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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an 17. 2022

시속은 변한다

올 겨울 패션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여기서 레깅스를 떠올렸다면? 그건 신데렐로를 조금 많이 띄엄띄엄하게 본 것이다. 레깅스는 꽤 오래 전에 졸업했다. 


올 겨울의 이해불가 패션템은 바로 슬리퍼 형태의 겨울 신발이다. 발등까지는 북극에서도 신을 수 있는 신발인데, 복숭아뼈 뒤로는 한여름 슬리퍼 형태다. 이건 뭐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나 반신반인(半神半人)도 아니고... 젊은 층에서 나타나던 ‘패션’은 점차 연령 불문으로 퍼져나가는 듯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은 이 유행의 과거와 미래를 알까.


‘라떼’의 대표적인 특징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뒤늦게 알거나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것인데, 오늘 그 전형적인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1990년대 중반, 내가 회사 다닐 때 일이다. 급한 척 하며 촬영 나가는 후배 PD가 “나중에 전화드릴게요”하면서 새끼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은 펴고 중간의 세 손가락은 구부려서 귀와 입게 갖다 댄다.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묻지 못 했다. 손가락의 의미가 욕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의미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전화 거는 모양이었다. 여름 휴가 때 미국에 가서 친척을 만나고 왔다더니 거기서 배운 모양이다. 그 전에도 그런 제스처가 있었겠지만 내가 확실히 인지한 것은 그때였다. 그 후 그 행위는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영화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행동에서도 수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나도 그 몸짓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러께 쯤 그 손가락 전화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조금 빠른 아내의 전언이었다. 요즘에 그 제스추어로 전화를 나타내면 젊은 애들은 못 알아먹는다나 어쩐다나. “설마?” 하고 반문했더니, 요즘 애들은 옛날 전화기를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뭘 가리키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설마, 마, 마...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콘도에서 보았던 고전적인 모습의 전화기가 떠올랐다. 1970~80년대에 쓰였던 이른 바 ‘부잣집 전화기’ 형태의 전화기가 콘도 거실에 놓여 있었다. 그 전화기가 울리면 “성북동입니다.”(*)하고 받아야 할 것 같은 모양새의 전화기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번호판이 다이얼 형태처럼 모양만 돼 있고는 사실은 손으로 누르는 디지털 방식이었다. 페이크(fake) 다이얼 전화기인 것이다.


이런 전화기를 본 적 없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두 손가락을 펴서 귀와 입에 대고는 “그러면 요새 애들은 어떻게 하는데” 하고 되물었다. 아내 왈, 손바닥을 귀에 갖다 댄단다. 


나는 1)뜨악한 표정으로 아내를 본 후  2)잠시 아무말을 못 하다가  3)“설마?!” 하고 의문을 표한 후 4)오른손바닥을 오른뺨과 귀에 대며 5)이렇게 한다고??  6)푸하하 하고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손바닥을 귀에 대는 것으로 전화 받는 시늉을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설명을 다시 들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로 옛날 전화기 흉내를 내는 거나, 손바닥으로 요즘 사용하는 스마트폰 흉내를 내는 거나.




내가 카톡 문장에 마침표 찍는 습관 때문에 올드맨 소리를 들은 게 벌써 7~8년 전이다. 나는 여전히 마침표를 찍는다. 마침표의 효용가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카톡 문장에는 마침표가 없다. 이제까지 이걸 확인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 확인해 보라. 단톡방에는 두 종류의 문장이 있다. 마침표가 있는 문장과 없는 문장. 전자는 ‘라떼’다. 


내가 늘상 하던 대로 “핸드폰”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막냇동생이 그 핸드폰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라떼’를 상기시킨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니, 요새 애들은 핸드폰(**)이라 하지 않고 휴대폰이라고 한단다. 무슨 차이냐고 되묻다가 의미 없는 말씨름이 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시속(時俗)은 변한다. 시커먼 전화기와 상아색의 부잣집 전화기가 공존하던 세상이 모양만 아날로그인 옛날 전화기로 바뀌고, 두 손가락으로 나타내던 전화 거는 모습이 손바닥으로 전화기를 형상화하는 스마트폰 세상이 되었다. 그 다음은 어떤 세상이 올까. ‘인이어(in-ear)’라는 보청기처럼 생긴 수신기를 귀에 집어넣는 세상이 와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파는 행동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나저나 반인반수 슬리퍼는 발이 시리지 않은가 하는 우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성북동입니다 : 이것 역시 20대 이하는 잘 모르는 말일지 모른다. ‘올드한’ 드라마에서 부잣집을 나타낼 때 흔히 쓰던 표현이다. 성북동을 대체할 동네로는 평창동과 가회동 등이 있다.

**핸드폰vs휴대폰 : 핸드폰이라고 하면 올드맨이고, 휴대폰이라고 하면 영맨이라는 분류법도 있다. 누가 만든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젊은이들의 언어 습관을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네이버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핸드폰과 휴대폰의 설명은 한 글자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걸고 받을 수 있는 소형 무선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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