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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Apr 12. 2021

즉석식품 전성시대

유명 식품회사에서 만든 즉석식품 브랜드 OOO의 소고기미역국을 처음 먹고 나서 나는 후회가 막심했다. 지난 2년 여 동안 나는 왜 국을 끓이느라고 그 고생을 했던가. 소고기미역국에 적절한 고기는 어떤 부위이며 어느 정도 시간을 끓여야 하고, 가장 좋은 미역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왜 고민했을까. 


다음 주 다시 마트를 찾았을 때 이번에는 아내가 큰 소리를 냈다. 친정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소고깃국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육개장과는 달리 매운 맛이 덜하고 대파를 엄청나게 많이 넣고 끓인다던 시골장터에서 파는 것과 같은 그 국말이다. 나도 환호했다. 그 옆에 해장용 황태국이 있었다. 그 몇 가지 국은 다가올 꽃 천지의 첫 번째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를 한 번 더 놀라게 한 것은 가격이었다. 네 개를 사면 1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계산을 해 볼 필요도 없이 직접 만들 경우에는 절대 그 가격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 여. 마트에 가면 매번 새로운 즉석식품 국을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회사가 경쟁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제품도 선을 보였다. 다음 주에 가면 또 새로운 회사가 가세하고 새로운 국도 등장했다. 또 몇 달이 지났다. 왜 국만 팔아야 하느냐고 누군가 아이디어를 낸 모양이다. 여러 종류의 다양한 죽이 쏟아져 나왔다. 


소비자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는 듯했다. 여러 회사가 사활을 걸고 경쟁을 하다보니 가격이 오르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다. 


냉동식품을 잘 사먹지 않아서 몰랐는데, 즉석 국을 계기로 냉동식품 류를 돌아보았더니 그곳에도 다른 세상이 열려 있었다. 냉면, 우동(가락국수), 메밀국수 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냉동식품 류가 밥으로까지 확산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몇 가지를 사서 집에서 해먹었다. 맛도 있고 무엇보다 편했다.


자사 제품이 좋다는 미사여구가 포장 겉면에 가득하다. 처음에는 국의 종류가 다섯 가지 정도 된 듯한데,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즉석식품이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대략 세 가지 요인으로 생각한다.

1)조리하기 편리함  2)종류의 다양함  3)저렴함


냉동식품, 즉석식품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나도 선호하지 않는 축이었는데 최근 들어 즉석식품의 인기 요소 때문에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앞에서 말한 아내가 좋아하는 ‘시골 장터국’류를 끓이는 경우를 예로 들어 즉석식품의 강점을 살펴보겠다. 2인분을 만들기 위해 소고기와 무, 대파, 고구마줄기 등의 재료를 사려면 재료비만 최소 6~7천원, 아니 2인분만 만들려면 단가가 더 올라가서 1만원 가까이까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즉석식품은 불과 3천원이면 2인분을 준비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간편함과 다양함을 생각해 보겠다.

소고기미역국, 닭곰탕, 황태콩나물국, 육개장, 설렁탕 이렇게 다섯 가지 종류의 국을 직접 만들려고 하면 그 재료만으로 냉장고가 가득찰 것이다. 그 재료들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많이 들 것인가. 그리고 국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또 어떤가.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말하는 것을 흉내 내면 “이 비용과 시간으로는 절대 이 구성 맞출 수 없습니다.”가 될 것이다.


이렇게 확실한 강점이 있음에도 모든 음식을 즉석식품으로 도배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요리하는 즐거움이다(나도 스스로를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음식 만들기는 힘든 과정이지만 동시에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일 봉지를 가위로 잘라서 내용물을 냄비에 쏟아 끓이거나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행위가 전부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또 다른 이유는 다양성의 보존이다. 즉석식품 국만 먹다보면 어느 집, 어느 할머니, 어머니 특유의 맛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는 데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 대량생산 음식물이 안겨주는 건강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점들은 내가 할 걱정은 아닌듯하지만 균형 잡힌 사고를 위해 언급해 보았다.


즉석식품의 장점을 열거하더니, 이번에는 문제점이라고 여러 가지 지적을 한다. 

“도대체 먹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 

한마디로 결론을 이야기하겠다. 먹자는 것이다. 단, 잘 먹자는 것이다.


즉석식품이 이른 바 대세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장터국밥에는 무를 조금 썰어 넣어 끓이고, 황태콩나물국에는 두부를 넣어서 끓인다. 닭곰탕에는 마늘과 파를 첨가한다. 맛에도 변화를 주고,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도 조금 포함시키는 것이다.


신데렐로가 만든 감자듬뿍 사천짜장. 레토르트 짜장의 도움을 받았다.


끝으로 내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절충을 시도한 예를 한 가지 들겠다.

나에게 큰 즐거움인 소고기 짜장면 만들기. 


나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고명을 남김없이 먹는 사람들이 수십 년 째 부러웠다. 세상에 그런 것도 부럽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 하는 나는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억지로 억지로 짜장면 국수는 먹으면서도 차마 고명은 먹지 못 한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즉석식품인 레토르트 소고기 짜장으로 해결했다. 감자와 양파를 원하는 만큼 썰어서 고추장으로 적당히 볶다가 레토르트 짜장을 넣어 함께 볶는다. 국수는 마트에서 파는 칼국수를 사용한다. 수타국수와 매우 흡사하다. 삶은 국수에 매콤한 짜장을 얹는다. ‘박씨 아저씨표 사천 짜장면’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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