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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Mar 25. 2021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맥없이 TV를 보다 블라인드 사이로 아파트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도 느껴지지 않고 차고 더움도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봄이다. 계절은 그렇게 본능적으로도 느낄 수 있다. 나의 주(主) 생활공간인 부엌에서 벗어나보고 싶어졌다. 그렇다. 봄은 이렇게 유혹의 계절이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탈출하자.”(*앞의 글 갈라파고스 주방 참조-안 읽어도 관계없음).


내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 챘는지 아내가 묻는다. 나갈까. 시간을 정했다. 10시45분. 15분, 45분을 약속 시간으로 정하는 내 습관을 이상하다고 하는 아내에게 다시 45분을 들이밀었다. 이제 우리는 11시쯤 나가게 될 것이다.


뛰어봤자 백수다. 목적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서울숲. 지난 해 11월, 몇 번째인지 잘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카페 착석이 금지된 후 발길을 끊었다. 숲은 어떤지, 카페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서울숲에도 봄이 와 있었다. 천지가 봄인데, 그곳인들 다를까.


걷기 시작했다. 지난 해 그렇게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던 벚나무. 꽃망울이 잔뜩 부풀었다.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달라진 듯해도 꽃들은 자기 순서를 잊지 않았다. 햇볕 받는 쪽의 목련이 활짝 피었다. 운 좋게 목련이 가장 보기 좋을 때를 놓치지 않았다.  


평소의 절반밖에 걷지 않았는데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밥 먹으러 가자, 당 떨어지면 큰 일 나. 아내를 재촉했다. 김밥으로 평소보다 이른 점심을 때웠다. 당 핑계로 오랜만에 콜라를 마셨다. 금단의 사과 같은 콜라. 역시 김밥은 탄산음료와 같이 먹어야 제 맛이다.


목적지인 카페 S(*)문을 열었다.

아, 뿔, 싸.

입으로 말해본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이 감탄사는 구어가 아니라, 문어인 모양이다. 문밖에 늘어선 사람들은 문전성시라지만, 이건 무언가. 도떼기시장은 아니고, 문내성시(門內成市)? 주문 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테이크아웃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시계를 보았다. 12시20분. 급작스런 허기로 예정보다 30분 일찍 움직인 탓에 사람 구경 실컷 하게 생겼다.


테이블이 하나 비어있다. 냅킨이 구겨진 채 놓여있지만 다행이다. 아내는 사이렌 오더를 할까 하다가, 선물 받은 쿠폰을 써야겠다며 주문 줄로 걸어갔다.


주문 줄에 하나, 둘, 셋... 9명이 늘어서 있다. 오른쪽 음료반납 테이블 앞에는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보이는 8명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누가 시킨 것처럼 모두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45번 고객님. 한 명이 대답 없이 앞으로 나간다. 46번 고객님. 또 나간다. 직원 혹은 아르바이트생 다섯 명은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순간,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게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바쁜 사람들 구경하며 한가한 덕에 별 생각을 다 한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테이크아웃하는 사람들의 음료를 보기 시작했다. 온통 차가운(아이스) 음료다. 며칠 전 다른 S 카페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 전체 음료의 70~80%는 아이스 음료다. 사람은 환경과 계절의 지배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아이스 음료의 70~80%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a.k.a. 아아. 아아라는 단어가 언제 등장했는지 불분명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신조어도 아니다. 구(舊)조어다. 아아의 연관 단어인 얼죽아도 이제는 나온 지 꽤 되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

봄, 여름, 가을은 물론이고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아아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끝까지 간 사랑에서는 역시 비장미가 느껴진다. 아마도 얼죽아들은 이 글의 제목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다.’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아아는 4계절 마시는 것인데, 다시 라니.


나는 ‘커피하면 뜨거운 커피’라는 평범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내 취향을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한 단어로 줄이면 ‘평범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나의 아내는 얼죽아다. 찐 얼죽아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얼죽아로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얼죽아인 아내가 아아 두 잔을 들고 왔다. 계절에 순응하는 나는 오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갈아탔다. 아아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니 박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파에도 끼지 않고, 얼죽아도 아닌 얼치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지만 이런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 봄이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계절이다.


12시40분.

10명이 넘는 사람이 한꺼번에 문에서 들이닥쳤다. 이들이 다 같은 동행이 아니라 해도, 도대체 사회적 거리 두기와 5명 이상 집합 금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닥다닥 늘어선 주문 줄의 사람들과 음료를 기다리는 다수의 사람들과 방역 규칙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런데 우리 사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얼죽아들은 왜 그렇게 아아에 열광할까.


아열대로 변하고 있다는 날씨 탓?

대세가 정해지면 쉽게 따라가는 사회  탓?

트렌드를 중시하는 모던함?

아이스음료에 추가 비용이 생기지 않는 이 매장의 특성?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 가지 빠졌다. 코로나 때문에 열불이 나서?


맨 구석 자리의 두 명이 나가자 젊은 여성 세 명이 그곳으로 서둘러 다가간다. 영화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음료잔을 들고 우리 부부가 일어서자 젊은이 셋이 잰 걸음으로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다. 영화 장면이 또 떠오른다.


1시30분. 카페에 머무를 수 있는 제한시간을 채워서 카페 밖으로 나왔다.


눈이 찡그려졌다. 봄이다.

건널목에 다가서자 앞에 남녀 커플이 서 있다. 둘 다 손에 아아를 들었다.


그렇다.


다시 아아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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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S :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생각하는 그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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