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라면은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기흥휴게소의 라면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휴게소의 라면 코너에서는 음식점용 가스레인지 6개와 손잡이가 달린 얇은 양은 냄비를 사용했다. 라면은 농심도, 삼양도 아닌 다른 회사 라면이었다. 두 회사 라면만 먹던 나에게 제3의 라면을 각인시킨 계기였다. 그걸 끓이는 종업원은 달인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것이다. 아니다, 달인이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시작하는 주말 아침 무렵이면 그 라면 코너 앞에는 늘 긴 대기줄이 생겨있었다. 한번에 6개씩을 끓여냈는데, 냄비 6개를 놓은 후 큰 들통의 끓는 물을 국자로 퍼서 각 냄비에 붓는다. 라면 레시피가 요구하는 물 양은 500~550ml인데 약 400ml 정도만 붓는 것 같다. 곧바로 가스레인지에 가스총으로 불을 붙인다. 이때 달인의 표정은 무심 그 자체다.
그리고는 펄펄 끓고 있는 냄비에 순식간에 라면 여섯 개를 투척한다. 스프 역시 순식간에 찢어 제끼며 냄비에 넣는다. 라면이 끓기 시작하면 기다란 쇠 집게로 라면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간혹 냄비 테두리에 집게를 탕탕 두세 번 두드리는데, 그 무심한 동작이 달인의 라면 끓이기에 예술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이때쯤 달인은 들통에서 끓는 물을 한 국자 퍼서 여섯 냄비에 찔끔찔끔 부어 넣는다. 라면이 거의 완성됐다는 신호다. 라면을 기다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달인을 쳐다보고 있다.
다음에는 소스통에 들어있는 달걀을 냄비마다 죽죽 짜 놓는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큰 그릇에 들어있는 썬 파를 집게로 집어 한 움큼씩 던져 넣는다. 두 세 냄비에 넣은 후에는 또다시 집게로 냄비 테두리를 두드린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무표정하고, 시크하다. 여섯 개의 라면이 완성되면 냄비를 들어서 우동그릇 같은 국수 그릇에 부어 넣는다. 완성이다. 운 나쁘게 일곱 번째 서 있던 사람은 다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나는 꼬들꼬들한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유일한 예외가 이 달인의 라면이다. 후후 불어서 한 입 먹는 순간, 안 익은 것 같다고 느끼다가 잠시 후 아, 익었구나 하면서 먹게 되는 달인의 라면. 두 젓가락 째부터는 더 이상 완성도에 의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달인의 라면.
글 한 꼭지 쓰느라고 늘어놓는 너스레가 아니다. 마술사의 마술은 결국은 눈속임이라고 생각하지만, 달인의 쇼는 눈속임이 아니다. 내가, 아니 줄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그 사실을 목격하고, 그 맛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이 라면 끓이기는 조리라기보다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20년이나 된 오래전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도 워낙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주말에 1박 2일로 국내 여행을 갈 때면 늘 아침식사를 이 기흥휴게소 라면으로 해결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는 법. 몇 년 동안 그 라면을 먹었는데, 어느 날 그 라면 코너에 들렀더니 긴 줄이 보이질 않았다. 달인은 간 데 없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그 자리에 있었다. 끓이는 모습을 보았더니 속도감이 전혀 없다. 그제서야 과거 달인의 동작에서는 리듬감도 느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린 아저씨의 이름표를 보았더니 견습생이라고 쓰여있었다. 기흥휴게소 라면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휴게소에서 라면을 사 먹는다. 하지만 어느 경우도 달인의 맛을 흉내 내지 못 한다. 궁금하다. 그 라면 달인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만약 라면 식당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가서 먹을 것이다. 멀고 가까움은 관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