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먹기 어려워하는 음식이 많다. 나는 아이들의 평균보다 조금 더 많았다. 무도 싫어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먹기 싫어하기도 했고, 먹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발효 과정에서 풍기는 무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무채처럼 생으로 먹는 음식은 날 느낌이 싫었고, 생선조림에 들어있는 익힌 무는 그 퍼석함이 또한 싫었다. 무에게 입이 있다면,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따질 일이었다. 유일하게 먹는 무 반찬은 단무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여름 소나기처럼 뭇국이 맛있게 느껴졌다. 소고기를 충분히 넣고 끓인 뭇국. 아이들의 음식이 아니라, 어른들의 음식인 뭇국이 좋아진 것이다. 특히나 술 먹은 다음날 아침 밥상에 뭇국이 있으면 아주 반가웠다. 그 때문에 무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대학 무렵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술과 연관이 있고.
뭇국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 무채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좋아하는 무 반찬이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생선조림에 들어있는 무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에게는 별로였다. 감자를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무와의 거리는 근년에 내가 음식을 하기 시작한 후 급격히 좁아졌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무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건 내 무지 때문이었다. 조리 방법을 찾아보면 무를 넣으라고 하는 경우가 잦았다. 따라해 보았다. 국과 찌개에 무를 넣었더니 감칠맛이 확 돈다는 것을 느꼈다. MSG 류의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문제를 꽤 극복해낼 수 있었다. 냉장고에 무가 떨어질 듯하면 조바심이 생길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면서 두루 물어보니, 이제야 그걸 알게 됐느냐는 투다. 내 입장에서는 독학으로 터득한 지식인데.
무가 단독 주연인 뭇국과 무와 북어가 공동 주연을 맡은 북엇국은 좋아하는 메뉴 가운데 첫 손에 꼽힌다. 코다리 조림을 비롯해 생선조림에 들어가는 무는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씬 스틸러’다. 찌개와 국 외에, 기본적으로 해먹는 무 반찬도 몇 가지는 된다. 깍두기, 무생채, 무나물, 무전 등. 특히 무생채는 칼질 연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강판이 있지만 손이 벨까 무서워서 사용하지 않다보니 무채를 썰 일이 종종 있다.
값이 싼 것도 칭찬할 요소지만, 다른 야채들에 비해 보존 기간이 긴 것도 칭찬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