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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r 22. 2021

갈라파고스 주방(1) - 독학

식용유를 공부하다

우리는 대개 엄마(*)를 통해서 음식 만들기를 배운다. 학교에서 배운다 해도 아주 기초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실습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요리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엄마 어깨 너머로 익히다가 결혼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독학 실습을 통해 요리 방법을 익힌다. 절대 다수가 그렇기 때문에 일반화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여기서는 어머니보다 엄마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학교 과정까지가 의무교육이다. 학교에 다니지 못할 사정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한 경우, 검정고시를 통해 그 수준을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음식 만들기에는 그런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초중고 교과 과정 못지않게 중요한 먹고 사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나름대로 알아서 잘 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나의 아내도 위에서 일반화한 과정을 거쳤다. 결혼 전후 잠깐 요리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아내의 어깨너머로 음식 만들기를 배웠다. 귀찮은 눈치를 무릅쓰고 물어가면서 요리 지식을 조금씩 쌓아왔다. 또 다른 선생 노릇을 해 줄 인물로 누나가 있는데, ‘요리 수준’의 질문이 아니면 굳이 묻게 되지 않는다. 그러자니 종종 ‘내가 하는 게 맞나? 이렇게 하면 되나?’하는 궁금증이 생기지만, 그에 대한 확답을 얻지 못 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혹시 내가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음식 만들기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래의 에피소드는 음식 만들기 학습 과정에서 격리를 넘어 소통을 시도한 사례다.


나는 부침, 볶음, 튀김 등 기름을 쓰는 음식을 만들 때 모두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튀김에는 올리브유가 좋지 않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그것이 발연점과 관계된 문제인 줄도 알지만 굳이 확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구분이 왠지 유난스러움처럼 느껴져서, 나는 유난을 떨지 않겠다는 유난스러움으로 모든 요리에 그냥 올리브유를 사용한 것이다. 올리브유를 선택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식용유 가운데 가장 비싼 기름이기 때문이다. 올리브유, 포도씨유, 옥수수유 등 여러 식용유 가운데 가장 비싼 게 올리브유다. 유기농 야채는 선택하지 않지만 기름에서 만큼은 호사를 누리고 싶다며 올리브유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올리브유를 선택하는 과정을 산수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겠다. 유난스러움+겉멋=올리브유.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랬을까. 최근에 만난 나의 요리 선배 여성 두 명이 나의 올리브유를 성토한 것이다. 먼저 한 사람은 올리브유는 끓는 온도가 낮아서 튀김에는 적합하지 않고, 이런 때는 포도씨유가 좋다고 충고를 했다. 그러면 올리브유는 어디에 쓰냐고 다시 묻자 샐러드 등에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샐러드에는 샐러드용 소스를 쓴다면서 공연히 어깃장을 놓았다. 점잖은 충고는 자극이 부족한 법. 나는 끄덕거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낮은데 그걸 튀김에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발암물질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것도 모르고 요리를 한다고 하느냐 하며 강하게 질타했다. 강한 질책은 점잖은 충고보다 자극적이었다.

ⓒ pixabay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조금 복잡했다. 정리하면 이러하다.


발연점(發煙點)이란 기름이 끓는 온도가 아니라 기름이 뜨거워지다가 연기가 나는 온도(smoke point)를 가리킨다. 올리브유의 발연점은 올리브유의 종류에 따라 편차가 약간 있지만 대략 섭씨(이하 섭씨 생략) 180도 정도이고, 포도씨유, 카놀라유, 옥수수유, 해바라기유 등은 발연점이 220~240도 혹은 그 이상이 된다. 그런데 부치고 지지고 볶는 온도는 대략 120도~160도로 여기에 올리브유를 써도 발연점 문제는 없다. 한편 튀김에 적합한 온도는 180도 정도이기 때문에 올리브유를 써도 문제가 없기는 하나, 자칫 그 온도가 넘어가면 연기가 나거나 쉽게 탈 수 있다.


여기까지 이해를 하고도, 좋은 기름 올리브유를 모든 요리에 쓰겠다는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의 주장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장을 보태 설명하자면, ‘비싼’ 올리브유를 쓰면서 괜히 더 신경을 쓰고, 자칫하다가는 요리도 망치고, 건강에도 안 좋을 수 있는데 ‘굳이’ 올리브유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 어라, 이건 요리의 문제가 아니라 어리석음의 문제가 아닌가. 마침내 내 귀는 팔랑거리기 시작했고, 마음은 흔들렸다. 돈을 많이 쓰면서 사서 걱정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뜨거운 가스레인지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조금 더 냉정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충고를 해준 요리 선배들의 의견과 인터넷에서 취득한 정보를 종합해 보았다.


180도가 넘어가기 쉬운 튀김요리에는 포도씨유 등을 사용하는 게 좋고, 지지고, 볶는 요리는 160도를 넘어가지 않으므로 무얼 써도 괜찮다. 따라서 튀김 아닌 요리에는 ‘마음 놓고’ 올리브유를 사용하되, 혹시라도 튀김에 가까운 음식을 만들게 될 경우에는 포도씨유를 사용해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포도씨유는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으므로 용량이 작은 것을 선택하고, 산패(酸敗)에 주의해야겠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갈라파고스 섬에도 거북이가 살고 있다는 말로 내 의견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보편성으로부터 격리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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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諸島)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섬이다. 육지와 완전히 격리되어, 이 섬에 사는 바다거북이와 핀치 새를 비롯한 동식물은 그들만의 독특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찰스 다윈(영국. 1809-1882)은 이 섬의 핀치 새들을 직접 탐사하였고, 그 결과는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너무 독자적으로 음식 만들기를 하다가 나의 주방이 갈라파고스 섬처럼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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