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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r 11. 2021

무를 깨닫다

어렸을 때는 먹기 어려워하는 음식이 많다. 나는 아이들의 평균보다 조금 더 많았다. 무도 싫어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먹기 싫어하기도 했고, 먹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발효 과정에서 풍기는 무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무채처럼 생으로 먹는 음식은 날 느낌이 싫었고, 생선조림에 들어있는 익힌 무는 그 퍼석함이 또한 싫었다. 무에게 입이 있다면,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따질 일이었다. 유일하게 먹는 무 반찬은 단무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여름 소나기처럼 뭇국이 맛있게 느껴졌다. 소고기를 충분히 넣고 끓인 뭇국. 아이들의 음식이 아니라, 어른들의 음식인 뭇국이 좋아진 것이다. 특히나 술 먹은 다음날 아침 밥상에 뭇국이 있으면 아주 반가웠다. 그 때문에 무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대학 무렵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술과 연관이 있고. 


뭇국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 무채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좋아하는 무 반찬이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생선조림에 들어있는 무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에게는 별로였다. 감자를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요리 초보가 많아서 그런지 마트에는 이런 설명도 있다.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무와의 거리는 근년에 내가 음식을 하기 시작한 후 급격히 좁아졌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무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건 내 무지 때문이었다. 조리 방법을 찾아보면 무를 넣으라고 하는 경우가 잦았다. 따라해 보았다. 국과 찌개에 무를 넣었더니 감칠맛이 확 돈다는 것을 느꼈다. MSG 류의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문제를 꽤 극복해낼 수 있었다. 냉장고에 무가 떨어질 듯하면 조바심이 생길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면서 두루 물어보니, 이제야 그걸 알게 됐느냐는 투다. 내 입장에서는 독학으로 터득한 지식인데.


무가 단독 주연인 뭇국과 무와 북어가 공동 주연을 맡은 북엇국은 좋아하는 메뉴 가운데 첫 손에 꼽힌다. 코다리 조림을 비롯해 생선조림에 들어가는 무는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씬 스틸러’다. 찌개와 국 외에, 기본적으로 해먹는 무 반찬도 몇 가지는 된다. 깍두기, 무생채, 무나물, 무전 등. 특히 무생채는 칼질 연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강판이 있지만 손이 벨까 무서워서 사용하지 않다보니 무채를 썰 일이 종종 있다. 


값이 싼 것도 칭찬할 요소지만, 다른 야채들에 비해 보존 기간이 긴 것도 칭찬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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