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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r 08. 2021

트라우마-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나는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기껏 안다는 게 홍두깨살 정도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은 큰 이유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소고기도 멀리했다. 지금은 쉽게 소고기, 돼지고기를 구분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 구분을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로 의심 가는 모든 음식은 피하려고 했다. 부모님은 한동안 이건 틀림없이 소고기라며 설득을 하셨지만 나는 막무가내였다. 한동안의 투쟁(?) 끝에 결국 나는 고기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다만 닭고기는 돼지고기와 확연히 달라서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사연’을 짧게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언급이 나올 때 설명이 쉬울 듯해서다.


유치원도 다니기 전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시골로 요양을 가셨다. 그때는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서울 부도심이 되었다. 홍대 앞 못지않게 번화한 곳이다. 조부모님이 묵으시던 숙소 바로 옆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나는 돼지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나도 불편하고 읽는 분들도 불편할 것 같아 생략한다. 


다만 왜 그런지 내 뇌리에는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 또렷하다. 돼지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을 때 누렇고 붉게 빛나던 석양이 지워지지 않는 화인처럼 남아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알레르기 때문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탈이 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충격적인 모습 때문에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소고기만 먹는 나를 보고 ‘팔자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 속에서는 ‘너도 한번 그렇게 돼 봐라, 얼마나 불편한가’ 하면서도 그냥 웃어넘긴다. 아무튼 나는 유태인처럼 돼지고기를 안 먹는, 못 먹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요즘은 설명하기가 조금 쉬워졌다. 사람들이 트라우마(trauma)라는 단어를 잘 알기 때문이다.

ⓒ pixabay

그런데 결혼 직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아내의 어머니, 즉 장모님이 돼지고기를 전혀 안 드시는 것이다. 내가 생애 두 번째로 본 돼지고기를 ‘전혀, 도무지, 완전히’ 안 먹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는 느닷없이 장모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끓어올랐다. 장인어른을 비롯해 처가 형제들이 합리적이고, 관용적이지만 장모님 사례가 없었다면 아마 이렇게 됐을 것이다. “박 서방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나” 하고 누군가는 궁금증을 표현하고, 나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설명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모님 덕에 그 불편한 통과의례는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 처갓집에서 발언권이 센 장모님 덕에...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켜도 신경 쓸 일이 없고, 처음 보는 음식을 접해도 장모님 곁에서라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처갓집에서는 아예 돼지고기를 볼 일도 없다. 


사연 없이 결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마는 나도 6년여의 연애기간 동안 사연이라면 사연이 있었다. 그 때문에 결혼하면서 인연을 떠올렸다. 그때 떠올린 인연의 끈이 실 몇 가닥을 꼰 것이었다면, 장모님의 ‘돈육불식(豚肉不食)’ 식성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떠올린 인연의 끈은 마닐라 삼으로 굵게 만든 밧줄 같은 것이었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와 나는 식성이 많이 달랐다. 고기도 그중 하나다. 나는 기껏해야 불고기를 조금 먹는 정도인데, 아내는 구운 고기를 아주 많이 먹었다. 놀라웠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릴 적 별명이 ‘고기 호랭이’라고 했다. 용띠도 무서운 판에 이번엔 호랭이다. “범 내려온다~~~” 순간 나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도 잠깐 했으나, 돈육불식 장모님을 떠올리면 인연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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