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글의 글감으로 동백꽃을 선택했다. 삶의 우발성(偶發性)에 관심 많은 나는 이것도 역시 우연의 모습을 한 필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호랑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시간에 동백꽃 이야기라니.
새해 첫 글을 잘 써보겠다는 욕심에 지난 주에 무려 세 편의 초고를 썼다. 나이에 관하여와 글쓰기에 관하여,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 등. 살던 대로 살지 않고 새해를 맞아 열심히, 성실하게 준비하는 내 모습이 생소했다. 너무 생소해서일까, 원고 세 편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던 대로 살자고 생각했다. 초고 세 편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버렸더니 생겼다. 새해 첫날, 묵은 드라마를 보다가 글감을 얻었다.
예전에 나는 동백꽃 하면 김유정(金裕貞)을 떠올렸다. 소설가 김유정(1908~1937). 단지 스물아홉 해를 살고 세상을 뜬 인물.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서른도 넘기지 못 한 줄은 몰랐다.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관을 찾아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숨지기 열흘 전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경제적인 도움을 청했다. 닭 서른 마리만 고아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친구가 답장을 하려 했을 때 김유정은 이미 다른 세상〔別世〕으로 떠났다.
내가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을 읽은 것은 아마 열 다섯 혹은 열 여섯 살 쯤이었던 것 같다. ‘동백꽃’ 끝 부분을 조금 옮겨본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나무위키 ‘동백꽃’ 항목에서 전재.)
스물아홉 해밖에 피지 못한 김유정은 기차역이 되어 이름을 남겼다. 경춘선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 김유정역. 인물 이름이 붙은 최초의 역이라고 했다. 기차 역으로 이름을 얻었다가 지금은 전철역이 되었다. 그 역 부근에 김유정 문학촌이 꾸며져 있고, 김유정 문학관도 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지식산업사, <서정주>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6, 156쪽.
10여년 전 나는 고창 선운사에 동백꽃을 보러갔다. 가을에 갔기에 동백은 볼 수 없었다. 동백은 봄에 피는 꽃. 하지만 나는 봄에는 선운사에 갈 수 없었다. 벼르고 벼르다 가을에 갔다. 동백꽃은 볼 수 없었고 상사화(**)만 가득했다. 잎은 꽃을, 꽃은 잎을 그리워하며 서로 만나지 못하고 피어서 상사화(相思花)라 한다고 했다. 동백은 없고, 동백을 보고 싶어하던 내 마음만 남았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그 마음을 모른다. 다음 해, 그 다음 해,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선운사에 가지 못했다. 내가 못 간 봄, 봄, 봄 마다 동백꽃은 꽃송이 째 툭 툭 떨어졌으리라. 미당(未堂)은 결국 동백을 보았던가, 못 보았던가. 내가 못 본 동백을.
‘동백이’를 보았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다. 새해 첫날, 내가 거의 보지 않던 채널 51번에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재방송을 시작했다.
동백이는 몇 년 전 이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나왔다. 동백이 본캐의 성은 공씨다. 공씨는 그 드라마를 찍을 때 무려 마흔 살이나 되었다. ‘로코 퀸’이라지만 그 퀸의 자리를 노리는 배우들은 셀 수 없이 많을 터. 하지만 동백이의 미소를 다시 보니, 그녀의 여왕 자리는 한동안 난공불락일 듯싶었다.
지난 봄(2021년을 말한다. 해가 바뀌었다.) 동백꽃이 피던 주점 ‘까멜리아’에 가 보았다. 경주 여행 뒤끝에 들른 포항 외곽의 소읍 구룡포, 큰 길에서 비껴난 뒷골목에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안내가 그득하다.
드라마의 주 무대였던 주점 까멜리아(camellia. 동백冬柏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나와 아내는 줄을 섰다. 셀카를 한 장 찍었는데, 맘 좋은 아저씨가 우리 사진을 찍어 준단다.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잡으라고 한다. 그 아저씨가 왜 그렇게 맘이 좋은지 궁금해 하다가 드라마에 나왔던 ‘까불이’가 갑자기 생각났다. 무서웠다. 하지만 백주 대낮이라 참을 만 했다.
드라마는 끝나고, 조명이 꺼진 그 자리에는 머리핀부터 반지까지 온갖 잡다한 소품을 파는 점방이 들어섰다. 아내에게 머리끈을 사 줄까 말까 하다 사주지 않았다. 집에 있는 노란 고무줄로 묶으면 공짜인데, 오천원이나 하는 머리끈은 너무 비쌌다.
해가 바뀌었으니 봄이 멀지 않았다. 직업이 없어지니 시간이 많아졌다. 선운사에 갈 수 있겠다, 봄에. 꽃송이 째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볼 수 있겠다. 봄내라는 예쁜 우리 이름의 도시 춘천. ‘봄봄’의 도시 춘천. 김유정이 떠난 봄(3월 29일)에 동백꽃도 떨어지겠지. 구룡포를 떠난 공씨 성의 배우 동백이는 떨어지는 동백꽃을 본 적 있을까.
누구는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다’고 했는데, 나는 오지도 않은 봄을 앞서가며 동백꽃 타령을 하고 있다.
이래도 봄은 오고, 저래도 봄은 온다.
*노란 동백꽃 : 소설 ‘동백꽃’의 이 구절을 놓고, ‘동백꽃에는 노란 색이 없으니 이는 생강꽃을 가리킨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왕설래를 고려하지 않았다.
**상사화 : 상사화는 붉은 색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흔히 상사화라고 부르는 꽃은 사실은 꽃무릇이다' 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상사화를 붉은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설이 있으나 통설을 따라 상사화라고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