었는데, 진열된 마스크는 무려 4900원이다. 겉면에 연예인 마스크라고 쓰여 있다. 어이가 없다. 옆의 마스크를 보니 KF94인데 1500원이다. 계산대로 갔다. 이제야 얼굴을 보았다. 앳되다. 바코드 리더기를 갖다 대더니 2500원이란다. 뭐? 속으로 부르짖고는 겉으로 아무말도 못 했다. 평소 같으면 1500원 아니냐 묻고 이것저것 따지고 다른 마스크를 가져오겠다고 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 했다. 나는 마스크 없는 손님이 아니라 마스크 없는 죄인이다.


알바생이 신용카드 넣는 단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감염병 환자 대하듯 한다. 나는 알바생을 무시하고, 5천 원 짜리 현금을 냈다. 거스름돈 2천5백 원을 건네주는 손길에서 내 손에 닿을까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편의점에서 나오다 보니 문에 ‘마스크 착용하지 않은 손님 출입금지’라는 안내(경고?)가 붙어 있다. 마스크 없어서 마스크 사러 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옛날 농담이 떠올랐다. 운전 미숙한 여성 운전자를 보고, 남성 운전자가 하는 말. “아줌마, 집에 가서 밥이나 하지, 뭐 하러...” “밥 하러 가는 중이... ... 에요.” 이런 성 차별성 농담이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농담이다.


그래, 나 마스크 없어서 마스크 사러왔는데 어쩌라고.


잠시 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안 쓴 것도 모르는 채 버스를 그냥 탔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부스터 샷까지 맞았다고 항변해 봐야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았다. 승객들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전에 운전기사가 제지해서 아예 버스에 못 탔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현관 문에 마스크를 붙여 놓았다. 만약 그렇게 하고도 마스크 없이 그냥 나간다면 이 글 첫 번째 문장처럼 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모두가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접종률이 80%를 훌쩍 넘고, 3차 접종률도 50% 가까이 되는데도 확진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고 한다. 이번 주 중에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어설지 모른다고???


주말 통계를 보니 미국의 하루 확진자는 무려 90만명, 프랑스는 약 40만명, 선방하고 있다던 이스라엘이 6만4천명이다. 수치의 자릿수가 틀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지금 풀고 있는 ‘Covid 19 퍼즐’에 답이 있기는 있는 건지 궁금하다. 아니, 의심스럽다.


*제목 : 이 글의 제목은 당연히 영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서 가져왔다.


**일요일부터 여행중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토요일(1/22) 오후에 미리 썼습니다.

주말이라 오늘 발표한 하루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지는 많았지만, 시간 문제인 모양입니다.

답답하고 걱정스런 하루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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